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녀

삼월이다. 과수원에는 전지작업이 한창이다. 팔순을 코앞에 둔 아랫동네 아저씨는 일손을 구하지 못해 우리에게 작은 단감과수원 농사를 부탁했다. 이미 다른 집 단감과수원을 임대해서 농사짓는 우리는 일을 더 늘릴 수 없었다. 아저씨는 전정이라도 해 달란다. 남편이 밥상머리에서 묻는다.

“우짜노? 우리 집 일도 끝이 없는데.”

“그래도 하루 틈내서 해 주소. 나무도 몇 주 안 된다며?”

남편 나이 정도의 농부는 삼이웃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는다. 덕분에 심심치 않게 일거리가 들어온다. 목수 일, 과수원 전정, 논밭 갈이 등등, 품삯으로 살아도 부부 중심이면 배 곯지는 않겠다. 도시에는 일자리가 없다지만 시골은 일꾼이 없어 인건비는 해마다 오름세다.

노인은 한 해가 다르게 기력이 떨어져도 논밭은 봄에는 파종을 기다리고 가을에는 수확을 거둬주길 바란다. 남편도 이순이 넘자 마음과 달리 몸이 예전 같지 않단다. 약을 달고 살 나이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나 역시 고사리 꺾을 철이 다가오자 일꾼 구할 일이 꿈같다. 야무진 일꾼을 어디서 구하나. 해마다 우리 집 고사리를 꺾어주던 세 분 할머니도 기력이 다 했다. 한 분은 치매에 잡혔고, 한 분은 다리가 고장 나 수술했고, 한 분은 허리가 고장 나서 못 하실 형편이다. 그중 한 할머니를 길에서 만나 승용차에 태워드렸다. 슬쩍 운을 뗐다.

“할매, 꾀사리 꺾을 때가 됐는데 올해도 꺾어줄 수 있지예?”

“내가요? 맘은 꾀사리 밭에 가 있는데 지난봄에 꺾어보이 마음만 되디요. 아지매한테 미안해 죽겄더마. 일은 제대로 몬 했는데 돈은 더 주니 미안해서리. 올해도 꺾어주고 싶지만 민폐 끼칠까 싶어 미리 답은 몬 하요. 그때 몸 상태 봐서 해 줄 수 있다모 해 주끼요.”

“몸 잘 추슬러놓으세요. 그래야 우리 꾀사리 꺾어주실 수 있지예.”

“그리만 되모 참말로 좋것소. 그래야 아지매가 해 주는 그 맛난 밥을 묵제.”

올해는 지난해보다 고사리 발아가 빠를 조짐이다. 눈 한 번 안 오고 겨울을 났다. 저수지 얼음조차 살얼음에 그쳤다. 모두 경기가 풀리지 않는다고 한숨이지만 봄은 어김없이 오고, 농부는 농사지을 준비를 한다. 거름과 비료를 사다가 과수원이랑 논밭에 깔고 농기계로 땅 뒤집기를 한다. 촌로는 씨앗을 챙긴다. 시렁에 걸렸던 호미나 괭이 삽이 내려져 흙속에 푹 파묻힌다. 흙속의 미물이 놀라 고함을 치면 파슬파슬 살아 오르는 흙살이 부드럽기만 하다. 땅이 기름져야 농사가 잘 되지만 그 땅을 기름지게 가꾸는 것도 농부다.

“자아! 당신 좋아하는 거.”

아랫동네 아저씨 댁에 전지를 해 주러 갔던 남편이 돌아와 신사임당이 곱게 앉은 지폐 석장을 내민다. 얼른 받아 챙기며 남편의 볼에 입을 맞춘다.

“고생 했시우. 신난다. 이걸로 뭐하지?”

 

박래녀
전원생활체험수기 공모 대상
농민신문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
제8회 여수 해양 문학상 소설 대상 
현대 시문학 시 등단
수필집 <푸름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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