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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원일기/제2화 청출어람을 꿈꾸다–40·50세대] 격변기 마다 “변해야 산다” 과감한 시도…농업·농촌 ‘든든한 허리’

  • 기사승인 2020.04.08 13:03
  • 신문 3191호(2020.04.1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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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간 40주년 특집

[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 대를 이어 배 농사를 짓고 있는 배곤석·배연근 부자가 배꽃이 망울을 터트리려 하던 지난달 25일 배 밭에서 함께 했다. 사진처럼 농촌이라는 ‘같은 지점에서 다른 곳’을 봤던 이들 부자가 환하게 웃고 있다.

국민 절반이 농민이었던 60~70년대(1970년 전체 인구 3088만여 명 중 농민 인구 1442만여 명, 통계청). 당시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난다는 건 이전 세대처럼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60~70년대 생인 지금의 40·50세대 농민 다수는 그들 부모가 그랬듯 대를 이어 자연스레 ‘농’을 ‘업’으로 택했다. 이에 더해 40·50세대 농민은 그들이 청년이었던 90년대와 2000년대 초 IMF 사태, IT(정보통신기술) 혁명, 개방화 파고 등 사회 격변기를 넘거나 활용하며 부모 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농촌을 일군 일꾼들이다. 이들은 또 본격화되는 이농·탈농 현상에 정책 중심이 도시로 옮겨가는 속에서도 정부 관심에서 소외된 농토를 지켜낸 주역들이기도 하다. ‘부전자전’으로 시작해 ‘청출어람’을 꿈꿨던 대한민국 농업·농촌의 든든한 허리, 사오십 대 농민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시대 변곡점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던 한 49세 농업인을 통해 투영해 본다.


공주서 배농사 짓는 배연근 씨

대 이어 자연스레 농업 택했지만
부모 세대와는 다르게 농촌 일궈

1998년부터 홈페이지 만들어
당시 생산량 98% 인터넷 직거래

2000년대 후반 로컬푸드로 옮겨
수입과일 홍수 속 지역다움 승부
2010년엔 공생공소 단체 출범
로컬푸드 표준조례 제정 동참도

공주 푸드플랜 정책 수립도 노력
초등학생 두 딸 농촌서 꿈 키우길



#1막-IT를 접목하다

축구공 하나에 온 국민이 열광했던 18년 전, 한국농어민신문 신년호 ‘2002 한국농업 이렇게 가자’라는 기획기사에 전자상거래를 활용하는 서른한 살의 청년 농업인이 나온다. 충남 공주에서 3대를 이어 배 농장(배랑농원)을 운영하던 배연근 씨로, 그는 PC통신이 조금씩 보급되던 1998년부터 직거래 홈페이지를 구축, 당시 생산량의 98%를 인터넷으로 판매했다. 막 농사에 뛰어들던 그때가 대를 이어 농사를 짓는 부모 세대와는 또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지점이기도 했다.

“저는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너무 좋아 농촌을 떠나선 안 된다는 걸 자연스레 느끼게 됐던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농민을 꿈꾸며 대학도 농대를 나왔고, 공주에서 배 농사를 짓던 할아버지를 이은 아버지처럼, 아버지 뒤를 이어 배 농사를 짓기 시작했죠. 물론 거기까지가 아버지와 저의 같은 지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 이후엔 저만의 새로운 막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는 거죠.”

배 씨는 대를 이어 배 농사를 짓는다는 것을 제외하면 여러 분야에서 부친과는 다른 시도를 했다. 1998년부터 홈페이지를 만들어 전자상거래로 판로를 다졌고, 재배 방법도 아버지와 달리 선진지 견학과 교육을 통해 깨달은 해외 사례를 접목해 병충해 종합관리시스템을 만드는 등 시스템화해 나갔다.

“전자상거래를 구축하던 90년대 후반, 우리나라는 IMF로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겪었어요. 당시 제 또래들은 막 사회에 나가야 할 때였는데 취업 등 어려움이 컸었죠. 하지만 농업·농촌은 재배와 판로만 제대로 갖춰지면 IMF 시대에도 희망이 있다고 확신했어요.”

농촌에서 전자상거래를 도입한 건 당시로선 이례적인 일로, 이후 배 씨처럼 60~70년대 생 농업인들은 홈페이지, 블로그, 미니홈피 등으로 자신의 농촌 일지를 기록해갔고, 현재도 농촌 발 SNS의 중심엔 이들 세대가 있다.
 

#2막-로컬푸드에 다가가다

전자상거래 선두주자로 승승장구하던 배 씨는 2000년대 후반 판로를 ‘로컬푸드’로 옮겨갔다. 2004년 칠레와의 FTA를 필두로 농산물, 그중에서도 수입과일이 봇물 터지듯 국내 시장에 들어왔고, 이명박 정부 들어 4대강 사업으로 농지가 편입되면서 실경작자 논란도 벌어진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수입과일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좀 더 '지역다움'으로 승부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4대강 사업에 제가 실제 경작하던 농지가 들어갔는데 토지주인이 자신이 경작을 했다고 하는 거예요. 결국 농가(자신의) 목소리가 묻혔어요. 그때 소수인 농가 목소리는 곧잘 묻힌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농촌 사회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레 로컬푸드 운동도 같이 시작했고, 2008년부터 로컬푸드 캠페인을 한 뒤 2010년엔 ‘공생공소’라는 로컬푸드 단체를 출범시켰어요. 공생공소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공주에서 생산된 것을 공주에서 소비하자’는 의미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같이 살고 같이 소비하자’는 뜻도 담겼어요.”

단체명에 담긴 취지처럼 공생공소를 운영하면서 그는 자신의 농산물을 넘어 지역의 소농, 고령농의 농산물도 함께 판매했다. 소비자와의 거래는 ‘면대면’을 기본으로 했다. 농산물을 직접 소비자가 받아 보고 눈과 입으로 소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긴 것. 이후 현장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던 그는 로컬푸드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선 로컬푸드를 제도화, 시스템화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판단, 전문가들과 함께 로컬푸드 표준조례안을 만드는 데 동참했다. 현 농특위원장인 박진도 위원장과 로컬푸드 전문가인 윤병선 건국대 교수도 당시 같이 활동하며 알게 된 사이다.


#3막-지방 농정에 참여하다

로컬푸드에 관심을 가지면서 한계도 동시에 느꼈다고 배 씨는 말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농산물 유통 정책의 주요 사업에 ‘직거래’가 들어갔고, 이후 정부와 지자체에선 앞다퉈 로컬푸드 매장을 늘리는 데에만 집중한 것. 이것이 그에겐 한계로 느껴지기도 했다.

“2010년대 들어 로컬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았지만, 정부와 지자체에선 숫자 늘리기에만 급급한 모습도 보였어요. 특히 로컬푸드의 진정한 의미는 배제한 채 관성에 젖은 지방정부 모습을 보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지역농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지역농정에 직접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농정의 주요 정책이 푸드플랜이 되면서 지역으로부터의 푸드플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현 공주시장이 후보 시절 농업 특별보좌관 간사 역할을 하면서 공주 농업 정책에 푸드플랜이 주요 정책 꼭지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활동의 연장선으로 그는 또 하나의 역할에 도전하고 있다. 공주시 향후 먹거리정책의 핵심 역할을 수행할 공주시먹거리사업단이 조만간 구성, 운영될 예정이다. 배 씨는 이 먹거리사업단의 성공이 ‘민과 관의 소통과 협의’라고 보고 그 일에 매진할 계획이다.

“지역 먹거리 전략은 관의 힘으로만, 그렇다고 민의 관심으로만은 절대 될 수 없다고 봐요. 민과 관이 서로 소통하고 협의해 나가야 가능한 일이지요. 그 가교 역할을 하는 데 미력하나마 매진할 생각입니다.”


#4막-바람이 있다면

배 씨는 그 자신의 꿈도 있지만, 또 다른 꿈도 간직하고 있다. 초등학생인 두 딸이 농촌에서 꿈을 키우길 바라는 마음이 무엇보다 크다.

“강요할 순 없지만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도 농촌에서 그들의 삶을 영위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물론 제 뒤를 이어 농민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죠. 다만 그러기 위해선 갖춰져야 할 것도 많다고 생각해요.”

이 말과 함께 그는 어렸을 때 한 경험을 꺼내며 이를 현재와 빗대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요. 당시 장래희망 란에 ‘농부’라고 썼다가 선생님께 종아리를 맞았어요. 꿈이 그게 뭐냐고 하면서… 지금은 달라졌을까요. 물론 그때보다 많은 것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마을 곳곳 플래카드엔 누구네 집 아들 검사 임용, 누구네 집 딸 행정고시 합격만 붙어 있어요. '우리 아들, 딸 농민 됐어요', 그날이 오길 바라고 반드시 와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아이들의 꿈과 제 꿈이 하나의 꿈이 돼 있겠죠.”


#배연근 씨에게 묻다

-당신처럼 요즘 젊은이들이 농촌에 머무르려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뭔가. 공무원이다. 왜 그런가. 안정적이면서도 길게 간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사실 길게 가는 건 농촌만 한 게 없다. 그렇다면 안정적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보장제도가 확실히 구축돼야 한다. 그래도 부모 세대를 이어 농사를 짓는 이가 대부분이었던 우리와 달리 청년들은 새로 농촌에 진입해야 한다. 출발선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출발선을 같게 만들어주는 다양한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예를 들어 이들이 재배한 농산물을 학교급식이나 공공 급식에 우선 배정해주는 것도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청년 창업농 정책은 임시 미봉책이 될 순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순 없다.”
 
-배 농가다, 수입 개방에 더 민감했을 텐데.
“FTA로 수입 포도가 무지막지하게 들어왔다. 겨울에 특히 많이 들어와 포도 이외 배, 사과, 귤, 딸기 등 국내 주요 과일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이후 수입 품목도 많이 늘어났다. 시장이 줄어드니 가격은 내려가고 과일 농사는 후퇴해갔다. 농민, 농업 망하면 우리 식량 주권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들이 떠나지 않게 수입 개방으로 혜택을 입은 이들이 지원을 해줘야 한다. 특히 고향세도 긍정적으로 고려해봐야 한다.”
 
-농촌 IT 선두주자였다. 요즘 스마트 농업이나 SNS 농업에 대한 생각은.
“SNS 등 스마트를 어르신들은 할 수 없다. 그런데 농촌엔 어르신들이 다수다. 그럼 스마트 농업을 어르신들에게, 즉 농민 다수에게 어떻게 혜택이 가게 할까. 이는 처음 말한 젊은이들을 활용할 수 있다. 젊은이들에게 스마트농업을 장려하면서 이에 대한 혜택이 어르신들에게까지 미칠 수 있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협동농장을 구축하는 거다. 아무리 스마트하다고 해도 손길과 경험이 미쳐야 하는 부분이 농사를 지으면서 분명히  있다. 그 역할을 어르신들이 해주면 된다. 그럼 어르신들의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인 판로 걱정, 청년들의 가장 큰 우려인 경험 부족이 모두 해결될 수 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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