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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원일기/제1화 그들이 농업 역사다-60·70세대] 농산물 시장개방·가격 파동 꿋꿋이 견뎌낸 현대 농업사 ‘주인공’

  • 기사승인 2020.04.08 13:01
  • 신문 3191호(2020.04.1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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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간 40주년 특집

[한국농어민신문 이병성 기자]

그들의 농업 일생은 고난과 역경의 반복이었다. 내 자신을 우선하기보다 ‘농업과 농민을 위해’걸어온 인생이었다. 일제 강점기, 6.25 전쟁과 전후 혼란기에 태어나 2020년을 맞이한 60~70대 농민들의 얘기다. 그들은 배고픔과 가난으로 유년시설을 보내야 했고, 70년대 이후 고도 성장기에는 농산물 생산 증대를 위해 노력하며 풍요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면서도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 1993년 UR 협상 타결로 농산물 시장개방이 본격화됐고, 이어 2004년 한·칠레를 시작으로 FTA가 확대되며 농산물 수입개방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됐기 때문이다. 반도체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 마늘이 희생됐고, 자동차 때문에 과일과 쇠고기 등 거의 모든 농산물시장을 내준 것이다. 수많은 애환을 겪어야 했던 60~70대 농업인들은 현대사 농업역사의 주인공이다.


평택 고덕면 염광식 씨

중동 뙤약볕 속 번 돈 모아
젖소 4마리로 낙농 시작

농권운동 펼치며 농사도 열심
한농연평택시 회장 등 역임
농민 현실 알리기 목소리 높여

젖소 100두·벼농사 1ha로 키워
목장은 10년 전 개발로 수용
일 줄었지만 열정은 그대로
최근 고령농 로컬푸드 매장 구상



#농업은 숙명이었다

▲ 염광식 전 한농연 평택시연합회장은 농산물 개방 파고에도 현장에서 농업을 지켜왔다. 앞으로 후배농업인 양성과 고령농업인을 도와 로컬푸드를 해 보겠다고 했다.

경기도 평택 고덕면 염광식 씨는 1957년생으로 올해 64세다. 고령화된 농촌에서 60대에 대해  아직은 청년이라고 말하지만, 한국농업의 굴곡을 모두 겪어온 세대이기도 하다. 그는 이승만정권에 출생해,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박근혜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1950년대 이후 현대사를 모두 관통했다.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병역을 마쳤고, 농사지을 땅을 마련하기 위해 3년 6개월 동안 중동 근로자로 나갔지요.”

이렇게 염광식 씨의 농업인생이 시작됐다. 중동의 모래바람과 뙤약볕 속에서 번 돈을 모아 고향인 평택 고덕에서 젖소를 구입해 낙농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낙농업을 결심했기에 젖소를 키웠던 매형을 도우며 사양기술을 먼저 배웠다. 그 덕분에 농어민후계자(농업경영인)로 선정됐다.

“중동에 나가 일하며 돈을 모았고 귀국해서 젖소 임신우 4마리를 구입해 낙농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1마리가 300만원을 호가 했으니 인생을 건 투자였던 겁니다. 그것이 80년대 초반이었으니 거의 40여년 전 일이네요.”

중동에서 열심히 일하며 큰돈을 모았기에 농업이 아닌 다른 사업에 관심을 가질 만 했지만, 그가 선택한 길은 자신의 고향에서 농사짓는 것이었다. 중동에서 동고동락하며 친해진 동료는 현재 그의 손위 처남으로 친인척이 된지 오래다. 동료의 여동생이 바로 그의 배우자로 둘도 없는 동반자가 된 것이다. 이렇게 염광식 씨는 숙명처럼 농업이라는 길에 접어든 것이다.
 

#농사와 농권운동을 병행하다

“농민들은 정치적 힘을 더욱 키워야 합니다.”
염광식 씨가 이렇게 강조한다. 낙농업을 시작하며 평택시 고덕면의 농어민후계자(농업경영인) 총무를 맡은 그는 한농연 평택시연합회장, 한농연 경기도연합회 감사 등으로 활동하며 농권운동을 적극 펼쳤다. UR협상 타결과 이후 FTA로 이어지며 농산물 시장개방이 가속됐고, 당시 경쟁력 없던 농민들은 뭉칠 수밖에 없었다. 농민이 처한 현실을 한 목소리로 높이며 정부와 정치권에서 희생양이 된 농업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한국농어민신문을 창간하게 된 것도 농업에 대한 현실과 여론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시장개방의 피해가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전가됐고, 농산물 가격 파동도 심각했습니다. 빚 때문에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농민들도 속출했고요. 이러한 문제로 농업경영인 회원들과 함께 농해수위 소속 국회의원 지역구 사무실까지 찾아다니며 농업대책을 요구했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한국농어민신문을 창간한 것도 농업의 현실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것이었고, 농업농촌 대책 수립에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밤낮 없었던 지난날 후회는 없다

농권운동을 펼치면서 농사일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젖소 4마리로 시작해 착유우 40두를 포함해 사육 규모 100두로 경영이 늘었고, 논농사도 1ha를 지었다. 아들 둘도 대학까지 잘 교육시켰다. 한농연 회원과 임원을 맡아 바쁜 일정을 쪼개가며 자신의 농업기술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농민단체로 활동하며 농권운동을 하다보면 아무래도 외부활동이 계속 이어지죠. 낮에는 주로 밖에 나가 있고 새벽과 밤에 농사일을 해야 했습니다. 사실 나 때문에 많은 집안일과 농사일을 떠맡아야 했던 아내에게 지금도 매우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네요.”

이어 “24시간 밤낮없이 열정을 갖고 일했던 것 같습니다. 몸이 지치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많은 후회하고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후배 농업인 양성을 위해 건립한 평택시농업인회관을 매우 뜻깊게 생각하고 있다. “시의 지원을 받아 농업인회관을 새로 이전 건립했는데,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우리 모두 후계 농업인력 양성하자고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후배 농업인 양성을 위한 교육시설에 초점을 맞췄고 사업수익을 영농기술 교육에 사용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농축협을 농민 조합원 손으로 개혁하자는 의지가 더해져 실제 조합장 3명을 배출해 냈고 농업경영인 회원이 시의회에도 진출했다.

그는 농업의 ‘양극화’  문제를 지적하며, 직불제가 앞으로 농업을 지속하는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

“과거 농업정책을 농민 입장에서 평가해 보면 ‘양극화’가 먼저 떠오릅니다. 보조와 융자지원이 소위말해 있는 사람에 집중됐고, 정부가 농업에 기업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동안 영세하고 규모가 작은 농민에 대한 정책적 안배가 매우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농지와 시설 등 이미 많은 자본이 구축된 곳에 더 많은 지원과 혜택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측면에서 현장의 농민 요구로 도입된 직불제가 농업과 농민에게 큰 힘이라는 것이다.


#지역농업 현장에 서 있다

농업과 농촌, 농민을 위해 앞장섰던 그에게 뜻하지 않은 변화도 닥쳤다. 젖소를 키우던 목장이 개발로 인해 수용당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일로, 현재 논 1ha에 쌀농사를 짓고 있다. 평택이 도시로 확대되면서 대토를 구할 수 없었다.

“농기계로 벼농사만 1ha 짓다보니 시간적 여유가 생겼습니다. 최근 로컬푸드가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소규모로 농사를 짓는 고령 농업인의 참여는 제한적입니다. 평택 소풍공원과 연계해 고령 농업인과 함께할 수 있는 로컬푸드 매장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예전보다 농사 규모가 줄고 대외 활동도 뜸해졌지만 농업에 대한 열정을 접은 것은 아니다. 도농이 함께하는 평택의 특성에 맞춰 소박한 규모지만 고령농업인과 인근 도시 소비자를 위한 로컬푸드를 계획하고 있다. 지금 그는 한발 뒤로 물러서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농업인회관을 향해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했다.


“후계농 육성·농기계 부담 절감 병행돼야”
#염광식 씨에게 묻는다

▲ 논농사를 짓고 있는 염광식 전 회장이 영농철을 앞두고 논을 살펴보고 있다.

-농업·농촌 인력과 고령화 해결책 있을까요.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등 농기계를 구비하려면 수억 원의 돈이 필요합니다. 농산물 판매로 농기계 할부금을 갚는다는 게 매우 어렵습니다. 농업에 들어오오는데 있어 큰 문턱이라는 얘기입니다. 후계농 육성과 농기계 부담을 줄이는 대책이 병행돼야 할 것입니다.”

-농산물 시장개방 확대 어떤가요.
“공산품 수출로 돈을 벌었으면 피해를 당한 농업에 투자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 아닌가요. 매번 우리는 몸으로 부딪치며 농업 육성을 촉구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가 앞장서 농산물시장을 개방했고 소농들은 더욱 어려워진 원인이 된 거죠.”

-많은 농촌마을이 소멸 위기에 놓였다고 합니다.
“농업에 투자해야 사람이 들어오고 농촌이 발전하겠지요. 그런데 지역과 농촌 소멸을 우려한다고 하면서도 농업관련 예산 비중은 계속 낮아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미래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면 정책 대안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스마트팜 등 첨단농업을 어떻게 보시나요.
“건강하게 키운 농산물, 땅심으로 재배한 농산물을 잊어선 안 됩니다. 소비자 눈과 입맛은 매우 민감합니다. 농업이 미래산업으로 성장하려면 첨단기술을 적극 수용해야 하지만 농산물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곤란하죠.”

-후배 농업인들에게 당부 말씀 부탁합니다.
“농민들도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치에 영향을 높여야 합니다. 아스팔트농사 짓느냐고 하지만 농민들의 정치력이 높아야 정부와 국회 그리고 국민들이 관심을 갖게 됩니다.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병성 기자 leebs@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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