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농촌재단 유럽농업연수 동행취재 <3>농민은 어떻게 키워지는가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 켐프텐 농업직업학교의 졸업반 학생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낯선 이방인들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했다.

올해 1월 집계된 독일의 청년 실업률은 6%로 EU 회원국 중 최하위다. 스위스도 2008년 이후 8%대를 유지 중이다. EU 평균이 14.9%인 점을 감안하면 꽤 낮은 비율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한 축에는 독일에서 시작된 직업교육제도가 있다. 독일 직업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듀얼 시스템’. 학교에서의 이론 교육과 현장의 실습 교육을 병행하는 이원화 직업교육이 이뤄진다.

독일에서 공인된 직업훈련 직종은 약 330개로 각 직종에 대한 훈련 규정이 따로 있다. 물론 농업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독일과 스위스에서 농민은 어떻게 키워지는지, 독일 바이에른주에 있는 ‘켐프텐 농업직업학교’와 스위스 베른주에 있는 ‘인포라마’를 찾았다.


|독일 켐프텐 농업직업학교

이론+실습 병행 ‘듀얼시스템’ 주목
실습은 마이스터 농장서만 가능
3년 후 시험 통과해야 농민 자격
졸업 시험은 농업회의소가 주관
청소년기부터 체계적 교육 눈길

학생 23명 중 3명만 ‘비승계농’
우리보다 더 높은 진입장벽 실감


독일은 만 6세에 초등학교에 입학, 4년 과정을 마치고 10살이 되면 진로를 결정한다. 대학 진학을 원하면 인문계 과정인 김나지움(Gymnasium)에서 9년, 직업교육을 원하면 하웁트술레(Hauptschule) 또는 레알슐레(Realschule)에서 6년을 공부한 후 통상 3년인 직업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바이에른 주에 있는 켐프텐 직업학교에는 3년제 농업직업학교 과정이 있다. 3년의 과정을 마치고 졸업시험을 통과하면, 농민으로서 농장을 경영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원한다면, 공부를 더해 마이스터(Meister) 자격을 취득하거나, 대학교로 진학해 교육을 더 받을 수도 있다. 선택은 학생 몫이다.

학교에 도착하니 이번 학기 졸업반 학생들 23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수단을 안내한 칼 리페르(Karl Liebherr) 선생님은 “졸업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 학생들이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했지만, 낯선 이방인들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학생들의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했다. 먼저 학생 3명이 간단한 프리젠테이션을 준비, 농장 소개와 함께 앞으로의 꿈을 밝혔다. 3명 모두 승계농이었다.
 


▶카르멘 히브레(Carmen Hieble)의 집은 젖소 120마리, 육성우 80마리를 키운다. 이곳 알고이(Allgäu) 지역 낙농가들의 평균 사육두수가 30두 정도니, 대농에 속한다. 1883년에 지어진 집에서 아버지(50), 엄마(46), 그리고 4명의 형제자매가 산다. 농업마이스터인 아버지로부터 도제교육을 받는 실습생 1명도 함께 있다. 올해 13살로 카르멘네 농장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암소, 그라지아(Grazia)를 소개할 땐 영락없는 고교생이다. 새끼를 11마리나 출산했다고 한다. 여성으로서 농업을 하려고 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고 명쾌했다. “농사가 재미있으니까.”

▶4대째 치즈를 만들고 있다는 마틴 릴러(Martin Riller). 현재 마틴의 집은 3ha의 산림과 47ha의 영구 초지를 관리 중이다. 이 중 21ha는 소유, 26ha는 임차지다. 해발 960~1200 고지대에 위치, 여름에는 소를 산으로 올리고, 겨울에는 내려와 초지에서 키우는 알프농업을 한다. 최근 몇 년 간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축사지붕과 환기구 등의 시설을 현대화하고, 건초 저장창고 등을 신축했다고 설명한 마틴은 현재 우유 산업이 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자신은 치즈 가공으로 부가가치를 높여 큰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파트리치아 레머호퍼(Patricia Lämmerhofer)의 집도 알프농업을 하며 농가 민박을 운영한다. 숲 6ha, 산림 13ha, 목초지 29ha 등 총 48ha에서 젖소인 갈색소(Braunvieh) 19마리를 키운다. 여름철 산꼭대기에 방목해 목초만 먹고 자란 젖소에서 착유한 우유로 최고급 치즈 ‘에멘탈러(Emmentalr)’를 만드는데, 아직까지 전통적인 제조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민박집을 찾는 아이들을 위해 닭, 염소, 토끼, 고양이 등의 가축도 키우고 있단다. 파트리치아는 부모님을 거울삼아 앞으로 더 발전적으로 농장을 키워보고 싶다고 했다.

◆현장과 밀착된 현장 중심교육=농업직업학교의 교과 과정은 학교에서의 이론 교육과 마이스터 농장에서의 실습 교육이 병행되는 듀얼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1학년은 1주일에 4일 등교- 하루 농장, 2~3학년이 되면 1일 등교, 4일은 농장에서 실습교육을 받는다. 2학년부터 현장실습 비중이 훨씬 커지는 것이다. 학교내에 여러 실습장도 갖추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실습농장은 반드시 마이스터가 운영하는 농장이어야 하며, 학생들은 농업회의소를 통해 실습농장과 먼저 직업훈련계약을 체결한 후, 농장과 가까운 인근학교를 선택해 진학한다는 점이다. 또 계약기간 동안에는 훈련수당이 지급되는데, 1학년은 월 800 유로(100만원), 숙련도가 높아진 3학년은 1000 유로(약 130만원) 정도를 받는다. 시험 주관을 학교가 아니라 농업회의소가 한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타 분야의 경우 상공회의소나 수공업회의소가 맡는다.

이처럼 독일의 농업교육은 농민이 되는 것을 목표로 청소년기부터 체계적인 과정을 밟아 나간다. 너무 쉽게 귀농을 장려하고, 우후죽순 늘어난 민간 교육기관들이 저마다 알아서 교육훈련을 시키고, 현장과 괴리된 부실한 교육에 항의할 틈도 없이 의무교육시간을 채우는데 급급한 우리의 농업교육 현장이 자꾸 겹쳤다.

◆그러나 높은 진입장벽, 승계가 아니면 어렵다=연수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농민들은 가업 승계농이었다. 학생들 중에서도 승계농이 아닌 학생은 단 3명뿐이었다. 대체로 장남이 가업을 승계해 온 전통 때문인지 여학생도 4명밖에 없었다. 그만큼 비승계농이나 여성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다는 얘기다. 비승계농인 학생 중 한 명에게 앞으로 어떻게 농사를 시작할 생각이냐고 묻자 “농장을 이어받을 계획인 여성과 결혼하거나, 승계할 사람이 없는 농민을 찾거나, 아니면 농업분야에 취직해서 기회를 보려고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를 이어 농사짓는’ 전통과, 새로운 진입 자체가 어려운 현실 사이. 그 어디쯤 ‘지속가능한’ 농촌의 미래가 있는 걸까.


“농업 미래 이끌 고급인재 양성 최선”
한스 에츨러 교장

“직업학교의 궁극적 목적은 학생들이 자기가 미래에 종사할 직업에 대해서 더 깊이 숙련되는 것이다.”

한스 에츨러(Hans Etzler) 교장은 “여기서 공부한 학생들이 농가의 고급인력으로 농업 전체의 발전을 이끌고 갈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EU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 스페인의 농업학교와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다. 그는 “2주씩 상대 국가의 농장에서 실습을 하는데,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도 각국이 처한 농업 현실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며 “EU 공동체 안에서 농민들끼리의 교류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최근 정치권과 국민들이 기후변화나 환경문제 등에 민감해지면서 농업을 굉장히 주목하고 있다”며 “궁극적으로 국민들이 농업에 원하는 것은 고품질의 안전한 식량을 생산하고, 경관과 환경, 곤충, 동물 등을 잘 보호하는 것인 만큼 학교가 이를 잘 실천할 수 있는 농민을 양성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츨러 교장은 오는 10월 제주도를 방문한다. ‘2019 제주진로직업박람회’에 초청을 받은 것. 그는 “한국에 가서 독일의 직업학교와 듀얼 시스템에 대해 소개할 계획”이라며 “이를 계기로 지속적인 교류가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스위스 베른주 인포라마
“아름다운 알프스 경관은 농민들이 있기 때문이죠”


농업학교·농기센터 결합 형태
교육·농촌지도·컨설팅 등 수행
3년교육·시험 통과해야 ‘농민’

“농민이 있어야 경관 지속 가능”
농가당 연 6500만원 직불금 지급
도농간 소득 격차 해소가 핵심
그래도 젊은층은 농업 기피 걱정

스위스 베른 주에는 6개의 인포라마(INFORAMA)가 있다. 우리나라 농업학교와 농업기술센터가 결합된 형태로 기초교육에서부터 농촌지도, 컨설팅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6개 학교의 전체 학생 수는 1600명. 우리가 방문한 베르너 오버란트(Berner Oberland) 인포라마는 1909년에 설립, 올해로 1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스위스의 농업교육 제도는 독일과 유사하다. 기본적인 교육방침은 이론과 실습이 병행되는 이원화 교육이다. 독일과 다른 점은 1~2학년 때 실습위주의 교육을 받고(학교 출석일수 40일), 3학년 때 집중적으로 학교 수업이 진행된다는 점(학교 출석일수 100일).

△작물재배 △축산 △농기계 △농업경영을 필수과목으로 배우는데, 세부적으로 보면 토양학·비료화학·사료작물·유기농업·고산지 농업(작물재배), 소 사양관리·질병관리·유가공(축산), 기계화·기계비용·안전교육(농기계), 경영분석·보험·세금·회계·농업정책(농업경영) 등이 포함된다.

이렇게 3년의 과정을 거쳐 국가자격시험에 합격하면 농민 자격을 얻는다. 물론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면 전문학교나 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다. 연수단을 안내한 토비아스 푸어러(Tobias Furrer) 교장은 “나도 농사를 짓기 위해 직업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으로 진로를 바꿔 교사가 될 수 있었다”며 "여기서는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교사가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농민들에게 직불금을 지급하는 이유=푸어러 교장은 스위스 농업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전체 농가 수는 5만1620호(2017). 평균 경지면적은 23.6ha. 그 중 초지가 22.7ha이며, 1/3은 임대된 땅이다. 평균 가축 사육두수는 25.9두.

스위스에서 부부노동력을 가진 한 농가가 농업을 통해 얻는 평균 수입은 5만 프랑(6000만원, 2014년 기준) 정도인데, 이를 성인남성 1인당 수입으로 환산하면 3만5000 프랑(4200만원)을 버는 셈이다. 도시 노동자 평균소득이 6만5000 프랑(7700만원). 도농간 소득격차가 크다.

따라서 스위스 정부는 이러한 소득격차를 메우기 위해 노력 중이다. 가장 중요한 수단은 직접지불. 현재 스위스의 직불금 총액은 28억 프랑으로 우리돈 3조 3356억원에 달한다. 농가당 매년 평균 5만5000 프랑(6500만원)의 현금이 지급되는 셈이다. 평지보다는 고산지 농가일수록 직불금 비중이 더 높아진다.

스위스의 국내 총생산(GDP)은 약 6500억 프랑, 그 중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 미만. 농업종사자 수는 3%에 불과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직접지불금을 지불할까. 그 이유에 대한 푸어러 교장의 긴 설명이 이어졌다.

“고산지 농민들이 있기 때문에 스위스 고유의 자연과 문화 경관이 보존되는 것이다. 고도가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한 경사지는 농민들이 없다면 관리가 어렵다. 농민들이 양을 키우는 건 경제적으로 큰 의미는 없지만 양들이 소가 못 올라가는 급경사지에 올라 풀을 뜯어먹으면서 경관관리를 해준다. 또 농민들은 특별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없어져 버리는 작목(목화)을 지켜준다. 초식가축인 소·양에 농후사료를 주지 않음으로써 축산분뇨의 환경부담도 줄인다. 이렇게 동식물의 다양성을 유지해주고, 그래서 자연 자원이 지속가능하도록 하는 역할을 농민들이 해주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보상하는 것이다. 이는 국제무역기구에서 공인된 사항이다.”

◆스위스 농업을 위협하는 것들=하지만 이같은 지원에도 불구 농민의 숫자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젊은이들이 농사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위스 같은 경우 고산지대라 거의 육체노동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일이 힘들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힘들게 일하는데도 도시에 비해 수입이 많지 않고, 휴가를 잘 못 가는 점도 큰 단점이다.”

스위스 국민들의 농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확산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푸어러 교장은 “직불금 지급을 위해 스위스의 한 가족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이 2000 프랑(240만원) 정도다. 많은 국민들이 필요성에 공감하긴 하지만, 지원이 너무 많다는 문제 제기도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농민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관광자원의 가치, ‘메이드 인 스위스’의 가치, 산악지대 인구 유지의 중요성 등을 지속적으로 알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전했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기획을 마치며/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다

수년 전부터 EU의 공동농업정책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졌다. 관련 보고서도 많이 나왔고, 각종 학술행사가 열릴 때면 반드시 언급되는 주제기도 했다.

그동안 추진됐던 효율과 경쟁력 중심의 생산주의 농정이 실패했다는 반성이 컸다. 농업경쟁력 제고, 또는 삶의 질 향상을 명목으로 수백가지 정부 사업이 추진됐지만 정작 농민들은 들러리만 서고, 수많은 농관련 기관, 컨설팅업자, 기업들의 배만 불렸다는 공감대가 확산됐다.

‘직불’ 중심의 EU 농업정책이 대안으로 부각된 건 이 때문이다. 시장에서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려면 마을마다 제대로 운영되지도 않는 건물 올리고 시설 투자하는 데 돈 쓰지 말고, EU처럼 농민에게 직접 현금을 지급, 농가에 적정 소득을 보전해 주라는 것. 문재인 정부 들어 ‘공익형 직불제’ 논의가 시작되고, 지자체를 중심으로 농민수당 논의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확실히 유럽은 농업의 다원적 가치에 대한 국가적 관심 속에 직불금을 수단으로 농가소득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농업·농촌·농민이 안고 있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넓은 초지와 밭농사를 기본으로 하는 유럽과 쌀 농사를 중심으로 해온 우리나라는 각자 처한 농업의 여건과 역사, 농정의 맥락이 다르다. 꼭 배워야 할 것도 있었지만, 배울 수 없는 것도 있었고, 그들보다 우리가 나은 지점도 있었다.

곧 직불제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의 장이 열릴 것이다. 분명한 것은 기존의 생산주의 농정, 토건주의 농정을 지속가능한, 농민 중심의 농정으로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과장과 왜곡을 걷어내고, 무엇이 우리 농민과 농업을 위해 옳은 길인지, 좀 더 차분히 살펴보기 위해 더 많은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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