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농어민신문]

경제 충격 때마다 호출되는 농촌
도시보다 공공 일자리 규모 커
사회적 협동조합 결성 등 지원
사업 위탁 방식의 정책 구상할 때

예상이 빗나가길 간절히 바라지만, 재난은 지나간 게 아닐지도 모른다. 멈춰 선 세계 경제가 언제쯤 회복될 것인지, 혹은 회복되기나 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혼란스럽다. 코로나19 사태로 초래될 경제적 파급효과를 분석하는 데 참고할 만한 전례가 없다는 사실, 그 자체가 전례 없는 위기의 징후일지도 모른다. 지레 겁을 먹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한국은 1990년대 종반 국난이라고 했던 해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를 경험한 바 있다. IMF 구제금융 사태 때에 직장을 잃고, 가정경제가 파탄나고, 자녀를 고향집에 맡기는 통에 시골 마을마다 조손가정이 생겨나고, 생활고 비관 자살 기사가 신문에 연일 오르내리는 등 수많은 곡절을 가슴 시리게 지켜봐야 했다. 그때의 경험이 트라우마가 된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테다. 그런데 요즘 들어 애써 잊은 상처를 후벼 파는 느낌으로 두려움이 밀려든다.

이미 수많은 자영업자, 일용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등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런데 무직의 행렬은 계속 길어진다. IMF 사태 때 고용 충격이 본격화하기 직전인 1997년 12월 취업자 수는 2122만 명이었는데, 1998년 2월에는 2030만 명으로 두 달 새 92만 명 감소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고용 위기 첫 두 달 사이 취업자 수는 102만 명 감소했다. IMF 사태 때보다 더 큰 폭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4월 조사에서 일자리가 없어 ‘그냥 쉬었다’는 사람이 약 237만 명이었다.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였다. 그런데 이건 시작일 뿐이라는 경고등이 여기저기서 켜진다. 미국의 4월 실업률이 1933년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소식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중요한 무역 상대인 중국, 일본, 유럽국가들의 경제 전망도 암울하다. 필경, 무역의존도가 높은 이 나라의 중소기업, 대기업, 금융기관 등에게도 고강도의 압박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까놓고 말하자면, 기업 줄도산 사태에 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거듭 말하지만, 그런 상황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악의 실업대란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급작스러운 경제 충격이 오면, 일자리를 잃거나 잃을 위기에 빠진 도시민의 생활 및 고용 안전망으로서 ‘농촌’이 호출되곤 했다.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 위기 때도 귀농·귀촌 인구가 급증했다. 이번에도 한국 경제의 난경을 우회하는 한 방편으로 농촌이 호출되고, 시골로 가는 도시민이 급증할 것인가? 예상하기 어렵다. 농촌이나 도시나 그 형편이 과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 때에는 고용보험 제도를 도입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여서 가입자 수가 적었다. 일자리를 잃으면 당장 생계가 막막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직장을 잃은 40대나 50대 도시민 가운데 상당수가 농촌 출신이었다. 고향에는 부모님들이 농사지으며 살고 계셨다. 불문곡직, 고향으로 돌아가면 밥을 굶거나 길거리에 나앉을 일은 없었다. 물론, 지금은 사정이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직장인 대부분이 농촌 출신이 아니어서, 시골에 머물 거처나 농토를 마련하는 데서부터 막힌다. 그럼에도, 농촌은 그 품을 열어 피난처가 되어줄 수 있다. 직장을 잃는 인구가 도시에서 마련할 수 있는 공공 일자리 규모보다 많다면,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지혜롭게 농촌에서 대비한다면 말이다.

꼭 필요한 일인데도, 공공재정 투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 제쳐둔 ‘일거리’가 차고 넘치는 곳이 농촌이다. 방대한 면적의 산림은 엄청난 양의 ‘숲가꾸기’ 일손을 기다린다. 수천수만 킬로미터의 하천, 지류, 관개배수로, 도랑 등이 농촌 곳곳에 혈관처럼 퍼져있지만, 그 수질이나 수량을 적절하게 관리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적게 보아도 6만, 많으면 20만 채 이상의 빈집은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을 높이고 쇠락한 농촌 경관의 표상으로 고착될 판이다. 차마 살 수 없는 폐가 수준의 궁벽한 주거환경에 노출된 노인 가구도 많다. 마을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경관을 가꾸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일손이 필요하겠는가?

공익직불제 논의로 불씨를 지핀 농업환경 보전에는 또한 얼마나 많은 손길이 필요한가? 단지,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덜 투입하는 것만으로는 농업환경을 제대로 보전할 수 없다. 그보다 더욱 적극적인 개입이 요청된다. 농경지 주변 공간, 수로, 저수지 등을 정비하고 농업환경 생태계를 모니터링해야 하며, 농민들을 조직해야 한다. 기존의 사회복지 전달체계에 편입되지 못한 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노인, 장애인, 아동, 이주민 등 농촌 지역사회에는 상부상조의 돌봄이 절실한 이들이 많지만, 보통의 시골에는 그런 역할을 수행할 사회복지기관이 없다.

물론, 이런 일들을 종래의 공공 일자리 방식으로, 즉 하루 일당을 대가로 ‘단순 노가다’를 시키는 식으로 운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존의 농촌 주민을 포함해, 농촌에 오게 될 도시민들이 합류해 조직을 만들어서 수행해야 한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협동조합을 결성케 하고, 그 조직에 인건비를 포함한 사업비를 제공하면서 사업(프로젝트)을 위탁하는 방식의 ‘사회적 일자리 정책’을 궁리해 볼 수 있다. ‘나인 투 식스(9 to 6)’라고 하는 정규직 상용 일자리 형식만을 고집할 일은 아니다. 사회적 일자리 조직은 구성원들의 사정에 따라 유연하게 노동을 투입하면서도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렇게 마련된 사회적 일자리 조직은 창의적으로 사업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일도 도맡을 수 있다. 일자리를 제공했다는 수준을 넘어 사업 자체의 성과가 높은 경우, 준공공적 성격을 지니는 농촌의 사회적·경제적 과업을 수행하는 항상적인 체계로 발전시킬 수도 있을 테다. 내 맘대로 갖다 붙이자면, ‘그린뉴딜’은 이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많은 일거리를 좋은 일자리로 전환할 수 있다면, 당면한 일자리 재난에 대응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 전체가 모른 체했던 농촌에 새롭게 투자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가 아직 만나지 못한 미래 세대를 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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