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진 중앙대 교수

가축 품종개량·사료 수입선 다변화
새로운 축산업 비즈니스 모델 필요
역으로 세계화에 나서는 것은 어떨까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코로나19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이번 사태 이후 국제사회의 질서가 재편되고 탈세계화와 탈분업화가 가속화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에 국제 무역 의존도가 높은 국내 축산물 시장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한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축산업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도입한 외래 품종을 미국 등에서 수입한 주요 원료사료를 이용해서 사육하는 형태다. 뿐만 아니라 삼겹살 한 품목의 수입량이 다른 돼지고기 전체 수입량의 2배가 넘을 정도로 삼겹살 편중 현상이 가장 심한 소비국이기도 하다. 일련의 사태로 국제 무역 시스템이 붕괴돼 삼겹살과 곡류의 수입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 국내 축산업과 고기 시장은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작년 여름 일본의 반도체 소재 무역 보복을 경험하면서 산업의 국제 분업화가 얼마나 큰 무기가 될 수 있는지 경험했고,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자급자족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것을 절감하게 됐다.

현재 서구 유럽은 중국과 베트남 같은 저개발 국가에 공장을 두고 3차 산업과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하는 형태의 분업화를 선호해왔다. 덕분에 오염 배출 시설이나 혐오시설을 배제하고 관광이나 금융업 등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각국이 국경을 차단하자 마스크 한 장 구하지 못하는 촌극이 벌어지는 것을 목도했다. 다행히 한국은 수차례 위기를 경험하면서 질병에 대한 준비를 비교적 잘 해왔고, 자동차, 철강, 조선, 전자 등 중·경공업부터 농업과 가내 수공업까지 1~4차 산업 전 분야를 국내에 두루 보유하고 있어서 공급 부족의 파장이 상대적으로 낮았다고 판단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내 축산업이 나아가야할 방향 또한 분명해 보인다. 첫 번째로 국내 환경에 적합한 경제동물의 품종 개발과 보존에 더 투자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원료사료의 자급률을 높이고, 수입선의 다변화를 더욱 확대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삼겹살 의존도를 낮춰야 할 것이다. 네 번째로 축산업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개발이 필요하다. 필자가 언급한 방향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꾸준히 지적된 내용이다.

다만, 일본이 무역 보복을 하고서야 소재, 부품 및 장비의 국산화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인 것과 같이 위기가 왔을 때 과감하게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코로나19 사태가 우리뿐만 아니라 글로벌 축산환경 변화에도 주요한 모멘텀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일련의 사태를 통해 우리와 산업적으로 가까웠던 중국, 일본 또는 베트남 등이 우리와 위기를 함께할 동반자가 아닐 수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고 본다. 최근 나온 각종 보고서를 보면 필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탈세계화, 탈중국화, 지역화, 탈분업화 또는 자국 우선주의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각국은 그동안 넓게 열었던 문을 걸어 잠그고,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각자도생의 방식을 모색할 것이 분명하다. 필자가 봤을 때 가축의 품종개량은 현재 진행형이고, 사료의 자급률을 높이고 수입선 다변화를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다. 다만,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 놓였고, 새로운 축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적극 실천해야 할 무대가 열린 상황일 뿐이다.

해외 품종시장 및 농장 개척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모두가 탈세계화를 외칠 때 우리는 더욱 문을 열고 역으로 세계화에 더욱 나서는 것이 어떨까도 생각해본다. 자국의 산업 경쟁력을 약화 시키고 세계화를 외친다면 이번 사태와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취약한 부분이 들어나게 될 것이다. 축산업의 세계화가 역으로 우리 축산 시장을 공격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고 본다. 또한 축산업의 세계화는 이익과 위험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산업의 세계화는 고용창출, 소득증대, 비용감축, 선택가능한 축산물의 증가 등 여러 가지 이익이 발생함과 동시에 국내 고기시장 안정화를 위한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다. 물론 정부와 관계 기관에서 금융지원 및 각종 법률적인 안전장치 마련이 선행돼야 함은 당연하다. 사실 해외 시장 개척은 결코 노다지가 아님을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다. 상대국과의 정치적인 부담이 따르고, 지정학적인 불안요소가 크기 때문에 한 때 일었던 붐이 시들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농림축산식품부 차원의 뚝심 있고 일관된 정책이 요구된다. 이번 위기가 축산업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적극 실천할 기회가 아닌가 생각한다. 재난 지원금이 풀리자 고기값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아무리 어려워도 고기 시장은 죽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원래 답을 몰라서 해결 못하는 일은 사실 별로 없다. 실천의 문제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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