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숙

지금 농촌은 노령화가 급격해지고 있다. 그 바람에 나는 일흔, 여든, 아흔의 어르신들과 친구로 지낸다. 내가 갓 결혼했을 적에 이 어른들은 자녀를 서너 명씩 두고 있었다. 어느 덧 세월이 흘러 상노인이 되셨지만, 논밭에서 숙련된 일솜씨로 여전히 일을 잘하신다. 부지깽이도 뛰어야 할 정도로 바쁜 농촌에서는 이 노인들의 손도 놀리지 않는다. 나는 또 어떤가. 일흔이 넘었건만 근래에 승진해서 일반장이 되었다.

요즘 나는 이 어른들과 함께 친환경으로 농사짓는 양파 밭에 풀을 매러 다닌다. 요놈의 풀들이 따스한 비닐 속에서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고 양파와 한집 살림을 차렸다. 호미로 풀을 캐놓으니 상처 난 자리에서 풀의 찐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아따! 바로 이 냄새여….”

나는 봄에 맡는 풀 향기가 좋다. 누가 이 냄새를 훔쳐 갈 것만 같아 조바심이 나고는 한다.

일반장인 나는 며칠 전부터 일꾼을 얻느라 분주하다. 당일 날은 일찍 일어나 커피를 끓여 병에 담아 수레에 싣고 밭머리에서 일꾼들을 기다린다. 동기생들이 보행기에다 깔방석, 모자, 호미 등을 싣고 오신다. 더러는 지팡이 짚고 오시는가 하면, 코가 땅에 닿을 듯 허리를 구부리고 오시는 분도 있다. 열 명이 오셔도 늙어서 자세가 다 엉망이다. 일만 해서 닳고 닳아 곰삭아 가는 어른들이 쉬시지도 않고 일터로 나오는 것이 안타까울 때도 있다.

커피를 준비하느라 더러 늦게 가면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제비처럼 서리꽃이 하얗게 핀 풀밭에서 나를 기다린다.

“어이쿠 반장 눔 왔슈?”

게걸스런 할머니가 아침 인사를 멋지게 한다. 나도 장단을 맞춘다.

“반장 눔이 뭐유? 이왕이면 ‘임’ 자 좀 붙이면 안 되유? 아님 내 대신 반장을 허던지”

조용하던 밭고랑에 웃음이 번진다. 커피로 입가심을 하고 한 두둑에 두 명씩 짝을 맞추어 준다. 저 어르신들 중에 현아 할머니는 자식이 그렇게 말리는데도 일을 다니신다. 현아 할머니가 어느 날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아! 너는 서울에서 무엇을 해서 돈을 버느냐”

“나도 엄마처럼 밭을 매서 돈을 버는데 땀 냄새 나고 힘들어요.”

아무리 말려도 일 나가는 엄마 골리느라 하는 아들의 대답이었다. 그 소리에 밭을 매던 사람들이 모두 한바탕 배꼽을 쥐고 웃었다. 펜대만 굴리는 아들이 밭을 매서 돈을 번다고 하니 얼마나 우스운 얘긴가. 남들은 아들 자랑으로 어깨에 힘을 주지만 할머니는 평생 품을 팔고 적은 땅을 일궈서 아들 형제 길러낸 억척스러운 분이다.

아침 새참으로 자장면이 배달되자 밭둑의 마른 풀을 눕혀 밥상을 만들었다. 흘러가는 구름을 배경 삼아 어르신 친구들과 먹는 자장면 맛이 아주 특별하다.

*김기숙/수필과 비평 신인상, 서주문학회 회원,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충남 회장, 충남도 건전생활체험수기 최우수
 

 

김기숙
수필과 비평 신인상
서주문학회 회원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충남 회장
충남도 건전생활체험수기 최우수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