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청년들의 귀농귀촌을 장려하기에 앞서 지금 농촌지역에 살고 있는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 지역을 떠나지 않고, 지역 안에서 그들이 일하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 하는 고민과 실행이 선행되어야하지 않을까.


지금은 아이가 넷이지만 2009년 우리가족이 장수로 내려왔을 때는 여덟살 큰 딸과, 일곱 살 딸쌍둥이 이렇게 아이가 셋이었다. 아이들은 장수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마을 저수지로, 감자밭으로 내달리며 놀았고, 논에 우렁이를 함께 풀었으며, 모기에 잔뜩 물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텃밭을 만든다고 쇠스랑으로 텃밭을 고르기도 했다.

한해 두해 세월이 흐르면서 아이들은 농촌에 사니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으며, 이제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엄마 아빠가 우리를 산골에서 살게 해서 하고 싶은 것도 마음껏 하지 못하고, 가고 싶은 곳도 마음껏 갈 수 없다고 종종 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농촌에 살아서 무엇이 좋은가보다 농촌에 살아서 좋지 않은 점을 더 많이 나열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청년이 되었을 때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비단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농촌에 사는 청소년들이라면 모두들 우리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리라는 것은 지역 청소년과 몇 번만 이야기를 나누어도 금세 알 수가 있다. 심각한 고령사회에, 돈 안되는 농업, 부족한 일자리, 내가 청소년이라도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농촌에서 자라서, 농촌에서 자신의 할 일을 찾을 수 있게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몇 해 전에 장수의 몇몇 농부님들과 함께 우리지역 고등학생 20여명과 서울에서 농업을 생각하는 워크숍을 진행해보았다. 도시농업 현장을 둘러보고, 농부와 요리사가 함께 하는 직거래장터를 가고, 농업을 중시하며 전환사회를 고민하는 청년들의 모임에도 가고, 농업과 연계된 일을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끊임없이 농부와 연결되고자 하는 청소년요리학교에서 요리를 만들기도 했다.

학생들이 이 워크숍을 통해 농촌을 완전히 새롭게 인식하지는 못했겠지만 농업과 농촌의 중요성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재정 지원을 어느 곳에서 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이 프로그램을 계속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농림어촌 청소년 진로 교육을 비롯한 많은 교육이 농업을 배제한 채 운영되어 왔다. 애향재단을 비롯한 농촌지역의 각종 장학금과 기금은 어떻게 우리 지역에 청소년이 남아 청년이 되게 할 것인가에 쓰여지는 일은 없고, 대도시 유명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성적 좋은 학생들을 위해서만 쓰여지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으면 농촌의 미래는 없고, 청소년, 청년이 떠나버리면 농촌의 미래는 없다. 농촌을 살리는 농촌지역에 맞는 인재를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는 농촌의 미래, 우리 농업의 미래와 직결되어있다. 과소화 대응 인력을 고용하고, 청년들의 농업분야 진출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 청년 농촌창업을 지원하는 등 농촌으로 청년을 불러 모으기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청년들의 귀농귀촌을 장려하기에 앞서 지금 농촌지역에 살고 있는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 지역을 떠나지 않고, 지역 안에서 그들이 일하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 하는 고민과 실행이 선행되어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난해 어느 마을의 농촌체험프로그램 컨설팅을 하면서, 지역주민의 자녀, 손자녀가 이곳에서 일할 수 있다면 마을을 떠나지 않아도 되리라는 생각으로, 이 일자리는 현재 주민들인 어르신들의 일자리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이곳에서 살고자 하는 청년들의 일자리로 기능하게 하는 것이 더 지속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거듭 피력한 일이 있었다.

농촌청소년을 위한 농업특화형 진로탐색 수업이 진행되고, 농촌청소년이 청년이 되었을 때 지역에서 그들의 일자리를 마련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위한 재원 조달 방안을 만든다면 농촌은 분명 젊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다. 젊은 세대가 농업의 각 분야에서 일하고, 농촌에서 살지 않으면 먹거리 체계는 무너지고 만다. 먹거리체계가 무너지는데 먹거리가 정의로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2004년 이탈리아의 국제슬로푸드협회에서는 청년들이 농업과 먹거리의 공공성을 인지하고, 다양한 관련된 사업분야로 진출하는 것을 돕기 위해 미식학대학교(University of Gastronomic Sciences)>를 설립하였다. 미식학대학교에서는 농학과 식품영양학, 조리학, 문화인류학, 역사학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협업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으며, 슬로푸드 장인생산자에게서 배우는 실무형교육, '소멸위기 먹거리자원 조사 및 기록활동, 미식교육, '먹거리현장탐방 수업을 진행한다. 이것을 배우기 위해 전 세계 많은 청년들이 미식학 대학을 찾아간다.

우리 농촌이 청소년, 청년을 위해 이런 프로그램을 배우게 하고, 이런 학교를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정부와 지자체, 교육당국, 그리고 농업분야 여러 민간단체의 각성을 촉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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