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재욱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소장

마을 스스로 역량 키우도록 뒷받침
내부 자생·자발적 동력에 의해
역량 강화될 때 지속가능성 확보


역량강화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또 각종 교육이나 연수에도 ‘역량강화’라는 과정은 빠지지 않고 들어가고 있다. 왜, 갑자기 역량강화라는 말과 프로그램이 이렇게 빠지지 않고 들어가게 되었을까?

1990년대 UR 협상 이후 우리나라는 본격적으로 농산물 수입개방의 빗장을 풀면서 농업을, 식량자급을 포기하였다. 그 이후 우리 농업은 경쟁력 시대로 들어갔고 농업과 농촌이 스스로의 힘으로 발전하기 어렵다고 설정한 정부는 각종 농업정책을 통해 농촌을 지원하게 된다.

비교우위론에 의해 수입농산물과 경쟁력이 떨어지는 농산물은 과감히 폐농, 폐원을 유도했고 그렇게 넘어진 작물은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되었고 우리 식량자급율 50%를 겨우 유지하며 식량주권은 무너졌다. 농촌은 도시로 젊은 인력을 내보내다 이제는 더 이상 내보낼 사람도 없이 노인들만 사는 경로당마을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농정 패러다임의 전환을 하겠다고 했다. 이는 그 동안 이어져왔던 농정설계방식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농어촌발전종합대책이나 농어촌구조개선사업 등 정부의 중앙집중식 설계주의 농정, 생산력 중심의 경쟁력 강화 농정은 농어업 구조조정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내었으나 농어업의 생존력이나 자생적 동력은 오히려 약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농정패러다임의 전환이란 지방정부의 농정 자율성 강화와 마을 주민들의 자주적 결정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보고서 제출하고 영수증 첨부하는 천만원 보다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지원금 백만원이 더 창의적이고 마을 사람들 필요에 맞게 쓸 수 있는 맞춤형 지원이라고도 한다.

마을 사람들이 민주적 결정 과정을 통해 마을에 필요한 사업을 계획하고 거기에 맞는 예산을 수립하면 지방정부와 전문가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거버넌스 형태의 심의기관이 이를 검토하여 예산을 결정하는 지원 시스템이 주민들의 필요와 요구에 맞는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과거 선진지 견학이나 기술교육 하듯이 역량강화를 필수 아이템으로 넣는다고 역량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농업·농촌이 지속가능하고 주민들이 자기들의 삶을 형편과 요구에 맞는 사업을 설계하려면 주민들의 자치역량이 성장하여야 한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민주적 의사결정구조가 세워져야 한다.

자기 마을에 필요한 사업을 계획하고 거기에 맞는 사업을 찾아서 공모하고 선정되어 지원이나 보조금을 사용하는 마을이 늘어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노인들을 돌보는 사업을 하는 마을, 마을 주민들이 아이들의 방과 후를 관리하는 마을공부방, 영농지원자를 받아서 체계적인 훈련을 시키는 마을, 협동조합을 통해 마을에서 요구되는 사업을 풀어가는 마을, 원주민과 이주민의 갈등을 민주적으로 소통하고 잘 관리하여 화합하는 마을 등 아직 남아있는 인적자원과 새로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잘 융합하여 모범적인 마을을 만드는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방소멸이나 농촌과소화에 대한 대응은 정책담당자들의 몫이고 마을사람들은 우리 마을의 즐거움과 행복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면 된다.

이렇게 마을 스스로의 힘으로 마을을 지키고 주민들의 요구를 찾아서 사업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행정기관은 마을이 스스로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를 가지고 마을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마을 내부에서 자생적이고 자발적인 동력에 의해 역량이 강화될 때 진정 마을의 지속가능성이 확보되고 새로운 활력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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