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작은 핀 하나부터 커다란 파이프까지 농사에 필요한 소모품, 기자재들은 매우 많다. 농산물 포장상자, 완충재, 스티로폼, 난좌 등도 일정 정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쓰레기가 된다. 먹거리가 필수적으로 비용을 지출하는 쓰레기를 동반하고 양산하는 셈이다.


지금이야 가족 중에 환자가 생겨 부득이하게 농사를 잠시 쉬게 되어 꾸러미를 하고 있지 않지만 2009년부터 3년 전까지 농사를 짓고 꾸러미 회원제를 운영했다. 그 때는 내내 농산물 포장을 어떻게 해서 꾸러미 상자에 담을 지가 고민이었다. 여러 농부들이 함께하거나 규모가 제법 큰 영농조합법인이나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곳은 고기나 두부를 넣는 일이 있어 냉매제를 넣고 스티로폼 상자를 사용했지만, 우리는 소농, 가족농이고, 두부나 고기를 꾸러미에 넣는 일이 있지 않았으므로 상자는 종이 상자만 썼다.

처음에는 채소를 신문지에 포장했지만 잉크를 걱정하는 분들이 계셔서 제과점에서 쓰는 유산지라는 종이로 채소를 포장했다. 방울토마토는 PET 재질의 팩을 사용했고, 감자, 양파는 위생 비닐봉지를 사용했다. 쌀이나 곡류의 소포장은 진공포장을 했다. 따로 신청하는 분들에게는 마을 이웃 농부님의 유정란도 꾸러미에 담았는데, 깨지지 않아야 했으므로 완충재 포장을 했다. 되도록 재활용이 되거나 자연분해되는 것들로 포장을 하려고 했지만 농산물이 똑같은 외형과 똑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모든 품목을 그렇게 포장하기는 참 어려웠다. 유정란이 깨져서 배송되는 일이 종종 있었고, 너무 더운 날은 채소가 누렇게 뜬 채 배송되는 일도 있었다. 한여름이 지나고 나면 방울토마토팩을 모아두었다가 보내주시는 회원분도 계셨고, 유산지도 깨끗하게 정리해서 보내주시는 회원분들도 계셔서 스티로폼을 쓰지 않고, 가급적 친환경적인 포장을 하려고 하는 노력에 대한 보람도 느꼈지만, 꾸러미를 보내고 나면 아무것도 깨지거나 눌러지지 않고, 집집마다 신선하게 꾸러미가 도착했을까 걱정이 되곤 했다.

농사를 짓는다고 해서 모든 농산물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우리도 필요한 농산물과 식료품들은 당연히 구입을 했다. 장날, 시장에서 농산물을 살 때는 묶음채로 들고 오면 되어서 포장을 뜯고, 포장재를 정리하는 일은 드물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우리집 역시 온라인 쇼핑몰로 주문을 하면 포장을 뜯고 한동안 쪼그리고 앉아서 내용물을 뺀 나머지들을 쓰레기로 정리했다. 환경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했던 적이 있으므로 나름대로 재활용 분류 방법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포장을 분류하여 쓰레기장에 내어놓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우리집 꾸러미를 받으신 분들도 이렇게 하고 계시겠지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최근 방울토마토를 담은 PET 팩은 분리배출을 해도 국내에서 재활용될 수 없다는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는데, 우리집에서 여름마다 넣어드린 방울토마토팩이 결국은 재활용도 되지 못하는 쓰레기였구나 싶어 마음이 씁쓸했다.

그런데 사실 농산물을 보낼 때에만 쓰레기 분리를 걱정한 것은 아니었다. 수확을 마치고 비닐멀칭을 정리할 때에도 쓰레기를 한가득 만들어내는구나 싶어졌다.

우리나라에서 비닐멀칭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로 참외, 고추, 딸기, 참깨 같은 작물에서 시작되었고, 검정색 비닐 멀칭이 사용된 것은 1980년대 초로 알려져 있다. 비닐멀칭을 해야 하는가 말아야하는가는 우리 역시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농업을 주요 생계의 수단으로 일정정도 이상의 수확량을 거두어야 하고, 두세 사람의 노동력으로 유기농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비닐멀칭을 하지 않는 것은 참 어려웠다. 비닐멀칭을 하면 풀이 자라는 걸 막을 수 있으니 제초제를 쓰지 않고, 적은 노동력으로 유기농을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볏짚멀칭과 같은 방식을 선택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우리에게 비닐멀칭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했다. 그래도 뒤돌아서면 풀, 비가 오면 풀이 무성해지므로 고랑마다 또 부직포를 덮었다. 수확을 마치고, 밭을 정리할 때 내년에도 부직포를 또 쓰기 위해 풀풀 날리는 흙먼지를 덮어쓰며 돌돌 말아 밭 가장자리에 잘 놓아두곤 했다.

사실 농사는 많은 비용의 지출을 요구한다. 작은 핀 하나부터 커다란 파이프까지 농사에 필요한 소모품, 기자재들은 매우 많다. 밭작물인지, 논농사인지, 과수인지에 따라 다르지만 농산물을 팔기 위해서도 필요한 포장재들이 많다. 상자, 완충재, 스티로폼, 난좌, 이 모든 것은 일정 정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쓰레기가 된다. 먹거리가 필수적으로 비용을 지출하는 쓰레기를 동반하고 양산하는 셈이다.

전적으로 개인의 힘으로 농부가 이 모든 것 없이 농사를 짓고, 판매할 수 있을까? 더 친환경적인 농사 용품, 더 친환경적인 포장재는 농부 개인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농업용 쓰레기를 에너지로 만들거나 이를 다른 제품화하는 민간 벤처회사들이 있다. 그러나 국가가 정책과 제품 개발에 적극 나서서 농촌에 보급해 주어야 농업용 쓰레기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농업이 지구 생태계의 보루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국가는 마땅히 이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공품이나 파손 등으로 불가피한 것들을 제외하고, 시장이나 로컬푸드마켓, 생활협동조합 매장에서 1차 생산물을 장바구니에 담거나 종이 포장해서 가져갈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 무게대로 값이 매겨지는 감자나 양파는 종이상자에 담아 주면 되고, 대파나 당근은 종이에 말아주면 좋지 않을까? 용기를 가져오면 고기와 생선을 담아 사갈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먹고, 농사짓는 일이 친환경적인 삶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인 노력이 부단하게 이뤄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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