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작황 호조로 수매물량 늘었지만 수요처 마땅찮아 재고로

우리밀을 수매해 가공하는 중소 업체들의 속앓이가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작황 호조에 따른 생산량 증가로 인해 수매 물량이 늘었지만, 이를 처리할 수요처가 마땅치 않은 여건에서 재고로 떠안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결국 알곡에 자금이 묶이게 돼 중소 업체들이 자금 흐름에 차질을 빚고 있으며, 이는 우리밀 산업 전반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국산밀산업협회 등에 따르면 2016년 국산밀 재배면적은 1만702ha, 생산량은 3만2000톤 수준이다. 작황 호조로 전년(2015년) 생산량 2만6000여톤보다 23%가량(6000톤) 늘어났다. 특히 2012년 3만7000여톤 이후 2만톤대에 머물렀던 우리밀 생산량이 약 4년 만에 3만톤대를 회복했다.


수매물량 20% 이상 증가
재고로 전환돼 자금 묶여


▲중소 업체들 자금난..왜?=하지만 이 기쁨도 잠시, 우리밀 업계에선 중소 가공업체들의 경영난 문제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지난해 생산 물량이 전반적으로 늘어나자 업체들의 수매 물량도 20% 이상 증가한 상황. 자연스레 수매에 소요되는 자금은 최근 3~4년 동안 가장 많은 수준이지만, 수요는 늘어난 생산량에 미치지 못해 재고 물량으로 쌓여지고 있다. 즉 늘어난 생산 물량이 재고 물량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재고 물량에 자금이 묶여버리는 상황이 나타나게 되면서 중소 업체들의 경영난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 추산하는 재고 물량은 2월 말 현재 6000~7000톤 수준이다.

국산밀산업협회 관계자는 “2015년에 비해 6000톤 정도 생산량이 증가했는데, 이 물량이 소진되지 못하고 재고로 이월되면서 중소 업체들의 자금 흐름이 원활치 못하고 있다”며 “밀의 경우 수매가 민간 영역에 맡겨지다 보니 중소 가공업체들이 생산과 수매 영역에서 나타나는 위험부담까지 안고 가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으며, 소비가 증가하는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이 문제는 올해 역시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소비 위축돼 올 수매 막막
농민 피해로 ‘악순환 우려’


▲산업 전반에 부정적 영향 우려=밀의 경우 가공 공정 단계가 필수인 데다 민간 영역에서 수매 역할을 책임지고 있어 사실상 생산 영역과 수급조절 기능을 아우르고 있는 만큼 수매를 하고 있는 중소 업체들의 위기는 우리밀 산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밀 가공업체인 (주)우리밀의 윤여준 대표는 “밀 수매하는 중소 업체들이 1년 치 물량을 수매해서 가공하고 판매한 자금을 갖고 다음해 수매를 하는데, 소비가 위축되다보니 늘어난 생산 물량이 재고로 이월돼 돈이 묶여버린 상태”라며 “이렇게 되면 올해 수매를 계획대로 하지 못할 수밖에 없어 농민에게 피해가 가는 악순환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윤 대표는 이어 “사업체가 100% 부담해 밀 수매를 하고 있는데, aT나 농협 등에서 자금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추가 담보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자금 융통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올해 작황이 좋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아 중소 업체들이 고민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알곡 담보 자금대출 모색을
공공비축용 정부 수매해야


▲정부 차원의 대책 요구 목소리=이와 관련 우리밀 업계에선 중소 업체들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며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단기적으론 알곡을 담보로 하는 자금 대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이보다 근본적인 대책으론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수급조절 역할에 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업체 관계자는 “중소 업체들의 여건상 자금 융통을 위한 부동산 담보는 이미 잡혀 있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추가 자금 대출에 제약이 많은 상황”이라며 “알곡을 담보로 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방안 또는 수매자금의 이자를 낮추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산밀산업협회 관계자는 “우리밀 자급률이 올라가는 과정에서 이런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생산량은 늘릴 수 있는데, 소비는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민간 자율적으로 수급조절을 하다 보니 작은 생산량 수치의 변화에도 부침이 심한 한계를 갖고 있다. 정부가 공공비축용으로 수매에 참여해 수급조절을 해 주는 부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이쿱생협 관계자도 “작황 예측이 더욱 어려워지고 수요 예측도 쉽지 않기 때문에 수급조절을 정부 차원에서 일정 부분 맡아 줘야 한다. 민간에서 하려고 하니 자금이 묶이는 것”이라며 “이와 함께 수요 예측에 비해 넘치는 생산 물량에 대해선 주정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줬으면 하는 것도 정부에 바라는 부분”이라고 촉구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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