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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농민총궐기] 빗소리 뚫은 농민의 절규…“무능한 정부 탓 농업 생매장”

  • 기사승인 2019.11.15 16:02
  • 신문 3154호(2019.11.1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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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어민신문]

▲ 13일 전국에서 상경한 한농연을 비롯한 한국농축산업연합회 회원 1만여명이 쏟아지는 가을비 속에서 정부의 WTO개도국 지위 포기 강행를 규탄하는 상징의식으로 대한민국 농업에 사망선고를하는 ‘입관화형식’을 하고 있다. 김흥진 기자

13일 ‘WTO 농업 부문 개도국 포기 규탄! 전국농민총궐기대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은 전국 곳곳에서 모인 1만여명의 농민들이 ‘WTO 개도국 지위 포기’ 선언을 강행한 정부에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는 성토장이었다. 특히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했던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배신감, 농업 현장에 자리하는 ‘농업 홀대’ 정서가 더해져 울분 가득한 목소리들이 겨울을 재촉하며 쏟아지는 빗소리를 뚫고 나왔다.


새벽부터 상경한 농민 1만여명
국회 앞에 모여 ‘정부 규탄’
WTO 개도국 지위 포기 강행
농민 의견 무시한 일방적 처사

직불제 예산 3조원으로 인상
농업예산 전체 대비 4%도 촉구 

#현장스케치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등 28개 농민단체들로 구성된 한국농축산연합회가 주최한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전국 1만여명의 농민들이 집결했다. 국회의사당역 2번 출구 옆 4차선 도로 200미터 가량이 통제됐다. 대회 시작시간인 오후 2시를 전후해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새벽부터 채비를 갖추고 상경한 농민들은 우비를 입고 자리를 지켰다. 세계무역기구(WTO) 농업분야 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한 정부를 규탄하기 위해서다. 지난달 25일 정부는 대외경제장관회의를 통해 향후 미래 협상에서 WTO 농업부문 개도국 지위를 더 이상 주장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농민들은 이번 방침이 피해 당사자인 농민 의견을 무시한 일방적인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동안 각종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국익이라는 미명 하에 농업을 희생양으로 삼아 피해가 누적돼 농업의 위기를 심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보루인 ‘개도국 지위’마저 포기함에 따라 향후 보조금 축소와 농산물 수입관세 인하가 불가피해질 것으로 우려되는 만큼 정부가 농업과 농민을 포기한 것이라며 하나같이 참담함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었다.

‘농업인의 날’(11월 11일)에 즈음한 대규모 농민 집회라는 점도 눈에 띈다. 현 정부의 농정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를 한눈에 가늠케 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집회 내내 “대책 없는 WTO 개도국 지위 포기 규탄한다”, “직불제 예산을 3조원으로 인상하라”, “국가예산 대비 농업 예산을 4%로 인상하라”, “근본적인 농산물 수매대책을 마련하라”, “문재인 정부는 각성하라”는 구호가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농정 정책에 대한 불신과 실망도 도드라지게 표출됐다. 농민들은 결의문에서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던 약속도 모래성처럼 허물어 버리는 현 정부의 농업 홀대에 더는 어떠한 기대나 신뢰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한민국 농업의 사망선고를 상징하는 차원에서 ‘입관 화형식’과 ‘WTO 농업부문 개도국 포기’라고 적힌 붉은 대형현수막을 찢는 상징의식을 펼쳤다.


#“개도국 지위 포기는 농업·농민 포기” 맹성토

“UR·FTA 때도 희생됐는데
트럼프 한 마디에 지위 포기”

“농민 표 얼마되지 않는다고
대통령, 농업 무시 정책 펴”

“농업 마지막 보루 못 지켜내
정부 특단의 조치 강력 촉구”


농민 단체 관계자들은 ‘WTO 개도국 지위 포기’ 방침에 대해 분노를 넘어 망연자실한 심정을 담아 절절한 목소리를 쏟아냈다.

반상배 한국인삼협회장은 “대한민국 정부는 WTO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농민들을 포기한 것”이라며 “농업을 챙기겠다던 대통령의 대선공약은 농민들의 표를 얻기 위한 저속하고 저급한 수단에 불과했으며, 농업을 챙기기는커녕 농민들을 벼랑 끝까지 계속 몰고 가 기어코 등을 떠밀어 버렸다”고 비난했다.

반상배 회장은 이어 “정부는 개도국 지위 포기에 이어 거대 농업국들이 즐비한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협정문이 타결됐다는 발표를 했다”면서 “이는 농업 부문 시장을 전면 개방시키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농업은 무능한 정부에 의해 강제로 생매장을 당해버린 것”이라고 성토했다.

임영호 한국농축산연합회장은 “UR(우루과이라운드), FTA 협상 때마다 농업이 희생돼 왔는데 또다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정부는 아무 대책 없이 개도국 지위를 포기했다”면서 “대통령은 농민의 표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농업을 무시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질타했다.

김홍길 축산관련단체협의회장(전국한우협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한미FTA 체결이 잘못됐다며 대통령이 되면 다시 협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재개정 시 농업 분야는 하나 얻은 것 없이 다 열었다”면서 “300만 농민들의 심정은 전혀 헤아리지 않고 있다. 오늘부터 연말 내로 이 정부를 갈아엎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문삼 한국농업인단체연합 상임대표(한국4-H본부 회장)는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면서 농업도 선진국이 된 것 마냥 호도하고 농업 분야의 피해도 없다고 하는 정부를 누가 믿을 수 있겠나”라며 “오늘을 기점으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투쟁하고 우리의 힘을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광섭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장은 “농업 예산이 국가 전체 대비 3% 비중도 되지 못하고 있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했기 때문에 정부가 그 대안이라고 말하는 공익형직불제의 예산도 더 확보해 3조~5조원이 돼야 받아들일 수 있다. 목표가격도 우리가 요구했던 24만5000원을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제열 한농연중앙연합회 수석부회장은 “우리는 지난 2003년 9월 11일 제5차 WTO 각료회의가 열리던 멕시코 칸쿤에서 ‘WTO Kills FARMERS!(WTO가 농민을 죽인다)’라고 외치며 산화하신 고 이경해 열사의 후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농업의 마지막 보루라 했던 WTO 농업 개도국 지위를 지켜내지 못했다”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농업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이전 정부보다 확연히 줄어든 반면 농산물 시장개방은 광폭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제열 수석부회장은 “급변하는 대내외 농업 환경·여건 속에서 대한민국 농업의 회생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선 특단의 조치가 반드시 필요한 만큼 문재인 정부는 근본적인 농업·농촌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 농민들이 ‘WTO 농업부문 개도국 포기’가 적힌 붉은 현수막을 찢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도 한 목소리
“반드시 철회돼야” 여야 정치권도 한 목소리

황주홍·이만희·염동열·임이자
윤소하·위성곤 의원 등 참석


정치권의 목소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야 할 것 없이 정부의 WTO 개도국 지위 포기 결정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인 황주홍 민주평화당(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 의원은 “1995년 WTO 출범 당시 우리나라는 기후환경과 농업 부문에서 개도국 지위를 허용 받았다. 당시 농가소득은 도시소득의 95%였다. 지금은 농가소득이 도시소득의 65%로, 24년 전보다 농가소득이 훨씬 줄어든 상황”이라며 “어떤 일이 있어도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다른 부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일방적으로 농업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만희 자유한국당(경북 영천·청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께서 후보자 시절 약속한 것과 달리 정책과 예산 등 모든 면에서 우리 농업은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며 “개도국 지위 포기 상황에서 관련 후속대책이 단 한 건도 제대로 제시된 것이 없다. 공익형직불제 또한 아무런 예산 지원이 되지 않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같은 당 염동열(강원 태백·횡성·영월·평창·정선) 의원과 임이자(비례) 의원도 정부의 WTO 개도국 지위 포기를 규탄하며 농업계의 요구사항이 관철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응원했다.

윤소하 정의당(비례) 의원은 “개도국 지위를 확보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다자간 협상에서 한 것인데, 트럼프 대통령 말 한 마디에 굴욕적으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개도국 지위 포기를 철회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정의당은 또한 공익형직불금 예산을 최소 3조원 이상 확보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여당에서 유일하게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농어민위원장인 위성곤(제주 서귀포시) 의원은 “한 해 동안 땀 흘려 일군 곡식을 수확한 기쁨도 잊은 채 이곳 아스팔트에서 다시 여러분들을 농사짓게 해서 죄송한 마음만 있다. 이번 정부의 결정은 매우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서 “여러분과 함께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집회에서 만난 농민들 목소리는
‘농업 홀대’ 뿌리 깊어…진정성 있는 대책 마련을

집회 참가 농민들도 촉구

▲ 대회에 참석한 농민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WTO개도국 포기 규탄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가을비가 유난히도 세차게 내렸던 이날, 3년차 초보농사꾼부터 30년을 훌쩍 넘은 베테랑 농민들의 발길이 여의도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현장 정서의 한켠에 ‘농업 홀대’라는 인식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우의를 입고 햇빛을 가리는 종이 모자를 우모삼아 ‘또다시 재현된 농업 희생’을 마주하고 있었다. 농민들 사이에선 WTO 농업분야 개도국 지위 포기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우의를 나눠주던 강원 태백의 고랭지 배추 농가 최흥식(56) 씨는 “농민들이 요구하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다. 선진국 지위를 얻고자 한다면 농업분야에서도 그에 맞는 농산물 가격 안정과 직불제 개편을 통해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면서 “재탕 농정이 아닌, 농민들과 소통을 바탕으로 진정성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한다”고 말했다.

경기 이천에서 쌀과 대파 농사를 짓는 이기국(60) 씨도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등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단적인 예로 올 배추만 놓고도 소비자들은 비싸다고 생각하지만 농가들에게 돌아가는 소득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파, 양파, 마늘 값은 반 토막이 났다”면서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아무런 대책 없이 개도국 지위 포기라는 시나리오가 실행된다면 정부, 국민, 농민 모두 악화일로의 길을 걷게 될 것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WTO 농업분야 개도국 지위 포기 방침에 따라 현장의 위기의식도 짙어진 모습이다. 경기 여주에서 올라온 지명욱(59) 씨는 “농업은 하나가 죽으면 두 개가 죽게 돼 있다. 한 작물이 경쟁력을 잃으면 다른 작목으로 변경하면서 공급량이 많아지고 결국 가격폭락으로 이어져 둘 다 망한다는 의미다”며 “더 무서운 것은 농업이 보이지 않게 조금씩 망해 가는데도 개도국 지위 포기와 관련해 정부의 홍보와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이라고 토로했다.

경북 영주에서 수도작과 축산업을 하는 3년차 청년농 최이한(30) 씨도 “비록 초보 농사꾼이지만 대부분 농촌에 있는 농민들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대책은 무엇이 필요한지 심각성을 모른 채 방치돼 있다”면서 “WTO 개도국 지위 포기에 대해서도 당장 쌀 관세인하로 직접적인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정부의 일방적인 통보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은 관련된 내용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사태의 심각성을 전했다.

한·중FTA 체결 당시 농업 분야의 대안으로 마련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의 실효성 문제와 내년 농업분야 예산 비중이 감소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국가 전체예산 대비 농업예산 비중 4% 이상 확보하라!’라는 현수막 앞에 서 있던 김희주(59) 씨는 “정부가 내놓은 대책인 농어촌상생협력기금도 공감대 없이 면피용 정책에 불과해 실효성 또한 미미하다”면서 “농업분야 예산은 내년 정부 예산의 3%도 안 된다. 적어도 농업 인구에 비례해 4~5% 정도는 돼야 한다. 경제 논리에 밀려 또 다시 농업만 희생을 강요받고 있다. 농민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농업 홀대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병규(61) 씨도 “WTO 개도국 포기가 농업 분야에서 20년, 50년 뒤에 가져올 영향은 공개하지도 않고 단순히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상생기금 1조원 조성 등 추상적인 대책으로 농민을 기만하지 말라”면서 “문재인 정권이 강조한 공정성을 농업 분야에도 적용해 달라”고 주문했다.

합동취재반=고성진·안형준·주현주·최영진 기자

 

#농민 단체 요구사항

1. 농업·농촌의 변화와 혁신을 위한 안정적인 재정지원을 약속하라
-국가 전체예산 대비 농업 예산 비중 4% 이상 확보하라
-산자부가 약속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의 정상화와 1조원 조성방안을 제시하라

2.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 실현을 위한 공익형 직불제를 전면 시행하라
-정부는 공익형 직불제 예산 3조원 이상 확보하라
-직불금 중심 농정 실현을 위한 중장기 대책을 즉각 수립하라

3.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 보장과 국내 농산물 수요 확대 방안을 마련하라
-취약계층 먹거리 기본권 보장을 위한 ‘농식품바우처사업’을 전면 도입하라
-임산부에서 청소년까지 먹거리 공공성 확보를 위한 임산부친환경꾸러미, 과일간식, 아침밥급식을 확대 시행하라
-학교급식과 공공급식의 국가책임을 강화하고, 로컬푸드 소비기반을 확대하라

4. 농민의 소득과 경영 안정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
-기초농축산물에 대한 ‘수입보장보험’을 확대 시행하라
-축종별 경영안정 장치 마련 및 기금 마련을 시행하라
-농축산물 가격불안을 해소하는 근본적인 수급안정대책을 마련하라
-기후변화에 대비 보험요율, 평가기준 등 ‘농작물재해보험’을 전면 개혁하라
-농업자금 정책금리를 인하하고, 농신보 한도를 5000만원으로 확대하라

5. 청년·후계 농업인 육성을 위한 획기적 대책을 마련하라
-체계적인 후계농 육성을 위한 법제화를 실현하라
-청년창업농 지원을 5년, 월 100만원으로 강화하고 연간 2000명을 육성하라
-한국농수산대 입학정원을 연간 1000명으로 확대하라
-농지은행 재정규모를 2배 이상 확충하고, 농지제도의 근본적 개혁안을 마련하라

6. 정부 약속 이행을 점검하고 세부 시행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범부처와 민간이 공동 참여하는 특별위원회를 즉각 구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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