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연구위원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농민수당 도입 논의가 지방 농정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고, 최근 일부 지자체가 도입 성과도 내고 있다. 이에 부응해 정의당과 민중당이 국회에서 농민수당 법제화를 추진하는 등 관련 논의가 지역에서 중앙으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농민수당의 개념을 두고 농민에 대한 기본소득인지,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직접지불의 한 형태인지 의견이 분분한 상황. 이에 따라 지자체별 정책화 과정에서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경기도가 '농민 기본소득', 전남북이 '농민 공익수당'으로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런 가운데 농민수당을 농업의 공익 기능에 대한 직접지불 형태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는 제언이 나와 주목된다. 이 전제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공익직불제와의 관계 설정 방향도 제시됐다. 4일 오내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연구위원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내원 명예연구위원은 농업소득정책 관련 연구를 해오고 있으며, 2004~2005년 쌀소득보전직불제 설계 논의에 참여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정부의 공익직불제 개편 움직임과 관련, 구체안에 대한 공개적 논의가 부족했음을 지적하고 향후 보다 폭넓은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농민수당 도입 논의 활발

농업·농촌 공익 가치 인정하라는
현장 농민의 절박한 요구 수용
농업 비중 큰 전라도서 먼저 시작

도의회 조례 통과 과정 마찰은
지역 내 논의구조 안 갖춰진 탓
신뢰 못 쌓고 조급추진 아쉬움

재정 열악한 지자체엔 시행 부담
중앙정부 재정 지원 뒷받침돼야
경영체 종사자수 감안 지급 필요



-지금 시점에서 농민수당 요구가 왜 터져 나왔고, 이를 지자체가 수용한 배경은 무엇인가.

“2017년 평균 농업소득이 1005만원이다. 한 달에 100만원도 안된다. 1995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실질소득으로 바꾸면 40% 감소한 셈이다. 농업에서 소득을 올려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또 농촌의 생활환경이 계속 나빠지면서 시군 소멸위기가 거론되고 있다. 농촌 군들은 4~5개 시군에서 국회의원 1명 뽑을 정도다. 이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그 근본에 농업·농촌의 가치를 인정하는데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인색했다는 문제제기가 있었고, 우리 농업의 가치를 인정해 달라는 농민들의 요구가 분출했다고 본다. 결국 중앙정부보다 현장 요구에 민감한 지자체가 이를 먼저 수용하게 됐고, 특히 농업의 비중이 큰 전라도 쪽에서 먼저 시행하게 된 것 같다.”

-농민수당을 농민에 대한 기본소득으로 봐야 하나. 공익형 직불의 한 형태로 봐야 하나.

“학술적으로 기본소득은 ‘무조건성’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청년이나 유아, 노인 등 특정 연령대에 대한 지급이나 미취업자에 대한 지원은 인정되지만 아직까지 어떤 특정 직업의 사람들을 상대로 한 시험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본소득은 여러 가지 시범사업을 통해 사회적 공감이 형성돼야 하고, 재원 확보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장기과제라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농민수당은 기본소득이라기보다는 직접지불로 파악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지금으로선 시장에서 평가 받지 못하는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보상을 통해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게 굉장히 시급한 과제다.”

-최근 전남북의 경우 관련 조례안 통과 과정에서 마찰을 겪기도 했다.

“지자체 내에 논의구조, 거버넌스 구조가 안 갖춰진 게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정책을 시행할 때는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양적인 문제는 논의과정에서 바꿀 수 있다. 현재 상태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게 있고, 이에 대한 공동의 인식과 합의, 타협이 필요한데, 상호 신뢰가 적다보니 지자체 장과 의회가 상당히 조급하게 끌고 간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지급 수준에 대한 인식 차가 컸다.

“우선 지급수준을 보면 연 60만원, 월 5만원도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 입장에선 적은 금액은 아니다. 앞으로 지출 구조를 좀 더 개선하고, 광역과 기초 지자체가 협조하면 어느 정도 증액은 가능하나 농민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보상으로서 의미 있는 수준이 되기는 대단히 어렵다고 본다. 때문에 의미 있는 지원이 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재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중앙정부가 지자체를 지원해서 지자체 주도로 할 것이냐, 아니면 중앙정부가 지자체의 정책을 흡수해서 중앙정부 정책으로 할 것이냐는 많은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

-지급 대상 문제도 논란이었다.

“지급 대상을 보면 과거 중앙정부 직불제는 주로 땅에 대한 직불제다. 농민 수당은 사람 단위로 지불하는 게 맞다. 등록 농업경영체를 농정의 주 대상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만, 농가 쪼개기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높다. 농업인 개인에 지급하거나 경영체 단위로 지급하더라도 농업종사자(또는 가구원) 수를 감안해 지급하는 것이 타당하다.”

-농민수당을 지역상품권으로 지급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지자체가 지출하는 세출이 지역 내의 산업과 연계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실제 지역에서 농민수당에 대한 찬성여론을 이끌어내는 데 지역상품권을 통한 지역상공업의 활성화가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다고 들었다. 상품권이 지역 내부의 순환경제구조 형성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관리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도 나오기 때문에 시군단위 발행이 적절할지, 광역단위로 할 것인지는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공익직불제 개편도 ‘속도’

농민수당과 중복 논란 피하려면
당장은 자체 논리대로 따로 가되
장기적으로 통합 추진 불가피

농민수당 연계 ‘인적 비중’ 높이고
면적 직불 단가 기울기 낮추면
실제 ‘소농 보호’ 효과 제고 가능

그동안 개편 방향·필요성만 논의
구체안 두고 공개 논의 부족 문제
향후 디테일한 부분 집중 검토를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공익직불제와 중복 논란도 나온다.

“둘 다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기초한 지원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지금은 별개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중복성 문제를 피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보면 공익적 기능을 놓고 지급방식을 조정하는 게 오히려 논리적으로 맞다고 본다. 농민 수당의 문제는 재원 부족이 가장 큰 문제고, 정부의 공익 직불제는 ‘소농 직불’을 강조하지만 여전히 경지면적에 비례한 직불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 문제다. 지금 각자도 여러 가지 기준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상태로 추진되고 있고, 지자체별로 상황도 다 다르기 때문에 당장 통합은 어렵지만, 2~3년 정도 각자 시행하고 난 후 개정안을 만들어 통합을 검토해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 통합이 가능한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달라.

“농민수당의 인적 지불이라는 측면을 충분히 감안, 정부가 추진하는 공익직불제를 인적 직불과 면적직불로 개편하는 것이다. 직불금 총액에서 인적 직불과 면적 직불의 배분 비율을 몇 대 몇으로 할 거냐만 결정하면 된다. 식량 확보 측면으로 보면 면적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생태계 보전이나 지역사회, 전통문화 유지 등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보상이 확대돼야 한다. 현재 정부안은 소농에 대해 일정액을 주고 나머지는 면적에 비례해 나가는 것으로 설계되어 있는데, 이럴 경우 1ha 부근 농민들에 대한 혜택이 가장 적다. 소농을 보호하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실은 소농 보호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인적 직불 비중을 높이고 면적 직불 단가의 기울기를 낮추면 실제 소농 보호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앞으로의 논의 과정에 대해 조언을 해주신다면.

“그동안 공익직불제 개편의 방향과 필요성에 대한 논의만 있었지, 대상농지라든가, 기준면적, 지급단가, 의무준수 문제 등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가 너무 부족했다. 큰 문제다. 디테일한 부분을 드러내놓고 얘기해야 한다. 디테일한 부분에서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거나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다만 법안이라는 게 제정됐다고 해도 항상 고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고민을 더 확장해 충분히 검토하고 논의해 나갔으면 좋겠다. 우리가 어떤 공익적 기능을 달성해야 하는지, 그걸 달성하려면 어떤 농법의 변화와 농촌 자원 관리가 필요한지, 선택형 직불과 관련한 마을단위 환경생태보전프로그램이나 이를 지원할 외부 전문인력은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 이 가운데 정부의 역할을 무엇이고, 농민의 역할을 무엇인지, 더 많은 논의들이 이어지길 바란다.”

김선아·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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