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농업과 농촌의 시간 흐름은 도시와 차이가 난다. 품목별로 작기가 다르거니와 영농 기간을 중심으로 계절 흐름에 맞춰진다. 본격적인 영농철이 다가오면 활기를 띠고, 수확을 하고 수확 후 정리를 한다. 영농준비 기간은 땅이 쉴 수 있는 시간이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0년 농촌 인구가 1000만명이던 그때는 익숙했지만, 지금은 낯설다.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농업·농촌은 어느덧 익숙하지 않은 시간과 공간이 돼 버렸다.

몇 개월 전, 농업 관련 국책연구기관의 한 50대 연구자가 이런 얘기를 했다. “지금 시점에 농촌이 어떻게 지내고 있고, 그곳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을 정도로 농촌이 멀어졌다”고. 그는 “농촌형 교통모델을 얘기하면서도 농촌 오지마을에 택시가 들어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택시를 타기 위해서는 하루에 오전과 오후 각 2대씩 마을에 도착하는 버스를 타고 인근 읍면까지 나와야만 비로소 택시를 구경할 수 있다는 농촌 마을의 여건을 전혀 모르고 있는 이들이 많다”고 씁쓸해 했다. 교통 인프라의 발달로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이고 있지만, 도시와 농촌의 거리는 갈수록 더 멀어지고 있다. 일기예보를 보고 ‘벼가 쓰러졌는지’, ‘수확철을 앞둔 감이나 배는 괜찮은지’ 걱정하는 ‘시골집’ 안부전화도 생소한 풍경이 되고 있다.

이런 얘기를 꺼낸 이유는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지난 20대 국회 4년간 우리 농정의 시간도 농민들이 보기에는 상당한 거리감을 곱씹을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농정의 틀을 바꾸겠다’고 한 문재인 정부의 ‘농정개혁’이 농업계의 화두였지만, 개혁 논의에 몰두했던 시간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2018년 3월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신정훈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이 지방출마를 위해 사퇴한 이후 빚어진 농정 컨트롤타워의 공백은 3~5개월가량 계속됐다. 문재인 정부의 농정공약 1호인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는 국회의 법안 처리가 늦어져 2019년 4월 25일에야 공식 출범했다. 국회 상황도 마찬가지다. 2018년 12월 정기국회가 끝나고 2019년 6월 상반기가 끝나도록 국회에서 처리한 농업 관련 법안은, 해양수산 분야 일부 법안과 국정감사 보고서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0’건이다. 당시 시급한 사안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5년마다 국회를 거쳐 정하는 쌀 목표가격 결정은 차일피일 지연돼 변동직불금은 얼마를 지급할지조차 알 수 없었고, 공익직불제의 도입을 공식화한 정부는 장기간 국회 파행에 ‘뒷짐’만 지고 있었다. 일부 농민단체들과 ‘비공식적 만남’에 바빴을 뿐 공식적인 여론 수렴 과정은 없었다. 이러다보니 공익직불제의 단가, 기준, 내용 등은 공론화될 수가 없었다.

이제와 돌아보면, 충분히 잘 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있었지만 허비한 시간도 많았다. 여러 이유로 국회와 정부가 실기해버린 시간의 틈 사이사이에 농민들은 농산물 가격 폭락 대책을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에 몇 차례 모였고, 농촌 산지에선 과잉 농산물을 폐기하는 일들이 여전히 벌어졌다.

21대 국회 시작을 두고 ‘기대반 우려반’이다. 농업·농촌·농민의 먹고 사는 문제마저 도시에서 결정하게 된 이런 상황에서 적어도 농업·농촌의 시간이 도시와 달리 흘러간다는 점을 21대 국회가 유념했으면 한다. 농정개혁을 위한 골든타임도 저물고 있다.

고성진 기자 농업부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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