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 손맛 자랑…지역 명물 농가 맛집으로”

▲ 정순자 씨(오른쪽)와 막내딸 강태갑 씨가 ‘소박한 밥상’ 앞마당에 놓인 항아리에서 숙성 중인 된장과 고추장을 살펴보고 있다.

이런 곳에 식당이 있나하는 생각도 잠시, 넓은 주차장과 멋스러운 전통한옥이 한눈에 들어온다. 충남 서산시 안지면에 있는 ‘소박한 밥상’이다. 사전예약을 통해 하루 단 60명 남짓에게만 점심식사를 제공하는 이곳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농가맛집’이기도 하다.

항아리 5개로 시작해
든든한 막내딸 지원 덕
엄마 음식솜씨 전국으로

20여 가지 국산 제철 반찬
화학조미료 없이 깔끔
하루 40~50명 다녀가


월요일마다 음식을 준비하면서 조금씩 반찬이 바뀌는데, 주로 2년 이상 숙성된 된장으로 끓인 찌개와 솔잎에 찐 간조기, 조청에 재어 만든 불고기, 제철 나물무침 등 20여 가지 반찬을 맛볼 수 있다.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과 국내산 재료만을 고집하고, 인공첨가제나 화학조미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시행착오가 없었던 건 아니다. 약 8년 전 ‘소박한 밥상’을 시작한 정순자(65) 대표는 음식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손님응대 등 서비스적인 면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다. 농사를 지으면서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물꼬를 튼 건 막내딸 강태갑(35) 씨였다.
 

▲ 소박한 밥상의 상차림. 20여 가지 반찬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처음엔 누가 여길 오겠나 싶었죠. 막상 손님이 오면 겁나기도 하고, 돈을 받고 음식을 내는 게 걱정도 됐죠. 아니나 다를까 음식준비와 손님응대 등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러던 차에 조리학과를 졸업한 막내딸이 음식과 식당운영 전반을 도와주면서 숨통이 트였던 것 같아요. 특히 예약제로 점심만 운영하기로 한 게 적중했죠.”

농가맛집 최초로 도입한 예약제는 ‘소박한 밥상’을 완전히 새로운 식당으로 바꿔놓았다. 당장 평균적인 식재료 관리가 가능해졌고, 인력낭비도 최소화된 것이다.

“엄마가 너무 힘들어해서 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예약제를 생각하게 됐어요. 당시만 해도 예약제라는 문화자체가 없다보니 오해하는 분도 있었죠. 무슨 대단한 요리도 아닌데 하면서요. 하지만 지금은 예약제가 정착돼 음식준비를 위해 쉬는 월요일을 빼고 하루 평균 40~50명이 다녀가시는 것 같아요. 점심식사만 제공하다보니 음식준비에 좀 더 공을 들일 수 있고, 농사일에도 신경을 쓸 수 있게 됐죠.”

식당일을 도와주는 직원들이 있긴 하지만 음식 준비는 온전히 정순자·강태갑 모녀의 몫이다. 엄마 정순자 씨가 전통의 맛을 살리면, 딸 강태갑 씨는 현대적으로 풀어낸다.

“주로 장류나 김치, 두부, 밑반찬 등은 제가 담당하고, 막내는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샐러드 소스를 만들거나 음식을 정갈하게 내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최대한 상대방의 역할에는 간섭을 하지 않는 게 원칙이죠. 막내가 음식개발을 잘하는데, 지금도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음식 가지 수가 늘어나고, 인기도 많아진 것 같아요.”

새벽 4시에 기상, 그날의 음식을 준비한다는 정순자 씨는 돈을 번다는 목적보다는 그냥 음식을 준비하고 베푸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전통주 담그는 일에 푹 빠져있다고 한다.  

“엄마의 힘이 크죠. 체력적으로 힘든데 음식준비에 즐거워하는 엄마를 보면서 같이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요. 새벽에 일어나서 점심만 하는데도 정말 손이 많이 가요. 최근에 엄마가 전통주 만들기에 욕심을 내시고 있어서 못하게 하는데, 이런 부분이 제일 걱정이에요. 일을 너무 만들어 하시다 아프면 큰일이잖아요.”

서산시와 농업기술센터 등 지역사회의 도움도 크게 작용했다. 농가맛집을 할 수 있도록 응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려올 생각 전혀 없었는데, 어머니가 만드신 된장과 고추장을 팔다가 저 없이는 운영이 안 될 정도 일이 커져서 귀촌을 하게 됐고, 서산시와 농업기술센터에서 젊은 딸이 엄마랑 같이 일을 하는 걸 예쁘게 봐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다양한 사업들을 해보라고 안내해주고, 지금의 농가맛집 사업도 연결을 해주셨어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감사하죠.”

소박한 밥상의 시작은 된장 항아리 5개였다. 엄마의 재능을 누구보다 먼저 발견하고, 판매에 앞장서준 가족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소박한 밥상은 없었을 것이란 게 정순자 씨의 생각이다.

“서울 등 타지역 손님도 많이 오시고, 이제는 소박한 밥상이 지역의 명물이 된 것 같아요. 여름 휴가기간에는 며칠 전에 예약을 받지 않으면 모실 수가 없을 정도에요. 남편과 막내를 비롯한 5남매, 사위들이 틈틈이 도와주는 게 정말 큰 힘이 됐고, 아마 가족들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가끔 의견충돌이 있긴 하지만 가족이라서 금방 말하고 풀 수 있는 게 정말 좋아요. 앞으로 체험도 하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게 목표인데, 이번에도 가족들이 합세하면 금방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서산=이기노 기자 leekn@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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