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효순

붉은 닭의 해라고 한다. 옛날 초가집 양지쪽에 어미닭이 노랑 병아리를 데리고 있는 풍경 하나쯤 우리세대 어른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봄이 오면 부모님은 닭이 알을 품을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가끔 모이를 먹을 때만 제외하고 암탉은 둥지에서 거의 내려오는 일이 없다. 붉었던 벼슬이 하해지고 날갯죽지 뼈가 앙상해져도 알을 품는 일을 게으르지 않는다. 그렇게 21일이 지나면 어느 날 삐악거리는 소리와 함께 솜털 노란 병아리들이 까만 눈을 반짝이는 경이로움을 만나게 된다.

암탉의 모성애는 거의 헌신적이다. 비바람이 불어도 사나운 개가 쫓아와도 병아리들 먹이고 돌보는 일은 필사적이다. 그 작은 날개를 부풀려 열두어 마리 병아리를 모두 품어 안고 보호할 때마다 우리들 어머니들과 흡사했다. 대신 붉은 벼슬왕관을 쓰고 허리를 곧추 세워 긴 꼬리를 날렵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암탉 앞에서 힘차게 우는 모양은 가히 한집안 가장으로서 모자람은 없지만 육아엔 관심이 없이 우두머리 주장만 하는 수탉은 딱 가부장적인 당시 아버지들과 다름없다.

그래도 병아리들은 개나리, 살구꽃, 복숭아 꽃잎물고 양지쪽에서 한바탕 뒹굴고 나면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나고 솜털이 빠져 삐죽삐죽 날개가 생겨 스스로 모이를 찾아 먹게 된다. 그러면 어미닭은 새끼들이 곁에만 와도 사정없이 쪼아버리며 미련 없이 정을 뗀다. 성장한 자식을 껴안고 내려놓지 못하는 금수저의 어미들 보다 낫다. 닭만큼도 못하지 않은지…….

지금시대 우리는 암탉이 울면 알을 낳는다고 했는데 암탉이 울면 역시 집안이 망한다는 것으로 다시 바꾸잔다. 우리 얼마나 여성대통령에게 절망을 했던가. 새해 신년 간담회에서 대통령은 개인 변명에만 급급해 또다시 실망만 안겨주었다.

포르투갈에서 수탉은 희망의 상징이다. 전설에 의하면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쓴 청년이 모함을 당해 해명할 길이 없이 교수대에 매달렸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가족을 상대로 판관은 식탁에 오른 죽은 닭이 울면 용서해 주겠노라고 했다. 그런데 사형 집행 전에 신기하게도 죽었던 닭이 힘차게 울었고 청년이 살아나왔다는 전설이다. 그 곳에서는 모든 선물용 물품이 수탉이 그려져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선물용으로 닭을 인용할 수 없지만 국민간식으로 치느님이라는 호칭까지 얻은 닭들이 지금 수난을 겪고 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으로 수백만 닭들이 살 처분 되고 있다. 양계 농가의 시름을 무엇으로 달래야 할지 마음이 아프다. 힘차게 우는 수탉의 모습을 보고 싶다. 어수선했던 지난해 시린 마음을 날려 보낼 수탉의 힘찬 울음소리를.

 

형효순
전북문인협회 회원, (사)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장 역임
행촌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재주넘기 삼십년’, ‘이래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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