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정문기 농산전문기자]

필자는 퇴근 후 가끔씩 신문사 근처에 있는 가락시장을 둘러본다. 경쾌한 경매 호창소리와 힘들게 키워온 농산물을 출하하기 위해 온 농업인, 그리고 경매사와 중도매인들의 분주한 모습에서 생생한 삶의 모습과 현장을 느낄 수 있어서다. 이런 생동감은 언제나 나에게 큰 힘이 되곤 한다.

현대화사업으로 새로운 건물이 많이 들어서고, 예년보다 깔끔한 모습으로 변했지만 아직도 그대로인 것이 있다. 바로 ‘깔’, ‘다이’, ‘다마’ ‘다마네기’, ‘낑깡’ 등 가락시장 종사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다. 한때 이곳을 오랫동안 취재해왔던 나에게는 생소하지 않은 단어이지만 이곳을 찾는 도시민들은 경매장 이곳저곳에서 오가는 대화를 쉽게 알아듣지 못한다. 

이처럼 일본의 경제보복에 반발하는 이른바 ‘NO 재팬’이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곳곳에는 일본어의 잔재가 남아있다. 다른 산업에서도 그렇듯 우리 농업·농촌에도 일본 용어 또는 일본식 한자어가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관공서 및 농업 현장에서 광범위하게 쓰였던 일본 농업용어가 광복된 지 75년이나 지났는데도 현재까지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충남도가 농업 속 일본 용어를 비롯해 한자·은어·속어 등 잘못된 용어 바로잡기에 나서 관심을 끈다. 충남도는 일본식 표현과 한자 농업용어 등을 순 우리말로 순화해 사용하고, 이 표현을 청년농부와 귀촌·귀농 농업인, 관련 단체, 도민 등에게 사용할 것을 권장키로 했다. 여기에 농업인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행정용어도 순 우리말로 순화해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매월 ‘이달의 순 우리말’ 농업용어를 5개씩 선정해 해당 단어들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물론 그동안 일본어를 비롯해 잘못된 농업용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13년에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도매시장 관련 개선용어 조사표를 작성해 계도에 나섰고, 농식품부와 농진청은 공동으로 2015년에 농업 현장에서 자주 쓰는 용어 가운데 109개를 골라 언어순화 캠페인을 전개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농협경제지주가 전국 농협공판장에 ‘올바른 도매시장 용어집’을 배포했고, 농진청은 올 4월 ‘개선 대상 일본어 투 식품용어 목록’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농업 현장에서의 일본어 사용은 여전하다. 적절한 대체어를 찾기 힘든데다 권장하는 우리말 농업용어가 너무나 낯설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식품부와 농진청이 전개했던 언어순화 캠페인도 일부 농업인만이 참여할 정도로 홍보와 성과가 미흡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출하자, 경매사, 중도매인, 하역노조 등 유통종사자는 물론 농업인 모두가 수십 년 동안 굳어진 관행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일부 부처와 관 주도로 75년 동안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일본어 잔재를 깨끗이 청산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제 다시 한번 시작해보자. 자발적인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더불어 그동안 무심코 써 왔던 일본 농업용어를 우리말로 바꿔 쓰는 것 자체가 진정한 극일의 길이 될 수 있어서다.

또한 이것이야 말로 그동안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켜온 농업의 가치를 더 한층 증대시키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실천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실패를 거울삼아 범 부처적 대응과 함께 특히, 농업 현장에 있는 공공기관과 농민단체, 교육기관과 가정에서 혼연일체가 되어 다시 한번 우리말 사용운동을 힘차게 전개해 나가보자. 이를 위해 연 초에 실시되는 새해 영농교육에 올바른 농업용어 교육시간을 신설해 농업인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 

일상에서 늘 접하는 언론과 방송의 역할도 중요하다. 언론과 방송에서 우리말 농업용어를 제대로 사용하고, 이를 제대로 알릴 때 농업인들의 관심도는 높아질 것이고, 성공 가능성 또한  커질 것이다. 농업인들 역시 다양한 영농 활동 속에서 우리말 농업용어 사용을 실천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농업·농촌에서 일본어 잔재를 청산해야할 주체가 바로 농업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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