▲출하가 한창인 태백의 고랭지배추 밭. 소비지 배추가격은 올랐지만 생산량이 크게 줄어 농가 한숨이 깊다.

8월 30일 폭염이 걷히고 초가을 날씨를 보이는 태백시 삼수동 고랭지배추 밭. 추석을 앞두고 출하가 한창이었다. 시중 배추값이 작년보다 폭등했다고 언론매체들이 떠들어대고 있지만 이곳 농업인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고랭지배추 10㎏ 1만3440원
전년동기 대비 79% 껑충

폭염·가뭄 등 이상기후 탓
생산량은 60% 이상 감소

"정부, 밭 갈아엎을땐 대책없고
순간 가격 오르면 민감" 섭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관측센터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고랭지 배추 가격은 상품 10㎏ 기준으로 1만3440원. 작년 같은 기간 7500원보다 79% 정도 올랐다. 고랭지 무 가격도 18㎏당 1만3120원으로 지난해보다 13% 정도 상승했다.

태백에서 배추와 양배추 등 8만9000㎡의 농장을 경영하는 최흥식 씨는 “정상적으로 생산량이 나오고 지금처럼 값도 좋으면 더 바랄 것이 없지만 생산량이 60% 이상 줄었다”며 “작황이 좋으면 값이 없고, 값이 좋으면 물건이 없으니 이모저모로 고랭지농사가 어렵다”고 한숨을 쉬었다.

평년 수준으로 생산량이 나올 때는 1만200㎡의 밭에서 5톤 트럭 10대 정도가 나오지만 지금은 4대가 못 나온다.

최씨는 “5톤 트럭 한 대에 600만 원 정도면 농업인과 소비자에게 적절한 수준인데 지금처럼 1700만원을 넘어서면 누구도 좋을 게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씨는 지난해 2만9000㎡ 배추밭에서 7000만원의 소득을 올렸지만 올해는 6300만원에 그쳤다.

생산량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폭염과 가뭄 등 이상기후로 배추에 병이 많이 왔기 때문이다. 태백 정선 평창 영월 등 고랭지배추 생산단지의 지난 달 최고기온이 평년 보다 2.2도가량 높았고, 강수량은 42㎜ 내외로 평년의 30% 정도였다.

특히 강원도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17일 이상 계속되면서 고랭지 배추의 피해가 컸다. 평년의 이 지역 기온은 18∼26도 사이로 배추생산에 적합해 여름에 생산되는 전국 배추의 95%가 이곳에서 나온다.

폭염과 가뭄 등 이상 기후로 바이러스 등 병이 발병하면 배추생산비는 평년보다 40% 이상 증가한다. 영양제 시비를 늘려야하고, 물도 직접 줘야하기 때문이다.

농업인들은 정부와 물가관리 당국의 대처에 섭섭함과 문제점을 제기했다. 배추농사가 풍년으로 가격이 폭락하고 밭에서 갈아엎을 때는 어떤 대책도 없으면서 물량 부족으로 순간적으로 가격이 상승하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아이스커피 한 잔에 5000원이 넘는 물가수준에서 배추 2만원 15kg으로 김치를 담그면 4인 가족이 30일을 먹을 수 있다. 30년 전 김치와 쌀 가격이 가정경제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던 시절의 기준을 아직까지 고수하고, 그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반응이 나온다고 농업인들은 설명했다.

최흥식 씨는 “풍년으로 배추가 밭에서 버려지거나 물량부족으로 가격이 상승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정부와 농업관련 기관들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태백=백종운 기자  baekj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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