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경애

[한국농어민신문]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자치센터에서 운영하는 기공 수업이 있다. 출석 인원이 적어지면 내년 일정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된다며 총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얼마 전 수술한 다리가 오후만 되면 천근 같이 저리는 후유증이 있다. 쉴까 말까 고민하다가 일어나 센터로 향한다.

역시 출석 인원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집집이 도회지로 나가 사는 아들딸 또는 친척들이 피서 삼아 왔다고들 한다. 나 역시 요사이 잠깐 다녀간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기다리는 중이다. 8월 초, 중순 휴가 때면 어김없는 농촌풍경이다.

골목마다 차 세울 곳이 없다. 마을 회관 역시 마찬가지다. 어디 이곳뿐이랴. 산천초목이 수려한 주위로는 밭 입구까지 빼곡히 차들을 주차해놓는다. 하지만 올해는 예년과 조금 다른 것 같다. 피서 겸 고향 집을 찾은 자식들이 오기는 했지만, 하룻밤만 자면 거의 떠난다. 우리 아들 역시 점심만 먹고 갈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하룻밤은 자고 갈 거라 믿고 기다렸다.

점심 전 다리에 통증이 오고 쑤셔서 누웠다. 눕자마자 현관문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며칠 후 온다는 아들이 까만 얼굴로 들어선다. “아들, 모레쯤 온다 하지 않았나?”라고 묻자 그때쯤엔 직원들도 휴가를 가는데 아들이 안 오면 서운해 할까 봐 잠시 들렸단다. 그런데 자영업을 하는 아들 안색이 어둡다. 기운도 없어 보이고 많이 지쳐 보인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기본 시급이 오르면서 하루하루가 힘겹다고 했다. 직원의 월급을 주고 나니 남는 게 없단다. 몇 달째 마이너스라는 말에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딸은 할 말이 없다고 했었다. 이 시기를 이겨내고 있는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농촌도 매한가지다. 일당은 오르는데 일손은 노후화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이 외진 산골에도 외국인 일꾼들이 단체로 합숙을 하며 일손을 감당하고 있다. 문제는 농산물 가격도 없는 데다 소비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일손을 쓰기도 힘든 집은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뙤약볕에서 농사를 지으면 뭐 하나. 빚이 느는 집이 많다. 그러다 보니 각자 할 수 있을 만큼만 농사짓자는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다.

우리도 올겨울엔 과수원 한 뙈기를 정리할 예정이다. 우리 부부가 일할 만큼만 농사지으려는 것이다. 힘들어하는 아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지켜보는 도리밖에 없다. 이 또한 아들의 삶이고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몫인 것 같아서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게 한마디 한다. 정 힘들면 집에 와서 아빠랑 농사지어도 된다 했더니 아직은 견딜만하단다. 걱정하지 마시라는 씩씩한 대답에 잠시나마 가슴을 쓸어내린다.

경기가 어렵다는 것은 뉴스를 통해 자주 들어왔다. 올해 들어 더 추락한 농산물 가격을 보면 체감으로 느끼는 경기는 더 크고 정말 힘든가 보다. 어미가 해줄 수 있는 건 따순밥 차려주는 게 전부다. 서둘러 밥을 안치며 아들에게 뭐 먹고 싶으냐고 물어보니, 그저 집밥이면 족하단다. 세상에서 엄마 밥보다 더 힘나는 건 없다니 그 말에 가슴이 먹먹하다. 사서 먹는 밥에 얼마나 질렸으면 저럴까 싶어 속이 아리다. 얼른 장가라도 가 색시가 차려주는 밥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장가 좀 가라고 그에 한마디 하려다가, 안 그래도 힘든데 잔소리 같아서 간지러운 입을 애써 다문다. 그렇게 점심을 맛나게 먹고는 일어선다. 졸리면 가기 싫어질지도 모른다며 서둘러 떠나는 아들, 힘내라며 안아주면서 등을 토닥여 줬다.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이 또한 지나간다”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다보면 결국에는 좋은 날이 오리라 믿어본다. 우리네 농부들이 그 말 한마디에 힘을 내지 않았던가. 하늘은 힘들면 견뎌낼 수 있게 숨 쉴 구멍은 열어 준다고 했다. 곧 활기찬 날이 올 것이다.

“아들아 그때까지 조금 더 힘을 내보자.”

/금경애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원, 모듬북 공연단 ‘락엔무’ 회원, 사과과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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