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방네 주천소리샘’ 회원들이 주천7리 경로당에 앉아 장수정(왼쪽 첫 번째) 씨의 지도 아래 오카리나 연습을 하고 있다.
▲ 연습장소를 흔쾌히 지원해준 경로당 한현규 회장(왼쪽 첫 번째)과 ‘동네방네 주천소리샘’ 회원들이 손가락 하트를 그리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 등 활력을 잃고 있는 농촌. 해법은 결국 사람일 수밖에 없다. 이미 상당수 농촌지역 주민들은 공동체를 강화하면서 나름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고, 이는 다양한 형태의 복지사업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름다운 동행을 통해 살맛나는 농촌을 만들고 있는 현장사례를 소개한다.


매주 월요일. 강원도 영월군 주천7리 경로당이 분주해진다. 60세부터 90세까지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영월군에서 유일한 오카리나 동아리 모임 ‘동네방네 주천소리샘’이다. 회원은 모두 16명. 3년 전 시작 당시보다는 인원이 많이 줄었지만, 연간 8만원 정도의 회비를 기꺼이 낼 정도로 동아리 모임이 활성화돼 있다.

영월군 오카리나 동아리 모임
할머니들 열일 제쳐두고 참여

“악기 연주가 이렇게 재밌다니
폐 건강까지 챙겨 일석이조”

자발적 회비로 모임 이어가지만
지자체 등 지원 있으면 큰 힘 될 것


마을 부녀회장이자 ‘동네방네 주천소리샘’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장수정(61) 씨는 “처음 시작 당시만 해도 음계는 물론 글씨조차 모르는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소액이지만 연간회비를 내면서 자발적으로 모임을 이어갈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며 “특히 오카리나는 폐활량 증가에 좋아 어르신들 건강에 도움이 되는 등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연습에 빠지는 법이 없다는 박원동(90) 씨는 “처음에는 손이 떨리고, 숨이 차서 오카리나를 불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손 떨림도 많이 좋아지고 아픈 곳도 없어졌다”며 “이 모임을 하기 전에는 악기를 연주한다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문금순(71) 씨도 ‘동네방네 주천소리샘’ 모임에는 열일 제쳐주고 참석한다. 문 씨는 “농촌에 살면서 오카리나 공연 때문에 무대에 올라가 봤는데, 처음에는 벌벌 떨려서 혼났지만 지금은 오히려 공연이 기다려진다”며 “오카리나를 배우면서 기분도 좋아지고 스트레스도 풀리고 젊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즐겁다”고 만족해했다.

‘동네방네 주천소리샘’은 연 2회 정도 발표회를 하는데, 첫 발표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장수정 씨는 “처음 발표회에선 쉬운 동요를 연주하는데도 악보를 볼 줄 몰라 달력에 계명을 적어 제가 일일이 짚어가면서 연주를 했다”며 “어설펐지만 더 큰 감동을 줬고, 가족들이 특히 좋아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금은 연주 실력이 부쩍 늘어 아리랑, 꽃밭에서, 아름다운 것들, 고향의 봄 등 비교적 수준 있는 곡을 거뜬히 연주한다.

김춘화(65) 씨는 “어르신들 중에는 글자를 모르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같은 글자를 반복·연습하면서 글자를 배우고 악보를 볼 수 있게 됐다”며 “이제는 노인회나 사회복지관 행사에 나가서 인기상도 타고 꾸준히 성과를 내고 있다”고 자랑했다.

어려움도 많았다. 주천7리 경로당에서 연습공간을 빌려줬지만, 난방이 안 돼 추위와 싸워야 했다. 회원들은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창문에는 뽁뽁이(에어캡)를 붙여가며 연습에 매진했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동네방네 주천소리샘’은 지역의 꿈나무동아리(10여개 반 운영) 중에서도 출석율이 가장 좋다.

장수정 씨는 “영월군과 영월사회복지관에서 많은 도움을 줬지만 연습환경이 너무 열악해 2~3달을 넘기지 못할 줄 알았는데,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다행스럽게도 올 여름부터 면사무소에서 난방을 지원해줘서 따뜻하게 연습할 수 있게 돼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악기 지원 등 ‘동네방네 주천소리샘’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안 가본 곳이 없다는 장수정 씨는 끝으로 한 가지 바람을 전했다.

장 씨는 “처음 2년 동안은 영월군사회복지관에서 무료로 강사료를 지원해 줬는데 꿈나무동아리로 넘어오면서 어르신들이 연간 회비를 내고 있다”며 “악보 사고 밥도 먹고 이래저래 돈 쓸 일이 많은데, 소액이나마 회비지원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기노 기자 leekn@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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