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우리사회 구성원으로 일하는 외국인 체류자, 외국인 노동자들의 식사법과 금기 음식은 비하하거나 도외시하면서 수출을 위해 할랄식품에 정성을 쏟는 이중성을 우리는 부끄러워해야하지 않을까? 종교와 그들 고유의 식사법에 따라 자연스럽게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그런 공간이 지역 곳곳에 마련되어야 한다.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라는 교육을 내내 받고 자란 나에게 음식의 세상은 유년기까지 그야말로 단일했다. 짜장면과 빵을 제외하고 내가 처음 맛본 뭔가 다른 나라의 음식은 아빠가 선물로 받아 집으로 가져 온 치즈였다. 한입 물고서는 그 낯선 맛과 냄새에 이걸 삼켜야하는지, 뱉어야하는지 어린 마음이 도통 심란하기까지 했다. 지금은 너무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지만 말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외국음식으로 받아들인 것은 중고등학교 다닐 때에 맛보았던,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D사의 햄버거였다. 지금의 햄버거 가게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메뉴도 적고, 매장도 작았지만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유행가를 들으면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D 햄버거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햄버거 말고도 간혹 근사한 곳에 데리고 가고 싶어 하는 어른들과 혹은 어쩌다 나간 미팅 자리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양손에 들어 어설프게 썰어먹던 비프까스, 함박스테이크는 양식의 모든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내가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햄버거 브랜드도 하나씩 늘어갔고, 경양식 가게가 아닌 레스토랑이 하나씩 생겨났다.

20대 어른이 되어 만난 맛의 신세계는 이태원에 있던 인도음식전문점이었고, 혜화동 어디쯤의 월남쌈 가게였고, 여의도 어디쯤의 타코 가게였다. 지금이야 낯선 음식들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글로만 읽던 음식을 먹는 일이 낯설고 묘해서 음식을 맛보는 것이 아니라 탐험을 하는 기분이 들곤 했고, 다양한 세계의 음식을 맛본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하고 심지어 살짝 우쭐대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지금은 누구라도 음식의 종류를 나라별로 구분하여 줄줄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세계의 모든 음식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의 외식 시장은 다채로워졌다. 음식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네 이웃으로 다른 나라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 살고 있다. 2016년 기준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200만명, 다문화가족은 96만명에 달하며, 경기도의 안산, 시흥, 평택 같은 지역은 인구의 5% 이상이 외국인들이다. 이렇게만 보면 한국은 인구 구성에서도 음식에서도 문화다양성을 구축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과연 음식은 문화다양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2016년을 기준으로 외국인 노동자는 110만명으로 추산된다. 고용허가제, 임금체불, 산업재해, 형편없는 식사 제공과 같은 문제도 심각하지만 직장과 사회에서 종교에 따라 먹지 않는 음식들이 그들의 식문화를 존중하지 않고 식사로 제공되는 일, 그들의 식사법을 비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몇해 전에 생각지도 못한 기회로 결혼이민자 여성들에게 몇 개월 동안 강의를 하게 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그 때 수강생분들과 온오프라인으로 친분을 이어가고 있는데 낯선 땅, 낯선 문화에서 많은 것들이 힘들었겠지만 그 중에서도 그녀들의 고달픈 일 중 하나는 음식이었다. 본인이 꾸린 가정인데도 자신의 가정 안에서 모국의 음식을 만들고 가족이 다같이 먹는 일은 은연 중에 금기시되거나 혹은 경시되었다. 아내 나라의 요리를 배우는 프로그램도 있지만 이는 대부분 일쇠성에 그치고 말며, 다문화요리교실의 대부분은 한식을 익히는 수업들로 이루어진다. 이제는 한국사회 적응을 넘어 다문화여성들 스스로 커뮤니티를 만들고 선배 이주자들이 후배 이주자들을 도와 한국 사회에서 성장해야한다고 말하면서도 우리사회는 그녀들 모국의 문화가 한국사회를 풍요롭게 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한국생활 익히기의 멘토로서 역할해주기를 기대한다. 음식을 통해 고립감을 해소하고, 공동체성을 복원하기 위해, 혹은 건강한 음식을 만들고 먹기 위해 마을부엌을 고민하고 지자체에서 지원사업을 하듯이 결혼이민자 여성들이 모국의 요리를 함께 만들고 나누고, 또 한국에 각 나라의 음식과 문화를 가르치는 다문화부엌을 만들고 운영할 수 있도록 지자체와 유관기관들이 지원한다면 우리사회 음식문화는 더욱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먹거리가 정의롭다는 것은 각 나라와 지역의 음식문화와 음식을 존중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 누구에게도 다른 문화권의 음식과 식사법을 비하할 자격도, 우리 음식만이 최고라고 주장할 자격이 없다. 어떤 음식이 더 고급이고, 어떤 음식이 더 문화적이라고 말할 자격도 없다. 민주주의와 진정한 다문화사회는 식탁에서도 구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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