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계순

[한국농어민신문]

“아들, 제대로 못 하나.”

엄마의 큰소리에 아들은 엉거주춤한 자세를 바로잡으며 김치통을 나른다. 아침 한 끼 빼고는 마주 보기 힘든 가족이지만 김장하는 이 날만큼은 남편까지 한마음으로 움직인다. 예나 지금이나 김장은 집안의 큰 행사임이 틀림없다. 고기를 좋아하는 아들은 생김치에 수육이 어떠냐는 말에 넘어갔다. 하지만 저는 스스로 돕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이유든 먹는 재미라도 있어야 휴일에 친구를 뒤로하고 집안일을 돕는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

술자리를 즐기는 남편은 아침부터 김장한다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있는 안주에 술판을 벌이고 싶은 속내를 모를리 없다. 고기에 김치 한 장 쭉 찢어 올리면 술안주에 그만이란다. 배추를 키우고 소금에 절이는 작업까지 했으니 웃으며 넘긴다.

김장하면 수육이 따라오는 것이 요즘 세태이고 나 역시 당연히 준비하지만 정작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따로 있다. 어머니가 해 주신 뜨끈한 ‘국시기’이다. 성인이 되어 독립하기 전까지 김장 날이면 늘 먹었던 음식이다. 고향인 함양은 눈이 많은 지역이다. 삼십여 년 전, 당시의 겨울은 왜 그렇게 추웠던지 바깥에 있는 것들은 꽁꽁 얼어붙고 산과 들은 눈으로 하얗게 덮여있는 날이 많았다. 특히 김장 날에는 지붕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걸려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들까지 삼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의 김장은 많기도 했다. 양이 많은 또 다른 이유는 지금처럼 하우스 채소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김치 빠진 겨울 밥상은 걸인의 찬이었다. 그래서 김장을 해 놓으면 겨울을 무난히 날 수 있었다고 한다.

김장 날 어머니는 사물을 분간할 수 없는 새벽부터 분주했다. 전날 붉은 고무통 두 개 가득히 양념해 놓고도 ‘몸빼’ 바지에 바람이 일도록 움직였다. 먼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미리 받아놓은 물을 무쇠솥에 부어 펄펄 끓였다. 그리고 밤새 얼어붙은 마당 가 지하수 펌프를 녹여 물을 올렸다. 아버지 역시 새벽부터 쇠죽솥에 소죽을 끓인 후 어머니를 도왔다. 김칫독을 묻을 어제 파다만 구덩이를 마무리했다. 장독간에 김칫독을 그대로 두면 김치가 쉬이 얼었다 녹았다 해서 무르고 맛이 떨어진다. 김치냉장고가 없던 당시는 땅에 묻는 것이 장기간의 보관법이었다.

종일을 김장에 매달렸다. 작은어머니와 이웃 아주머니 서너 분이 양념을 발라도 쉬이 끝나지 않았다. 막내 고모와 우리 형제들은 절인 배추를 나르고, 양념 바른 김치를 독까지 옮겨 어머니에게 넘겼다. 중간 중간 꾀를 피우며 삶은 고구마에 김치 조각을 얹어 입가가 벌겋도록 먹다 보면 속이 쓰렸다. 점심때가 가까워져 오면 부엌 아궁이에 불을 피우는 것은 내 몫이었다. 어머니는 솥에다 마른 멸치와 푹 익은 묵은 김치, 할머니가 다듬어 놓은 작은방에서 키운 시루의 콩나물까지 넣고, 솥 가득 물을 붓는다. 내가 좋아하는 큰방 윗목 가마니의 고구마도 껍질 채 뚝딱뚝딱 썰어 넣는다. 이렇게 한꺼번에 푹 끓여서 식은 밥을 넣고 다시 한 번 끓이면 매콤하고 들큼한 국시기가 된다. 특히 육수가 빠진 멸치도 건져내지 않고 먹는 것이 진정한 국시기의 맛이다.

입이 델 정도로 뜨끈한 국시기 한 그릇, 발과 손이 얼어붙을 듯 시려도 이 국시기 한 그릇이면 몸이 풀렸다. 마당의 김장 꾼들은 든든하게 배를 채운 후 쉴 틈도 없이 다시 배추에 속을 넣고, 우리는 잔심부름을 신나게 했으며, 그렇게 짧은 겨울 해가 떨어지면 김장독도 채워졌다.

김치 통을 정리하던 아들이 숯불을 피운단다. 수육이 다 되어가고 있지만, 불에 구운 삼겹살이 더 맛있다고 한다. 중간에 옆 마을에 사는 고모까지 힘을 보태 올겨울 김장도 끝이 보인다. 남편 친구들도 하나둘 모인다. 생굴과 구운 삼겹살, 수육까지 차리니 잔칫상이 따로 없다. 잔치 음식은 나눠 먹어야 제 맛이다. 윗집 할머니, 옆집 아주머니네, 회관에까지 나누고 나니 그제야 어깨가 뻐근하다.

요즘은 김장하는 집이 많지 않다고 한다. 사서 먹는 집도 있고 김장을 해도 소금에 절여서 깨끗이 세척한 것을 받아 양념 속을 넣기만 하는 집이 늘고 있다. 고모네도 그렇게 한다면서 내년 김장은 우리 집도 그렇게 해보라고 넌지시 권한다. 그렇게라도 집에서 하는 것이 어디냐는 것이다.

김장 문화가 지금도 바뀌고 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변할까. 편한 것만 찾고 또 그렇게 문화가 변해가는 것을 보면 김장이란 말 자체도 듣지 못하는 날이 머지않을 것 같다. 그때가 되면 지금 내가 국시기를 찾듯, 아들은 또 김장김치에 삼겹살을 그리워하게 될까.

/백계순
한국 농어촌여성문학회 편집장
수필세계등단
전국근로자문학제 수필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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