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안

억눌렸던 감정의 둑이 터진 걸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분노한 민심이 주말마다 광화문 거리를 메우고 있다. 자리를 지키려는 대통령을 향해 민심은 하야를 외치고 있다.

수십만, 백만, 이백만…. 전 세계가 주목할 만한 대규모 시위가 몇 차례나 열렸지만, 경찰의 물대포가 사라지자 폭력도 사라졌다. 다음날 광화문 거리가 말끔해서 전날 시위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한다. 감동한 외신들이 대통령의 범법 사실과 함께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크게 보도하고 있다. 고맙다고 생각하는데 의문 하나가 고개를 든다.

시위하는 사람들이 신명이 났다. 왜 그럴까. 화가 났다면 핏대를 올리며 고함을 쳐야 풀릴 진데, 활짝 웃는 얼굴로 합창을 부르는가 하면 낯모르는 사람과 어깨동무하고 덩실덩실 춤까지 춘다. 온통 축제 분위기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오래 화가 나 있었다. 4대강 사업, 방위산업 비리, 국정원의 선거 개입, 세월호 참사, 개성공단 폐쇄, 국정교과서, 위안부 협상, 사드, 그리고 마침내 드러난 최순실과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온갖 비리가 난무한 나라에서 국민의 삶이 편할 날이 없었다. 많이 화가 났다. 그런데도 사회는 화를 낼 수 없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 어이없는 일을 하는 권력을 향해 바른말을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폭도 또는 종북으로 몰았다. 종북…. 북한체제를 흠모한다는 뜻이며, 이는 곧 빨갱이로 통하고, 간첩으로까지 의미가 확대되는 무서운 말이다. 내가 북한의 망나니 김정은을 추종한다는 오해를 받다니, 목구멍까지 올라오던 바른말이 기겁을 하고 기어들어 가버리는 것이다.

그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도 진실을 신앙처럼 지켜낸 언론인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다. 이 엄청난 사건을 보도해 온 국민의 눈을 뜨게 해 준 JTBC. 손석희라는 한 인물이 없었다면 이 기괴한 사건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을까.

만천하에 이 사건이 드러났으니 감추고 싶은 쪽에서는 재앙이겠지만, 국민은 이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아프기는 한데 병명을 몰라 약도 쓸 수 없던 나라, JTBC의 보도로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명확해졌으니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썩은 부위는 도려내고, 아픈 자리는 약을 쓰면 새 살이 돋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니겠는가. 그런 희망이 보여서 사람들이 웃는 것이다.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이다. 마이크를 받아들고 소신껏 발언해도 폭도로 또는 종북좌파로 매도당하지 않으니 어찌 어깨춤이 아니 나올쏘냐.

뜻밖인 것은 검찰도 대통령을 참고인이 아닌 피의자로 본다는 사실이다. 그렇게도 권력의 눈치나 보던 검찰이 별안간 개과천선했을 리는 없겠지만, 국민과 같은 시각을 가졌다는 점에서 일단은 응원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손석희 사장은 사람들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상실감을 준다고 걱정했지만, 그런 건 걱정하지 말고 진실을 남김없이 알려주시라. 저 건너에서 손짓하는 새 시대를 향해 격랑 속의 이 징검다리를 기꺼이 건널 터이니.  
 

 

이수안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편집장, 회장 역임
한국포도회 이사
향기로운포도원 운영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