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숙

농협 하나로마트 내에 조합원로컬푸드 매장이 생기고 나서 아침시간이 짧아졌다. 그것도 그냥 짧아진 게 아니고 매우 짧아진 것이다. 예전에는 여섯시 정도에 일어나 밥 먹고 치울 거 치우고 일터로 나가도 일곱 시 전이었는데 로컬푸드 매장이 개장하고 나서는 꼬박 다섯 시에 일어나야 했다.

일어나는 즉시 밭으로 달려가 애호박을 따내고 닦아서 포장을 하고나면 여덟 시 가까워 온다. 아침밥은 먹는 둥 마는 둥, 부랴부랴 차에 올라 농협주차장에 닿는 시간이 꼭 여덟시 이십오 분이다. 너무 일찍 와도 소용없는 것이 그 시간에야 마트가 문을 열기 때문에 저절로 훈련이 된 까닭이다.

카트에다 물건을 옮겨 싣다보면 늘 마주치는 사람이 있다. 농협 정문에서 꽃가게를 운영하는 후배와 인사를 나누게 되는데 그 인사 또한 “오늘도 열심히”라는 똑같은 멘트를 주고받는다.

로컬사무실 컴퓨터를 켜는 것도 내 일이다. 참여농가 제 일번으로 도착하니 지극히 당연스런 절차다. 내 이름을 건 바코드를 빼내어 물건을 진열하며 오늘은 어느 가정으로 나가 행복한 밥상을 만들어줄까 라는 가슴 설렘도 매일 똑같다. 이렇게 로컬푸드 매장에서 아침을 보내고 그 후 시간에 농사일을 유지해야 되므로 아침 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올해는 밭이 팔백 평이나 더 늘어났고 날씨도 유난히 가문데다 유난히 뜨거운 날이 길게도 이어졌었다. 예전 여름에는 일어나는 대로 밭으로 나가 그날 할일을 새벽에 얼추 치우고 한낮에 나서지 않더라도 아침저녁 노력으로 헤쳐내도 되었다. 하지만 올여름은 재난문자가 무수히 뜰만큼 숨 쉬기도 힘든 폭염아래서 단 하루도 쉬어보지 못했다.

이처럼 짧아진 아침 대신 길어진 여름을 보내느라 장화도 벗어던지고 장갑도 끼지 않고 지낸 탓에 손이 매우 거칠어졌다.

모처럼의 모임에서 남들이 볼세라 손을 테이블 아래로 넣는데 식당 사장님이 인사한다.

“농협마트에서 몇 번 보았어요. 여덟시 이십오 분 아줌마지요?”

칭찬하자는 소리건만 얼굴은 확 달아오른다.

늘 호미를 쥐고 살던 엄마, 엄마 옷에 따라다니던 시큼한 땀내, 쌉쓸한 풀내…….

항상 일 속에 묻혀 살아 곱지 않은 엄마에 대한 불만이 그대로 나에게로 전이된 것일까?

“나, 여덟시 이십오 분이래!”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남편이 쳐다본다.

꽃집 후배도 알고 개업한지 며칠 안 된다는 식당주인이 알고 구급대에서 점심만 해준다는 선배언니도 알고 진열하는 동시 물건을 사가는 소비자 여러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을, 로컬푸드 매입 장부에 항상 일번으로 기입하는 내 행동반경을 옆지기 남편만 모르고 있다니......

로컬푸드 매장이 생기고 나서 버려지는 채소가 없는 게 참으로 좋다. 큰 시장 출하 하고나면 쳐지는 물건 치우기도 일거리였는데 작은 단위의 소포장이지만 알뜰하게 내보내면 돈이 되어주니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말은 이런 상황을 두고 한 말일게다.

오늘 역시도 로컬푸드 매장으로 달려가는 아침은 신바람 로드다.

 

이길숙
이원농장, 이원농장펜션 운영
(사)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제4, 5대 회장 역임
수필집 ‘이원농장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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