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병성 기자]

▲ 코로나19 사태로 주곡인 쌀산업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식량안보를 확보하고 있어야 국가도 건재하다는 진단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쌀의 현실을 진단하고 쌀산업의 발전 방향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쌀의 현실을 들여다보자. 쌀농가는 고령화되고, 쌀농사만으로는 생계를 꾸릴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정책에서 쌀 비중 축소와 함께 국가적 관심도 꺼져가는 모양새다. 심지어 쌀밥 중심의 식탁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식의 잘못된 정보가 나돌기도 한다. 그러면서 쌀에 대한 소비자 요구는 다양하고 까다로워지고 있다. 쌀 생산구조와 소비패턴이 엇갈린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쌀산업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최근의 쌀 관련 동향을 보면 “쌀농가와 쌀산업이 스스로 알아서 살길을 찾아라”는 식이다. 이에 따라 본보는 대한민국 쌀의 현주소를 들여다보고 쌀산업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기획기사를 연재한다.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 59.2kg
40여년 동안 절반 이하로 급감
10a당 논벼 총수입 100만원 안팎
생산비 제외하면 30만원대 그쳐
쌀값 폭락 2016년엔 18만1000원

품질·맛·영양적 가치 등 꼼꼼 
소비자들 선택 기준 높아져
“쌀 수확 후 관리 강화 필요”

RPC 관련 정부 예산 확대 등
쌀산업 경쟁력 제고 정책 절실 


▲쌀생산 구조변화를 보니=우선 쌀 생산 현황을 보자. 가장 많은 쌀 생산량을 기록한 해는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한 1988년이다. 올림픽으로 전국이 축제 분위기였던 당시 쌀 생산량은 605만톤에 달했다. 하지만 1989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선 이후 매년 생산량이 줄어 2018년 386만800톤, 2019년 374만4000톤으로 조사됐다. 지난해의 경우 최고 생산량을 기록했던 1988년 대비 62% 수준이었다. 

이는 쌀 소비량 감소와 함께 벼 재배면적이 줄어든 것이 원인이다. 1980년경 쌀 소비량이 정점을 찍고, 이후부터 밥공기의 크기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통계청 양곡소비량 조사 결과를 보면 1인당 쌀 소비량은 1978년 134.7kg, 1979년 135.6kg, 1980년 132.4kg, 1981년 131.4kg, 1982년 130kg 등에 달했다. 당시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연간 6.5가마 정도의 쌀을 소비, 쌀 한가마로 두 달을 넘기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식생활 서구화가 진행되면서 쌀 소비량은 2019년에 59.2kg에 그쳤다. 지난 40여년 동안 한 사람이 먹는 쌀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쌀 소비량의 영향을 받아 벼 재배면적 또한 감소했다. 지난 40여년 동안 벼 재배면적 추이를 보면 1980년 123만3000ha, 1990년 124만4000ha, 2000년 107만2000ha, 2010년 89만2000ha, 2019년 73만ha 등으로 우하향 곡선을 보여 왔고, 2020년 올해 또한 지난해보다 소폭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쌀농가 경제도 급격한 변화=쌀 생산구조의 변화는 쌀농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쌀농업의 외형이 위축되면서 쌀 소득은 물론 농가 고령화가 심화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논벼 생산비조사 결과에 따르면 10a당 논벼 총 수입은 지난 2000년 이후 100만원 안팎에서 변동하고 있다. 그나마 산지쌀값이 평년보다 크게 오른 2018년 117만8000원, 2019년 115만2000원 등으로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농가가 손에 쥐는 돈은 큰 폭으로 줄어든다. 10a당 총수입이 100만원 안팎에 달해도 생산비를 제외하고 나면 고작 30만원대에 그친다. 심지어 쌀값이 폭락했던 2016년에는 18만1000원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이처럼 쌀 소비량이 줄고 소득도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서 쌀농가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물론 전체 농가 중에서 쌀농가의 비중이 여전히 높지만, 1990~2000년대에 걸쳐 전체 농가 중에서 80%를 육박했던 쌀농가 비중은 현재 50%대로 내려앉은 것이다. 그러면서 벼농사 기계화율이 98.4%에 달하고 노동투입시간도 대폭 줄면서 80대의 고령에도 거뜬히 쌀농사를 짓는 등 고령화 추세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까다로워지는 소비자=생산구조 위축과 달리 소비는 더욱 다양하고 까다로워지고 있다. 쌀밥을 먹는 양은 줄었지만 품질과 맛, 그리고 영양적 가치 등을 따지는 소비패턴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쌀과 곡류의 소비량이 감소하는 반면 해조류, 어패류, 종실류 등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모든 연령에서 쌀밥 식단이 아니 아침식사를 하거나 아침밥을 거르는 경향이 조사된 바 있다. 그러면서 쌀을 구매할 때 선택 기준은 까다로워지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실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소비 변화에 대응한 식량정책 개선 방안’ 연구에 따르면 쌀을 구매할 때 가격 중심의 선호에서 품질이나 밥맛을 선호하는 트렌드가 나타나는 것으로 소비자 설문조사를 통해 분석했다. 이는 2018년 조사한 것으로 쌀 구매 요인으로 당시에는 가격과 품질이 각각 31%, 25.6%였지만, 5년 후에는 가격이 29.2%로 내려가고 품질이 29.6%로 올라가는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식품연구원 또한 쌀 소비에서 건강지향과 편리성 추구가 강해지고 있다고 봤다. 김의웅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소비자가 요구가 변화함에 따라 쌀은 식량에서 식품이면서 상품으로 발전하는 패러다임이 나타나고 있다”며 “소비자 선호하는 고품질쌀은 맛있고 외형이 좋으면서 안전성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의웅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고품질쌀의 결정은 수확 후 요인이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한다”며 “쌀농가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생산한 쌀을 소비자에게 수확 직후의 밥맛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수확후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실종된 고품질쌀 정책=쌀 생산단계의 농가들은 허약해지고 있는 반면 소비자들의 입맛은 높아지는 현상이 뚜렷하지만 고품질쌀 정책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칫 품질을 차별화한 수입쌀이 국내 틈새시장을 파고들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환경이다.

그럼에도 쌀산업 경쟁력과 고품질쌀 생산을 위한 정책이 언제부턴가 실종된 게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쌀이 농업정책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현장의 여론이다. 특히 쌀산업 현대화 성과를 올린 정책사업인 미곡종합처리장(RPC)이 그동안 반복된 역계절진폭에 따른 경영악화와 시설노후화 등으로 경쟁력을 잃고 있지만 정부예산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병완 농협RPC운영협의회장(보성농협 조합장)은 “쌀농업은 전국 농촌마을의 골격으로 쌀농가의 안정적인 농업소득과 쌀산업의 경쟁력이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으로 이어진다”며 “RPC를 포함한 쌀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용석 한농연 사무부총장은 “최근 쌀에 대해 수급과 가격에만 치중하는 경향인데 쌀농업과 쌀산업 전체를 연계한 정책 체계가 요구된다”며 “코로나19 사태에도 우리나라가 안정을 잃지 않았던 것도 쌀 자급을 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쌀농업과 쌀산업은 식량안보이자 국가안보”라고 밝혔다.

이병성 기자 leebs@agrinet.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