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농업인안전보험 가입기간 내
경운기 전복사고 발생 불구
보험기간 만료 후 사망 이유로
유족급여금 등 지급 거절


농업인안전보험에 가입한 농민이 보험기간 중 경운기 전복사고를 당해 40일 만에 사망했음에도 불구, NH농협생명이 사망일자가 보험기간 만료 이후라는 이유로 유족급여금과 장례비 등 1억30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 유족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경북 봉화군의 변 모(71) 씨는 지난해 3월 25일 자신의 경운기를 운전해 밭으로 이동하던 중 과수원 옆 이면도로에서 전복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변 씨는 다발성 외상, 신부전 등의 상해를 입고 안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증세가 악화돼 40일 만인 5월 4일 결국 사망했다.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주치의는 사망 원인을 ‘외인사’로 확인했다.

사고 당시 변 씨가 ‘농업인NH안전보험’(산재2형, 부부)에 가입돼 있었고, 보험기간 중 발생한 경운기 전복사고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사실에는 다툼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사망일자(5월 4일)가 보험기간(2018.4.11.~2019.4.11.) 만료일인 4월 12일 이후라는 이유로 NH생명보험이 유족급여금과 장례비 등의 지급을 거절하고 있는 것. 

NH농협생명은 당사 보험약관 제9조 보험금의 지급사유에 ‘보험기간 중 농업작업안전재해 또는 농업작업안전질병으로 사망한 경우’로 규정돼 있어, 보험기간 중에 ‘사망’까지 해야 보험금 지급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약관의 문구는 ‘보험기간 중 (발생한) 재해나 질병’으로도 충분히 해석이 가능하며, 이처럼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않거나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경우에는 계약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는 해당 보험약관 제41조 ‘약관의 해석’에도 명시돼 있다. 특히 가입자 모집을 위해 농식품부와 NH생명보험이 공동 제작한 보험안내자료에는  약관의 내용과 달리 ‘보험기간 중’이라는 문구 자체가 빠져 있어 효력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농업인안전보험은 1년 단위로 재가입을 해야 하는 상품으로, 농업인이 보험기간 중 위중한 사고를 당할 경우 재가입을 거절하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사망보험금 지급 회피가 가능한 상황이다. 실제 변 씨의 아내 김 모 씨는 보험만기 전 우편으로 재가입 안내장이 발송돼 지역농협을 직접 방문, 재가입을 하고자 했으나 남편의 경우 병원 입원 상태를 이유로 재가입을 거절당했다.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 전문위원인 박기억 변호사는 “대부분의 후유장애나 사망은 사고 즉시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즉사의 경우도 있지만, 경과 규정 없이 원인과 결과가 동시에 발생해야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은 결국 후유장애보험금이나 사망보험금은 거의 인정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라며 이같은 약관 해석은 옳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박 변호사는 이어 “전반적인 보험사건 해석 논리와 보험의 취지에 비춰보면 재해사고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보통 다른 민간보험의 경우 사고시로부터 2년 정도 내에 사망하게 되면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 사건의 경우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번 사건을 의뢰 받은 박창준 손해사정사는 “사고 당일 바로 중환자실로 입원, 보험기간 중에도 생사의 고비가 몇 차례 있었기 때문에 피보험자의 사망은 예견돼 있었다”면서 “부상이나 질병이 발생해 장해 또는 사망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경과할 수밖에 없으므로, 보험기간 중 재해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사망이 발생했다면 그에 해당하는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NH농협생명 횡포
9년 꼬박 가입했는데 사고 나니 재가입 ‘거절’ 

대법원 유사사건 판례에도
“보험기간 중 발생 사고로 인해 
사망·후유장애시 지급 마땅”

농식품부, 금감원 판단 근거로
약관상 어쩔 수 없다는 입장
‘사망보험금 연장 특약’ 방침만 


농업인안전보험은 1996년 ‘농작업상해공제’로 시작해 2012년부터 보험으로 변경·운영되고 있으며, 2016년 제정·시행된 ‘농어업인안전보험법’에 근거한 정책보험이다. 

농식품부가 사업주관기관으로, 동법 시행규칙 제3조 제3항에 따라 보험종목의 구체적인 지급기준 및 지급방법 등에 관한 사항은 농식품부의 승인을 받도록 되어 있다. 사업관리기관은 농업정책보험금융원, 사업시행기관은 NH농협생명이다.

만 15세부터 최대 87세(일부 상품만 84세) 농업인이면 가입이 가능하며, 연 보험료는 상품 유형별로 9만8600원에서 최대 19만4900원이다. 전국 농·축협 방문 가입 시 정부에서 보험료의 50%(영세농업인은 70% 지원)를, 각 지자체와 농축협에서도 보험료를 지원해 실제 농업인 부담률은 20% 전후다.

◆농업분야 재해율, 전체 산재율의 1.5~2배=문재인 정부는 대선공약에서 ‘농민이 안심하고 농사짓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농업재해보험 지원 강화 및 농어업 산재보험 시행을 약속한 바 있다. 농촌인구 고령화와 농기계 이용 확대에 따라 농업분야 노동재해 발생위험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농업분야 재해율은 전체 산업재해율에 비해 약 1.5~2배 높으며, 일반 제조업 재해율에 비해서도 높다. 특히 농작업 안전관리가 열악한 소규모 자영농업인을 포함할 경우 재해율은 더 높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농식품부와 NH농협생명은 2018년 보장범위를 산재보험 수준으로 강화한 산재형 보험상품(산재1형·2형)을 새롭게 출시, 보상범위를 크게 확대했다. 이에 따라 2019년 현재 보험 가입 농업인은 84만5000명으로 늘었다. 가입률은 63.8%.

산재형 보험상품(산재1형·2형)은 유족급여가 1억2000만원, 장례비 1000만원, 간병급여 3000만~5000만원, 휴업급여 4만~6만원/1일, 상해·질병치료비(실손의료비) 최대 5000만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 경운기 전복사고로 사망한 변 모씨도 부인과 함께 산재형 보험상품에 가입, 예정대로라면 유족급여금과 장례비 등 1억30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 받아야 했다.

◆9년간 꼬박 가입해왔는데 사고나니 재가입 거절=박창준 손해사정사는 “피보험자의 경우 농업인안전보험이 출시된 해부터 해마다 재가입, 9년간 보험 가입을 이어왔는데 보험기간이 끝날 때쯤 사고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사이 재가입이 거절된 케이스”라면서 “다른 지역의 경우 농협 조합원이면 자동 갱신되는 경우도 많은데, 본인들이 솔직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다보니 오히려 재가입이 더 안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중간에 생사의 고비가 여러 번 있었지만 유족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명치료를 부탁, 끝까지 살려보려고 하다가 보험기간이 지났다”면서 안타까워했다.

그는 대법원 판례(2008다42683, 2013다43956)나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사례(제2018-6호),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사례(2018. 5. 1년 만기 단체자전거공제) 등을 예로 들며 “보험기간 중 발생한 사고로 인해 사망이나 후유장해가 발생했다면 보험금이 지급돼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농식품부는 미온적 대응=그러나 사업주관기관인 농식품부는 이같은 문제점은 인정하면서도,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례를 근거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지난 1월 농업재해보험심의회를 개최하고 ‘사망보험금 연장특약’을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보험기간 내 발생한 사고로 사망한 경우 보험 종료 후 30일까지는 유족급여를 지급하겠다는 것. 

재해보험과 임채홍 사무관은 “지난해 민원을 통해 이 사건을 처음 접하고 금감원 쪽에 확인한 결과, 보험기간 안에 사망도 해야 보험금을 지급하는 게 맞다는 답변을 받았다”면서 “유족이 분쟁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일단 9월부터 보험기간 종료시점에서 30일 이내 사망시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약관을 개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NH농협생명 정책보험팀 관계자는 “농업인안전보험의 약관은 금융감독원의 생명보험 표준약관을 기준으로 마련됐고 표준약관에서 사망보험금은 보험기간 중에 사망해야 지급하는 것으로 명시돼 있다”며 “다른 보험사들의 생명보험 약관도 동일하다”고 밝혔다.

김선아·이병성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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