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행복농정연대가 지난 11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농정 패러다임 전환과 농정대개혁 청사진 수립’을 촉구하기 위해 국민행복농정 긴급회의를 개최한 가운데 국민행복농정연대의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67개 농민·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농민행복·국민행복을 위한 농정과제 공동제안연대’(국민행복농정연대)가 또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3월 23일 모임은 19대 대선을 앞두고 농정과제를 공동으로 제시하기 위한 자리였다면, 11일 모임은 ‘국민행복농정 긴급회의’란 이름으로 새 정부의 농정개혁 과제를 다시금 요구하기 위한 장이었다. 국민행복농정연대는 지난 11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정의당 정책위원회와 함께 ‘농정 패러다임의 전환과 농정대개혁 청사진 수립을 촉구한다’는 주제를 안고, 국민행복농정 긴급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100대 국정과제를 비판하면서 새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해야 할 사안들을 조목조목 짚었다. 긴급회의의 주요내용을 간추렸다.


#농정 패러다임 전환하라
농업·농촌·농민 다원적가치 제고
농민행복농어촌위 조기 구성을


허헌중 지역재단 상임이사는 ‘농정 패러다임 전환’을 화두로 꺼냈다. 농정 패러다임 전환이 새 정부의 농정기조여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우리나라 농업·농촌의 위기가 경쟁력과 성장만을 강조해온 농정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에서 농정 패러다임이 경쟁력주의 농정에서 농업·농촌·농민의 다원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다기능농정’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허 이사는 “농정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농민의 지속가능성,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 먹거리 주권과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 보장을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로 정립해야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국정과제에 ‘농정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는 점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허 이사는 새 정부가 농업·먹거리·농촌분야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재수립할 것을 촉구했다. 국민행복농정연대가 공동제안한 ‘도농공생·농민행복·국민행복을 위한 농정 패러다임 전환과 농정대개혁 3대 목표와 10대 정책과제’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데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시절 농정공약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 특히 허 이사는 “대통령 농정공약조차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주요 공약들이 축소·폐기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면서 농업예산 확충, 직불제 중심 농정 전환, GMO 표시제와 식품제도 강화, 고교 및 보육시설까지 친환경급식 및 공공급식 전면 확대 등이 국정과제에서 빠졌다고 밝혔다.

허 이사는 “농업·먹거리·농촌분야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재수립하기 위해 국민행복농정연대의 공동제안을 반영하고, 민간주도 민관협치기구로서 대통령 직속 ‘농민행복농어촌위원회’를 조기에 구성해 5개년 계획을 제대로 만들 것을 요구한다”고 피력했다.


#직불제 중심의 농정 실현
농민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게
공익적 가치 반영 직불제 추가를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소장은 농정 패러다임 전환의 출발점이 ‘농가소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농정전환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는 직불제 중심 농정으로 전환하고, 농민이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가격안정을 실현함으로써 농가소득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농민의 지속가능성을 확보, 농업과 먹거리, 그리고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국정과제에는 기존 직불제의 단가를 인상하는 것 외에 직불제 중심의 농정으로 전환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정과제 가운데 직불제 관련내용은 ‘친환경 농업직불 단가 인상’, ‘생태·환경을 보전하는 방향으로 직불제 확대’, ‘밭고정직불·조건불리지역직불 단가 단계적 인상’ 등이 전부다. 그래서 장 소장은 “직불제 중심의 농정의미가 실종됐다”고 주장했다. 직불제 중심의 농정이란 ‘현행 직불제도의 농가소득 보전효과를 확대하면서, 동시에 환경, 생태 등 다양한 공익적 가치를 반영하는 직불제도를 추가로 도입해 농정의 중심을 직불제도에 맞추는 것’.

장 소장은 “직불제 중심의 농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전체 직불금 규모인데, 이 부분은 아예 빠져 있다”며 “전체 농업예산의 규모를 확대하고, 농업예산에서 직불금 비중을 대폭 확대함으로써 직불제 중심의 농정으로 전환이 가능한데, 직불금 규모는 물론 비중이 빠진 국정과제로는 직불제 중심의 농정을 기대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여성농민 전담부서 설치
여성농업인 십 년이 넘도록 요구
육성법 등 관련법도 현장과 거리


2014년 기준 전체 농가인구 중 여성농업인의 비중은 51.3%다. 그만큼 여성농업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해지고 있는 방증인데, 아직 ‘여성농민 전담부서’는 없는 실정이다. 정영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은 “국정과제에 ‘영농·가사도우미 지원 확대’ 및 ‘여성농업인 대상 특화 건강검진 시범실시’가 있지만, 여성농업인들이 십년이 넘도록 요구해온 전담부서 설치와 함께 여성농업인육성법 개정과 같은 여성농민의 권리 보장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따져물었다. 2001년에 여성농어업인육성법이 만들어지고, 현재 제4차 여성농업인육성 기본계획(2016~2020년)이 시행 중인데 여전히 여성농어업법이 현장과 동떨어져 있어 실효성이 낮다는 점을 정 총장은 지적했다.

정 총장은 “여성농어업법이란 옷이 있는데 이 옷이 여성농업인들에게 맞지 않기 때문에 이를 여성농업인들에게 맞춰 수선할 곳이 필요하다”며 “수선소가 곧 여성농민 전담부서”라고 비유했다. 전여농은 8월 23일에 전국여성농민결의대회와 국회 대토론회를 여는데, 이 때 주제 중 하나가 여성농민 전담부서 설치다.

정 총장은 “여성농민은 농민의 절반이고, 농업에서의 역할은 절반 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농민들이 참여하고, 주인되는 정책으로, 평등한 농촌을 위해 여성농민의 권리가 보장되고, 농민이 참여한 농업 개혁과제가 제고되고 수립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전한 먹거리 보장하라
GMO 완전표시제 즉각 시행
학교·공공급식서 GMO 퇴출


국정과제에는 GMO와 연관된 내용이 없다. 오세영 GMO반대전국행동 상임집행위원장은 “안전한 먹거리를 위한 Non-GMO 관련 계획이 국정과제에서 제외된 것은 상식이 지켜지지 않는 대표적인 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 위원장은 원료기반 GMO 완전표시제를 즉각 시행할 것을 촉구했다.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인 ‘식품위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것. 이 개정안은 식품위생법(제12조2)의 1항 중 ‘다만 제조·가공 후에 유전자 변형 디엔에이(DNA) 또는 유전자변형 단백질이 남아있는 유전자변형식품 등에 한정한다’는 내용을 삭제하는 게 골자인데, 이는 식품업계가 지목한 ‘독소조항’이다. 

오 위원장은 “GMO 원료를 사용했으면 GMO 표시를 하라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표시 비용이 올라가고 번거롭다는 기업체의 목소리만 대변하고 있는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보건복지위 일부 국회의원들의 주장은 문재인 정부가 청산해야 할 적폐”라고 꼽았다.

또한, 학교급식과 공공급식에서 GMO를 퇴출시켜야 한다는 생각도 더했다. 올해 부천시와 광명시가 Non-GMO 가공품 급식을 실시하고 있고, 서울시도 도농상생협력체계를 구축해 Non-GMO 장담그기 등을 계획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학교급식과 공공급식에서 GMO 식품을 제외하는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는 게 오 위원장의 의견이다.

김상기 농어업정책포럼 친환경공공급식분과위원장도 ‘공공급식’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Non-GMO’를 단서로 달았다. 그러면서, Non-GMO 가공식품의 생산기반을 마련할 것도 주문했다. 일례로 학교현장에서는 Non-GMO 식용유를 원하지만 생산이 부족해 태국산 현미유와 호주산 유채유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농식품분야 예산 확충
국가 전체예산 증가율 수준으로
직불금 비중 50%까지 확대해야


새 정부 국정과제 중 ‘사람이 돌아오는 농산어촌’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가 투입하기로 한 예산은 총 1조1000억원. 이는 문재인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를 추진하는 데 소요되는 예산으로 책정한 178조원의 0.61%에 불과한 수준이다.

한민수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이번 농업·농촌 분야 국정과제 및 재원투입 계획 수립에 있어 기존 농식품부·해양수산부 소관 산업을 유지·운영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며 “어떤 약속은 지킬 수 있고, 어떤 약속은 왜 지키기 어려운 지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는 책임있게 농업인 앞에 답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농림수산식품분야 예산(농업예산)의 부족문제도 언급했다. 국가 전체예산 대비 농업예산 비중은 2006년 6.6%에서 2017년에는 4.9%로 감소했고, 올해 농식품부 예산 증가율은 국가 전체 예산 증가율인 3.7%에 못미치는 0.8%다. 박근혜 정부의 지난 4년간 농업예산 증가율은 평균 1.25%로, 참여정부의 평균치 3.46%, 이명박 정부의 2.46%를 훨씬 밑돌았다.

한민수 실장은 “농가소득 및 경영안정망 정비·확충의 핵심 과제를 제대로 실천하고, 농업의 다원적 기능 강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농업예산은 물론 농식품부 예산 확대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실장은 “이를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농식품분야 및 농식품부 예산의 증가율을 국가 전체 예산 증가율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고 그 비중을 5%까지 확대해나가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농업·농촌의 가치와 중요성을 유지·발전시킬 수 있도록 전체 농업예산 중 2016년 기준 14%를 차지했던 직불금의 비중을 문재인 정부 5년차에는 약 50% 수준까지 확대하기 위한 정책적 의지를 분명히 하고 이를 실현하려는 노력을 집중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농어업특별기구와 농어업회의소
국가 차원 먹거리 아젠다 다뤄야
올해가 우리농업 개혁 ‘골든타임’ 


정기수 국민농업포럼 상임이사는 ‘사람이 돌아오는 농산어촌’이 과연 국가 농정의 기본방향인지 의문점을 제시하면서 “대통령은 그렇게 말한 바가 없다”고 꼬집었다. 국가 농정의 기본 토대이자 뼈대로 제시된 ‘농어업특별기구’와 ‘농어업회의소 법제화’의 의미가 대폭 축소됐다고 정 이사는 날을 세웠다.

농어업분야 국정과제 중 가장 마지막인 83번째(지속가능한 농식품 산업 기반 조성) 말미 ‘참여와 농수산 행정’에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회 설치 추진 및 농어업회의소 법적 근거 마련’이 언급돼 있는데, 정 이사는 “과연 농어업특별기구와 농어업회의소가 단순한 행정체계 개편을 의미하는가”라며 “당초 취지를 크게 오해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정 이사는 대선공약의 취지에 맞게 농정개혁 추진을 위한 최우선 선결과제로 농어업특별기구와 농어업회의소에 대한 의제설정을 다시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줬다. 또, 농어업특별기구를 국정과제위원회 위상을 갖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구성할 것도 요구했다. 참여정부 때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는 12개 국정과제위원회 중 한 곳이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는 그 위상이 농식품부 산하로 낮아지면서 활동영역이 좁아졌다.

정 이사는 “농어업특별기구는 국가 차원의 농어업·농어촌·먹거리 아젠다를 다뤄야 한다”며 “국가먹거리계획, 직불제 중심 농정, 농협개혁, 삶의 질과 복지, 통일농업 등 대선공약에서 제시한 국가 농정의 기본틀을 바꾸기 위한 개혁과제를 다뤄야 한다”고 제시했다.

농어업회의소 법제화에 정부가 의지를 보일 것을 촉구, 정 이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농정공약 1번에 포함된 농어업회의소 법제화를 통해 농업계의 20년 숙원을 해결하고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 이사가 생각하는 농어업특별기구 구성과 농어업회의소 법제화 시점은 올해다. 정 이사는 “올해를 넘길 경우 농업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는데다 동력도 잃게 된다”면서 “국회에 계류 중인 농어업회의소법은 여·야 합의로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고, 1년 유예기간 동안 농업계·정치권·정부가 보완계획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영규 기자 choyk@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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