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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정 대상을 규정하는 기본 법제를 숙고해야 한다

  • 기사승인 2019.10.08 18:02
  • 신문 3144호(2019.10.11)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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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어민신문]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오래 전부터 농업인 규정 문제 논란
‘누구를 대상으로 할지’ 검토해야
‘무엇을, 어떻게’ 문제로 나갈 수 있어


정부 정책은 법령을 근거로 입안되고 실행된다. 그런데 법은 불변(不變)의 진리가 아니다. 법제(法制)도 생물체나 기계처럼 때 맞추어 끊임없이 수정하고 개선해야 한다. 농업 관련 법령도 예외가 아니다. 농업 정책의 근거로 기능하는 수십 개의 법률이 있다. 그중에서도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농지법,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등이 중요하다. 다른 관계 법률들이 바탕을 두는 ‘근거법의 근거법’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정비해야 할 대상이다.

농정 대상을 규정하는 여러 법률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동시다발로 나오고 있다. ‘하인리히의 법칙’을 연상시킨다.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H.W. Heinrich)는 산업재해 사망자 1명이 발생하기 전에, 같은 원인으로 경상자 29명,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큰 사고는 우연히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게 아니라, 그 이전에 반드시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와 전조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저런 농정 관련 법률 개정 요구들을 개별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한데 모아보면, 서로 충돌하는 논리도 있고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다. 농정의 기본 틀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경고하는 위험 징후일지도 모른다.

농업 직접지불금 부당 수령 문제와 관련해 이미 오래 전부터 ‘농업인’ 규정 문제가 제기되었다. 실제로 농사짓는 사람이 직불금을 받아야 하는데, 부재지주 혹은 사실상 은퇴한 고령 농업인이 타인에게 임대한 농지를 근거로 직불금을 수령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임대차 농지가 전체 농지의 절반을 넘는다는 추정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1949년 농지개혁법에 버금가는 급진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른 한편으로는, 헌법상 ‘경자유전의 원칙’을 포기하거나 유연하게 해석해 농지 소유권이 아니라 이용권을 기준으로 땅과 경작하는 사람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하자는 주장도 있다. 농지 임대차를 합법화하되 철저하게 관리하자는 주장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농업 직접지불금 등 보조금 지급액이 늘어날수록 지급 대상이 되는 ‘농업인은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해야 하는가’라는 물음도 첨예하게 제기될 것이다.

소유와 경작의 불일치가 ‘농업인’ 규정을 둘러싼 유일한 논란거리는 아니다. 경작 면적 1,000㎡(약 300평)로 대표되는 ‘양적 기준’도 논란거리다. 현재 300평 이상 농지에서 농사지으면 법률적으로 농업인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고, 직불금을 포함한 각종 보조금, 융자, 조세 감면 등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일단 300평만 확보해서 농업경영체를 등록하고 보자는 식의 행태가 만연한 것도 사실이다. 통계청의 조사로는 한국의 농가 수가 100만 가구쯤 되는데, 농업경영체 등록 농가 수는 165만 가구를 넘는다. 이른바 ‘경영체 쪼개기’가 흔한 관행이다. 그래서 법률적으로 농업인 자격을 인정받는 기준을 엄격하게 바꾸자는 주장이 나온다. 과연, 300평 경작 면적 기준을 1,000평쯤으로 상향한다고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될까? 다른 한편으로는, 청년의 농업 분야 진입을 촉진하는 것이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정책 과제인데 경작 면적 기준 상향은 진입장벽을 높이는 꼴이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게다가, 경지 면적이 아니라 농업 노동시간 기준(연간 90일 이상 농업 종사)으로 따지면, 상용 근로자로 일하는 외국인 농업 노동자에게도 농업인 자격을 부여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지원 정책의 실제 혜택을 단순히 농가 단위에 제공하는 게 옳으냐는 비판도 있다. 이른바 ‘농민수당’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지방자치단체가 여럿이다. 도입 논의 과정에서 농가를 기본 단위로 간주하고 수당을 지급하면, 여성농업인 등 농업에 종사하지만 수혜 대상에서 사실상 배제되는 이들이 있다는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해당 읍·면 지역에 거주하지 않으면 농민수당 지급 대상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한 지방자치단체도 있다. ‘지역’이라는 관점을 ‘농민의 정의(定義)’에 반영한 셈이다.

개별 농업인 수준이 아니라 농업 생산 및 경영 단위로서 농업법인 수준으로 논의를 가져오면, 또 다른 쟁점들이 드러난다. 농업인이 아니어도 농업회사법인에 출자할 수 있게 허용된 지 오래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정조합원은 100퍼센트 농업인으로 구성되어야 하는 영농조합법인 중에서 ‘생산하는 영농조합법인’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농산물 수집·출하하는 영농조합법인’이거나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 법인이라는 점도 문제다.

농정은 목적을 확고하게 제시하고, 대상을 잘 규정한 뒤에, 세금 등의 공적(公的) 자원을 효과적으로 분배하는 정치 과정이어야 한다. 농정 당국이 왜, 누구를 대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고민해야 한다. 앞에 늘어놓은 문제들은 ‘누구를 대상으로’와 관련된 문제로서, 농정의 기본 틀에 직결된다. 이 문제를 깊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검토해야 ‘무엇을, 어떻게’라는 문제로 나아갈 수 있다. 방치하거나 미봉할 수 없다. 알렉산더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끊었듯이 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방법도 없는 듯하다. 법학 입문서로는 가장 많이 읽혔을 어느 책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법은 끊임없는 노동이다.”(루돌프 폰 예링). 농정의 기본 틀에 관해 끊임없이 토론-노동을 수행할 공론장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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