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도 유지 위해 수확과 동시에 납품 불가피…업체 울며 겨자먹기

대형유통업체에 쌀을 납품하고 있는 한 지역농협. 이 농협 관계자는 “쌀을 납품할 경우 원가정산서까지 동원해서 납품가격을 협상하지만 대부분 원가이거나 원가 이하로 납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원가서에 따라 일정 마진을 붙여서 납품가격이 정해질 경우에는 반드시 할인행사가 뒤 따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신선채소류를 납품하는 한 유통주식회사. 이 주식회사 관계자는 “대부분 얼마 단가에 이런 규격으로 어느 정도 물량을 납품해 달라는 식으로 주문이 들어온다”면서 “전체 매출 중에서 대형유통업체 납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납품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수채소류를 납품하고 있는 한 농업회사법인. 이 법인 관계자는 “차라리 원가정산서를 내놓고 가격을 협상을 하자고 하면 납품 가격에 대한 설명이라도 할 수 있겠다”면서 “하지만 납품가격과 납품 규격, 물량을 정해 납품을 하라고 하기 때문에 그에 맞춰 납품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재벌기업이 운영하는 대형유통업체를 중심으로 농산물 소매판매구조가 재편되면서 농산물 납품단가 깎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위법성 여부를 떠나 공산품과 달리 농산물은 생산(수확)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농산물이 신선도가 떨어지면서 품위가 하락한다는 점에서 수확과 동시에 납품을 해야 하고, 이런 약점을 가진 농산물 납품업체는 가격 협상에서 늘 ‘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납품업체 한 관계자는 “납품을 해 줄 곳은 많다는 게 대형유통업체의 입장이고, 당장 납품루트가 끊어지면 재고문제와 회사 경영에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면서 “외형적으로는 협상을 통해 가격과 납품량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막은 절대 불리한 상황에서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납품가격 결정방식이 대형유통업체에 납품을 하는 벤더업체의 손익은 물론, 농가수익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 20년간 농산물 판매가격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농업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해 온 이유로도 손꼽힌다.

한 농업경제학자는 이에 대해 “농산물 가격 인상률이 물가인상률에 턱없이 못 미치고, 농기자재 가격이 농가판매수익보다 더 많이 오른 것과 재정당국의 물가잡기 등이 농업소득을 제자리걸음 하도록 한 이유에 속하기도 하지만, 납품방식도 농업소득 정체의 한 이유”라고 꼽았다.

이에 대해 산지유통분야 한 전문가는 “결국 농촌에도 돈이 선순환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소비가 발생하는데, 농산물 가격에 대한 물가정책과 지속돼 온 납품가격 결정구조가 이어져서는 농촌현장에 돈이 도는 선순환 구조가 나타날 수 없다”면서 “현재의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결국 해법은 품목별 생산자조직화를 통한 자체적 생산조정과 함께 단일한 가격협상 창구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진우 기자 leej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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