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근과 무 등 월동채소 주요 품목의 수급이 불안하게 흘러가고 있다. 사진은 최근 제주 월동무 재배 현장에서 한 농업인이 월동무 상황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월동채소 수급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농가들은 생산량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울상이고, 시세는 다수 품목이 고공행진 중이라 소비에도 악재가 우려되고 있다. 올 여름 폭염 및 지난 10월 초 산지를 강타한 태풍 등 월동채소 주산지인 제주와 남부권의 당시 날씨 여건이 수확을 하거나 한창 생육 중인 최근의 월동채소 수급에 큰 영향<본보 11월 1일자 참조>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최근의 월동채소 수급 불안이 천재(天災)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 하나로 월동채소 수급 불안을 치부하기엔 부족하다는, 즉 천재에 인재(人災)가 더해졌다는 목소리가 산지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유례없는 폭염에 파종 밀리고 파종 직후 생육 차질
제주·남부 태풍으로 채소 유실, 재파종 비중도 증가

정부는 김장철만 초점 맞춰 이후 수급은 나몰라라
“산지서 끊임없이 문제제기 했지만 외면” 원성 자자


▲최근의 불안한 월동채소 상황=겨울 및 월동채소 품목 중 생산이 상대적으로 일러 본격적인 출하가 진행되고 있는 제주 구좌 당근에서부터 위험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최근 당근 도매가격은 20kg 상품 기준 6만원 초반대에 형성돼 있다. 1만8000원대였던 지난해와 2만원 내외였던 평년 시세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이미 주요 언론에선 최근의 농산물값 폭등의 주범을 ‘당근’으로 몰아가고 있다.

당근보다 출하가 늦어 아직 본격적인 물량이 나오지 않아 당근만큼의 이슈가 되고 있지 않지만 월동무에서도 서서히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시장에서 제주산 월동무가 시나브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8일 가락시장에서 무 18kg 상품 평균 도매가격은 2만5078원을 기록하는 등 최근 2만원 초중반대의 가격대가 형성되고 있다. 7500원이었던 평년과 7700원이었던 지난해 12월의 시세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이와 함께 8일 기준 양배추도 평년의 4배가 넘는 시세가 형성되는 등 전반적으로 월동채소의 대다수 품목에서 수급 불안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만일 올해 한파나 폭설이 예년보다 조금만 더 지속되거나 강하면 월동채소 수급 상황은 상당히 악화될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천재와 인재가 맞물려 나타난 월동채소 수급 우려=올 겨울 월동채소 수급불안의 가장 큰 원인은 파종기와 생육기 날씨 때문이다. 파종기였던 여름철과 초가을 당시의 폭염으로 파종이 밀리거나 파종 직후 제대로 된 생육 환경이 마련되지 못했다. 여기에 10월 5일 월동채소 주산지인 제주와 남부권을 휩쓸고 간 18호 태풍 차바로 인해 그나마 자라나던 월동채소가 유실되는 등의 피해를 야기했고, 재파종 비중도 어느 해보다 늘었다.

이런 천재지변의 영향이 컸지만 모든 것을 날씨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에서도 김장 시즌에 주 초점을 맞췄지 그 이후를 보지 않았다는 등 파종기부터 이미 상황이 예견됐지만 제대로 된 대책이 마련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월동채소 생산자단체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끊임없이 이번 시즌 월동채소 수급에 대한 우려를 정부와 지자체에 제기했다. 산지폐기나 저장 비용보다 훨씬 비용이 덜 드는 재파종비 지원 등 재파종을 독려해야 한다고 했고, 태풍 피해 신고도 물량을 살리는 게 먼저라 시간을 더 달라 했지만 피해 신고기간이 열흘 남짓에 불과했다”며 “정부 관계자 누구도 산지에서 볼 수 없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올해 당근과 양배추 시세가 유례없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데 당근과 양배추 관세율도 낮아 사실상 개방 품목이다. 이에 주소비처인 외식 식자재업체에서 수입산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커 우려가 가중되고 있다”며 “올해도 문제지만 시세에 따라 쏠림 현상 등이 나타나 매년 가격 폭등과 폭락을 반복하는 월동채소산업에 대한 중장기 대책도 제대로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에선 수급 품목인 배추, 무와 그 이외 품목을 나눠 대책 마련을 추진했고 또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월동채소 중 수급 관리 품목인 배추와 무에 집중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자율 대처 품목인 당근은 농협 계통 물량 확보 등을 통해 소비자 부담 완화 차원에서 할인판매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파종 및 생육기 날씨로 인한 사전적 대책이 부족했다는 지적과 관련해선 “태풍 피해 이후 무는 재파종이 가능했지만 당근이나 양배추는 시기상 불가능해 당근과 양배추 등의 품목은 재해대책비로 경영비 보존 차원에서 농자재비 지원과 농가 기술지도에 집중했다”고 덧붙였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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