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돈 안되는 농업에 인건비 지불여력이 충분하지 않음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농업계 최저임금이 보다 더 낮게 적용되고, 내국인과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달리하고, 숙식비를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면 농업계 사정이 나아질까?
내가 사는 장수는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사과의 고장이다. 사과는 늘 일손을 필요로 하는 농업이다. 가지를 칠 때에도, 꽃을 딸 때에도, 열매를 솎아낼 때에도, 수확을 할 때에도 쉴 틈 없이 많은 사람의 일손을 필요로 한다. 나도 몇 번 사과농장에 일손을 도우러 갔었다. 크기별로 선별된 사과를 포장하는 일이었는데 2009년에 8시간 일을 하고 5만원 정도 받았던 것 같다.
일 못하는 나야 그저 짧게 도와주러 갔을 뿐이어서 그렇지만 다른 일꾼들은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온종일 사과밭에서 일을 한다. 숙달 되었는지 여부에 따라 8만원도 받고, 10만원도 받는다고 했다. 쉴 틈 없이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빌려야 하니 인건비도 농장에서 소요되는 큰 비용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공판장에 사과를 내는 농장과 직거래 하는 농장, 계약재배로 사과를 낼 곳이 있는 농장은 같이 인건비를 들여도 상황은 좀 다를 것 같다. 가격이 들쭉날쭉한 공판장은 사과 값이 좋지 않으면 심각한 적자일 수 있지만 농가 스스로 가격을 정하여 팔 수 있는 직거래는 소요된 비용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 계약재배의 경우는 가격이 이미 정해져 있으니 예상소득을 근거로 인건비 등 소요비용의 폭을 조정할 여지를 가지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지급되는 인건비는 대부분 공식적인 임금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지역에서 알음알음 소개되어 일을 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그 농장에서 일을 계속하게 되어 따지고 들자면 일용직이기는 하나 소위 ‘놉’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건비는 품삯의 개념으로 공급되는 것이라 최저임금보다 액수가 적거나 많아도 최저임금을 따르지 않는다. 우리 어머니 손주 용돈 버느라 하루 종일 일하시네,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으시려고 고생하시네 하고 마음은 아플지언정 일하는 사람도 일을 시키는 사람도 최저임금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아왔다. 그러나 이런 놉을 쓰는 방식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한편에서는 정식 농업노동자를 고용하기도 한다.
놉과 달리 농축산업에서 정식 고용되어 일하는 경우, 특히 농축산업 고용노동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이주노동자의 경우는 고용허가제에 따라 일을 하고 있는 만큼 노동관계법령을 지켜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뉴스를 통해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거나, 최저임금을 지급받지 못하거나, 축산농장의 가스에 질식해 사망하거나 비닐하우스 숙소에 거주하고 있다거나, 여성들의 숙소에 잠금장치가 없었다거나 하는 소식을 듣게 되곤 한다.
국제인권단체와 한국의 농업단체들은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수년간 캠페인을 벌여왔고,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느껴 2018년 3월, 농업분야 외국인 노동자들의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숙소 최저기준 준수 등의 지침을 내놓기까지 했다. 이처럼 농축산 이주 노동자를 상대로 한 노동관계법령 위반이 자주 적발되고 있음에도 농촌에 일할 사람이 없으므로 농업계는 이주노동자들이 더 많이 필요하므로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농업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개선책을 마련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아무리 청년 귀농을 외쳐도 귀농한 청년들은 약간의 인턴십을 거치는 것이라면 모를까 누군가의 농장에서 농업노동자로 일하지 않는다. 스스로 농장을 일구거나 귀촌하여 농촌에 필요한 다른 일들을 설계하는 것이 현실이다. 3만여명에 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이 농업 현장을 지키고 있다.
2019년 최저임금이 시간급 8,350원으로 결정되었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농업계도 반대의 목소리를 보태고 있다.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게 해달라거나, 이주노동자들과 내국인들의 최저임금에 차이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과 숙식비 등 현물 비용도 최저임금에 산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나 역시 농촌에 살고 있는 농업관련 일을 하고 있으므로 농업계가 최저임금을 우려하는 배경과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돈 안되는 농업에 인건비 지불여력이 충분하지 않음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농업계 최저임금이 보다 더 낮게 적용되고, 내국인과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달리하고, 숙식비를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면 누가 농촌에서 일을 하게 될까? 이렇게 되면 농업계 사정이 나아질까? 싶어진다.
돈 안되는 농업의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다른 데에 있다. 농업의 공공성 인정을 바탕으로 한 농민기본소득제의 도입, 최저생산가격보장제, 기초품목수매제, 유통혁신, 단순히 인구 유치가 아니라 지역재생으로서의 귀농귀촌 정책, 농촌 생활 인프라 확충 등의 농업정책과 농촌정주환경의 혁신이 우리 농업의 근본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부담이 안 될 수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 반대 대신 최저생산가격보장제를, 기초품목수매제를, 농민기본소득제를 요구하고 관철시키자. 이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농업, 살만한 농업의 조건 아니겠는가?
- 기자명 한국농어민신문
- 승인 2018.07.20 16:06
- 신문 3027호(2018.07.24) 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