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 전국 지자체 상당수 고시 안해

대법원 판결에 따라 지역·지구 등을 표시한 지형도면을 작성·고시하지 않은 경우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해 놓은 가축사육제한구역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져 귀추가 주목된다. 이에 지형도면을 함께 고시하지 않은 지자체에서는 가축사육제한구역 지정 이후 설치된 무허가축사의 적법화는 물론 농장 신·증축도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법원은 전북의 한 지자체와 영농법인 간 건축허가 관련 소송에 대해 지난 4월 ‘가축분뇨법에 따라 지정되는 가축사육제한구역 지정 효력은 이를 명시한 지형도면을 고시하면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지형도면을 고시하지 않은 가축사육제한구역 지정은 효력이 없다는 법리 해석을 토대로 내린 원심 판결에 손을 들어주며 지자체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또한 ‘토지이용규제법의 입법 취지로 볼 때 지역·지구 등의 지정 시 지형도면을 고시하도록 한 것은 규제 대상이 되는 토지를 명확하게 공시해 토지이용에 대한 편의와 투명성을 확보하려는데 있다’며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가축사육제한구역 지정은 지형도면 고시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예외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시군 경계와 같이 지형도면이 없어도 구분이 명확하거나 상수원보호구역처럼 특정구역과 중복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축사육제한구역 지정 시 예외 없이 지형도면을 고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법원은 이어 지난 5월에도 지형도면을 고시하지 않은 지자체의 가축사육제한구역 내 가축사육시설 건축허가 무효 판결을 내린 원심을 파기하고 원심법원 환송을 결정했다.

이 같은 판결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허가축사 적법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지금까지 가축사육제한구역 지정 이후 설치·운영하고 있는 축사는 가축분뇨법에 의해 적법화 대상에서 제외돼 왔으나, 대법원 판결로 인해 지형도면을 고시하지 않은 지자체에선 가축사육제한구역 지정 후 축사를 설치했거나 증축한 농가라도 적법화가 가능하게 됐다.

이에 대해서는 환경부도 지형도면 작성·고시일을 기준으로 가축사육제한구역의 무허가축사 적법화 가능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리고 이를 각 지자체에 전달한 상태다.

한 축산 전문가는 “전국 지자체의 상당수가 지형도면을 고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가축사육제한구역 지정 이후 축사를 설치·운영 중인 농가라도 지형도면 고시 유무 및 시점에 따라 적법화 가능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반드시 지자체에 지형도 고시 여부와 시점을 파악해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와 함께 지형도면 작성·고시가 이뤄지지 않은 지자체의 가축사육제한구역 내 축사 신축 및 허가 가능성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그러나 이 경우 대기업의 축산업 진출 확대의 기회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양돈업계 전문가는 “지형도면을 고시하기 위해서는 최소 6개월은 필요한데 그 사이 새롭게 농장 허가를 받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이를 활용해 대기업이 축산업에 대한 영역을 확대할 수도 있는 만큼 축산업계가 예의주시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정수 기자 wooj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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