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쌀은 여전히 기호식품이 아니라 우리의 주식이며, 우리 식문화의 근본이고 중심이다. 맞춤형 쌀가게 수백개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릴 때부터 공동 생산자로서 가치관이 형성될 수 있도록, 우리 농업과 식문화를 배우고 익히는 교육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조선후기,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남긴 한국인의 밥상 사진을 보노라면 지금과 너무 다른, 큰 그릇에 수북하게 쌓인 밥의 양을 보고 놀라곤 한다. 밥을 정말 저렇게 많이 먹었다고 하면서 말이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 친구 집에 놀러갔을 때에도 친구 어머님은 내 밥그릇에 밥을 수북하게 담아 주셨고, 우리 집에 손님이 오셨을 때에도 엄마는 알알이 수북한 고봉밥을 많이 드시라는 다정한 말과 함께 밥상에 올리셨다. 지금은 그 밥의 반의 반도 먹지 않을 만큼 밥을 적게 먹는 시기가 되었다. 쌀의 소비는 한 번에 줄어든 것이 아니라 지난 수 십 년 동안 줄어들어 왔으므로 쌀 소비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뉴스는 이제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사실 쌀 소비량이 줄어드는 것은 당장의 일상을 위협할 만큼 위험한 일도, 시급히 해결해야할 일도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쌀 소비량 감소를 걱정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 농부들은 어떻게 하나?’ ‘우리 농업은 어떻게 될까?’ ‘우리 전통의 식문화는 어떻게 될까’ 하는 주식인 우리 쌀의 생산과 생산자, 우리 식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과 걱정일 것이다.

일본을 다녀온 많은 사람들이 일본은 밥이 맛이 있고 또 쌀을 테마로 한 상점과 식당이 잘 되고 있고, 쌀 품종, 도정방법 등이 개인의 기호에 맞게 맞춤 설계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니 쌀 소비 감소시대에 우리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쌀에 대한 관심과 소비를 증진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실 제로 국내 대형마트에서는 다양한 품종의 쌀이 페트병에 담겨 판매되고 있으며, 다양한 쌀 품종을 선보이는 식당도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일본의 어느 식당과 상점처럼 라이프 스타일을 이야기하며 개인맞춤형으로 쌀을 판매하는 것이 과연 줄어드는 쌀 소비의 대안일 수 있을까? 일시적 유행을 넘어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판매 방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우리에게 쌀은 한동안 정부미와 일반미로 구분되어 왔고, 도정 상태에 따라 크게 현미와 백미로 구분되어 왔다. 현미, 백미를 넘어 오분도미, 칠분도미로 도정을 구분하고, 일반미를 넘어 고시히까리, 신동진과 같이 품종을 이야기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식민지 시대에는 더 많은 쌀의 수탈을 위해 일본이 우리 땅에서 증산을 위한 벼 육종을 해왔고,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의 쌀 목표도 식량 증산이어서 농민들이 다른 품종을 심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아내고, 강제로 통일벼, 유신벼 등을 보급해왔다. 그 후 자유롭게 벼 품종을 선택할 수 있게 된 후에도 농부들은 수매될 품종을 중심으로 벼농사를 지어오게 되었고, 농협으로 수매된 후에는 품종과 상관없이 혼합미가 되었다. 지역별로 내세운 것은 품종이 아니라 임금님이 먹던 쌀과 같이 이미지를 중심의 브랜드였으므로 쌀을 사먹게 되는 입장에서는 품종이 무엇인가 보다는 얼마인가, 국내산인가 아닌가, 어느 지역의 쌀인가가 구입의 중요한 기준이 되어 왔다. 이런 사회적 배경을 가진 우리가 쌀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한 대안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농사는 먹기 위해 작물을 인위적으로 배치하는 것이므로 농사의 완성은 수확이 아니라 먹는 것이다.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으므로, 누구라도 농사에 관여하지 않고 싶어도 관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소비자를 그저 소비자라 말하지 않고 공동 생산자라 말하곤 한다. 공동 생산자라는 단어 안에는 단순히 팔고 사는 관계가 아닌 함께 농업에 관여한다는 관계의 의미가 들어있다. 쌀 소비의 문화적 트렌드와 감각적인 소비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도 필요할 수 있지만 어릴 때부터 공동생산자의 가치관이 형성되도록, 다양한 품종이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길임을 알고, 우리 농업과 식문화를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교육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절실하다. 쌀은 와인과 다르다. 소비가 줄어들고, 식문화가 바뀌었다고 해도, 기호식품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의 주식이며, 우리 식문화의 근본이고 중심이다. 우리 농업과 미각교육을 필수 교육으로 지정해 학교에서부터 우리쌀, 우리 농업의 역사와 식문화, 요리방법을 배우게 해야 한다. 이런 기본이 전제되지 않으면 수백개의 맞춤형 쌀가게가 생긴다 해도, 매니아층의 전유물이 되거나 한번쯤 가볼만한 곳 정도의 수준을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가게를 운영하는 곳 역시 다양한 품종의 쌀을 들여오고, 전시하고, 그 때마다 도정하고, 또 보관해야하므로 일정 규모의 자본과 시설을 갖추지 않으면 운영하기 어려울 것이다.

청주 소로리에서 중국보다 몇천년 앞서 15,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볍씨가 발견되었고, 경기에서는 하이아미가, 충남은 삼광이, 전북은 신동진이, 전남은 해품이, 영남은 영호진미가 잘된다는 것을 상식으로, 내가 먹는 쌀이 어떻게 내게로 왔는지 아는 시대를 교육의 힘으로 만들어 가면 좋겠다. 그렇게 쌀을 지키고 먹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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