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산림청 개청 이후
황폐했던 산림자원 복구 속도
국민적 참여열기도 ‘큰 몫’

임업투자 확대·재정효율 높여
일자리 창출 앞장설 계획
산림선도국가로 위상 높일 것


“지난 반세기 동안 산림자원의 양적팽창을 이루고, 질적으로 다양한 산림서비스 분야를 확대할 수 있었던 기반이 산림청 개청이었습니다.”

10월 18일, ‘제16회 산의 날’과 함께 진행된 ‘산림청 개청 50주년’ 기념식에서 밝힌 김재현 산림청장의 일성이다. 국토의 63%인 산림의 양을 늘리고, 양을 토대로 질을 높일 수 있게 된 데는 1967년 ‘산림청 개청’이 주효했다는 자부심 섞인 목소리다. 

그는 “1962년 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전국 산림황폐지를 복구하기 위한 치산사업 계획을 포함하고, 정부 시책사업으로 산림복구를 시작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1965년부터 1971년까지 치산 7개년 계획이 별도로 세워졌고, 이를 주관할 정부조직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요구로 산림청이 발족됐다”며 “이후 우리나라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산림녹화 성공을 이뤘다”고 말했다.

김재현 청장은 오늘날처럼 우리나라 산림을 일군 공이 ‘선배 임업인’에게 있다는 점을 되새겼다. 기념식이 ‘숲의 명예전당’이 있는 국립수목원에서 열리고 있는 데 대한 나름의 의미 부여였다. 김 청장은 “국립수목원 한 켠에는 헐벗은 국토의 산림을 헌신적인 노력과 의지로 가꾼 선배 임업인을 모신 ‘숲의 명예전당’이 있다”며 “현재 우리는 ‘숲의 명예전당’에 김이만, 현신규, 임종국, 박정희, 민병갈(Carl Ferris Miller), 최종현 등 여섯 분을 모시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숲의 명예전당’에 헌정된 임업인은 총 6명. 고 김이만 옹은 1922년부터 64년 동안 수목표본 수집과 종자시험에 헌신한 인물로 나무할아버지로 불렸고, 고 현신규 박사는 세계적인 임목육종학자로서 소나무와 포플러 육종에 열정을 쏟았다. 현 박사가 개발한 나무는 ‘리기테다소나무’와 ‘은수원사시나무’다. 고 민병갈 천리포수목원장은 1979년 한국인으로 귀화하기 전 1962년부터 충남 태안의 헐벗은 산림을 1만300여종이 서식하는 세계적인 수목원으로 바꿨는데, 이곳이 천리포수목원이다. 

독림가인 고 임종국 씨는 1956년부터 20여년간 전남 장성의 축령산 일대 534ha를 일구는 데 평생을 바쳐 ‘축령산’ 편백숲을 조성했으며,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은 1972년부터 황폐했던 4000ha에 300만본의 나무를 심은 가운데 충남대학교에 학술용 연습림을 1000ha를 기증, ‘숲의 명예전당’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기업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산림녹화 정책을 추진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김 청장은 “지난 세기 우리가 이룬 숲의 기적은 선배 임업인들 뿐만 아니라 배고픔을 참고 언 땅을 녹여가며 각고의 노력으로 나무를 심고 가꿨던 선배 임업인과 전 국민의 헌신적인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면서 “감히 전 국민 모두가 ‘숲의 명예전당’의 주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하며, 머리를 숙였다.

김 청장은 “선배 임업인들과 온 국민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이룩한 산림자원을 이제는 임업인과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곳으로 만들고자 한다”며 “이를 위한 산림청은 숲과 임업에 대한 투자와 재정효율성을 높여 산림분야가 소득주도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실현하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또 김 청장은 “국가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우리 산림에서 만들어지고, 지속가능한 발전과 삶의 질을 높이는 열쇠가 우리 산림에 있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산림자원의 순환적 활용과 산림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삶의 질 산업이 각광받는 시대를 대비하도록 하겠다”며 “OECD 국가들 중 네 번째로 높은 산림비율을 가지고 있는 우리 산림분야의 국제적 역량은 이미 아시아산림협력기구(AFoCO)를 주도해 만들 정도로 높아진 만큼 향후 50년은 국제적인 무대에서 산림분야의 선도국가로서의 위상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영규 기자 choyk@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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