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갛게 방울토마토 익어갈수록,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농부 마음’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김경욱 기자]

▲ 경기 평택 진위면 ‘들막농원’ 농장주인 임성남 씨(첫 번째 사진)가 농작업 시범을 보이고 있다. 2000평 규모의 방울토마토가 익어가고 있는 시설하우스 안에서 10여명의 본보 기자회원들이 조금이나마 일손을 거들었다. 이번 방문은 농업 현장에서 느끼는 농촌 인력 수급 문제를 체감하고 이를 알리는 한편 우리 농산물 소비를 촉진해보자는 취지에서 진행했다.

코로나19라는 뜻밖의 변수가 장기화하며 농촌 현장을 옥죄고 있다. 학교급식 중단으로 친환경 농산물 판로가 막혔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급감하며 가뜩이나 부족했던 농촌 인력 문제는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가격 지지는 고사하고 일손이 부족해 다 자란 농산물을 수확하지도 못한다는 참담한 소식이 연일 들리고 있다. 올 첫 장맛비가 대지를 적시던 지난 6월 24일 한국농어민신문 기자회는 경기 평택시 진위면의 한 시설하우스 농장을 찾아 일손 돕기를 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느껴봤다.
 

# 현장에선

급식 중단에 갈 곳 잃은 물량 
시장 쏟아지며 유통 흐름 영향

계약재배 등 연쇄 피해 확산도

6월 24일 아침부터 경기 평택시 진위면에 위치한 ‘들막농원’의 시설하우스에는 모처럼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첫 손님은 올여름 처음 내린 장맛비. 시설하우스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아침을 깨웠다. 하우스 안은 얼마 되지 않아 인기척으로 가득했다. 10여명의 외지인을 맞이한 농장주 임성남 씨는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2000평 규모의 시설하우스에는 올해 2월 중순 정식한 방울토마토가 익고 있었다.

하지만 토마토가 새빨갛게 변할수록 임 씨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코로나19 사태가 여느 해와 다른 ‘악순환’을 빚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학교급식이 중단되자 갈 곳을 잃은 친환경 공급물량이 시장으로 일부 쏟아지면서 기존 유통 흐름에 영향을 끼치게 됐고, 그 ‘불똥’이 임 씨에게도 튀었다.

GAP 인증 방울토마토를 생산하고 있는 임 씨는 인근 농협과 직접 판매 등 크게 두 곳을 통해 출하했는데, 올해의 경우 코로나19로 학교급식이 중단돼 급식 물량 일부가 시장으로 풀리며 가격 및 수급에 타격을 준 데다 방역 대응 차원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으로 인적이 끊기면서 대면 판로 자체가 아예 막혀버렸다. 올해 1월 재배한 다른 필지의 시설하우스(1000평) 물량은 이미 한 차례 폐기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지만, 그렇다고 시설하우스 안의 ‘생물’을 포기할 수도 없어 속을 끓이고 있다. 

임 씨는 “약 28~29년 농사를 지었는데, 요즘처럼 농산물 소비가 위축되고 시장 유통 흐름이 확 바뀐 적은 처음 있는 일 같다. 코로나 사태 이전인 1~2월 정식했는데, 일부는 폐기했고 또 일부는 1차 수확을 한 상황”이라며 “기존 판로가 줄어들거나 막힌 상태라 하루하루가 악몽 같다”고 토로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농촌 인력 문제도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인력 수급이 원활치 않으면서 인건비 상승은 물론이거니와 그 비용을 댄다고 해도 추가 인력을 구하기조차 힘든 상황. 임 씨는 “지난해까지 외국인 노동자를 해마다 2~3명 정도 고용해 왔는데, 올해는 1명도 구하지 못했다. 주변에 ‘알음알음’ 인력을 수소문하고 있지만 여의치가 않다”면서 “현재로선 어쩔 수 없이 기존 일하는 시간을 더 늘릴 수밖에 없어 마음도 몸도 지쳐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일손을 돕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한 표정에는 이런 ‘속사정’이 숨어있었던 것.
 

기자들에 맡겨진 ‘곁눈 따기’, 얼마 지나지 않아 손 익었지만
외국인 노동자 빠진 농장에선 이 일조차 벅차…일부 폐기도

기자들에게 맡겨진 일은 ‘곁눈 따기’ 작업. 모종한 지 1개월이 지나면 꽃과 순이 나오는데, 튼실하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주요 줄기 이외의 필요 없는 순이나 잎 등을 따주는 일이다. 고랑마다 2명씩 마주보고 작업을 시작하자 금세 속도가 붙었다. 일손을 돕는 오전 내내 ‘싹둑싹둑’ 전정가위 소리, ‘후두둑, 후두둑’ 순과 가지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비닐하우스를 가득 적시는 빗소리와 함께 어우러졌다. 비닐하우스 면적의 절반 이상을 작업하는 데 3~4시간 정도가 걸렸다. 영농 경험이 없는 외지인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손에 익는 농작업이었지만, 농촌 현장은 이 일조차 벅찬 하루하루에 신음하고 있었다.  

 

"농촌 인력 30% 달하는 외국인, 올해는 1명도 못구해"

최소 숙박 기준 등 현실화 절실 목소리

이날 농장에 방문한 차홍석 송탄농협 조합장은 “농촌 인력의 30% 이상을 외국인 노동자가 대체하고 있는 여건에서 농가가 합법적인 외국인 인력을 이용할 수 있는 폭이 너무 좁은 상황이다. 외국인노동자가 묵는 최소 숙박시설 기준의 경우 현실 여건에 맞게 제도를 유연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했다.

정정호 한국농업경영인평택시연합회장은 “코로나 사태로 학교급식이 중단되면서 계약재배 농가의 피해는 물론 그 피해가 다른 농가들로까지 연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자영업자나 중소 상공인들의 피해에 가려져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많은 농업인들이 판로 문제에 더해 농촌 인력 문제까지 겹쳐 ‘이중고’, ‘삼중고’를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성남 씨는 “방울토마토의 경우 3~7월까지 생산과 함께 출하가 병행되다보니 인력이 가장 필요한데 바쁜 시기가 지난 5월 이후에야 인력 수급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고질적인 농촌 인력 수급 문제가 코로나 사태에서 보다 심각해지고 있는데, 애써 키운 농작물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다 많은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신현유 한농연경기도연합회장
“일손부족 근본 문제는 농촌 기피 현상”

코로나19로 도드라져 보일 뿐 일손 부족은 고질적인 문제
전문인력 양성 실행에 옮기고 임금보전 등 지원책 강구해야

“실업자가 넘쳐난다는 데 왜 농촌엔 일손이 부족할까요. 근본적인 문제는 농촌 기피 현상에 있습니다.”

격려차 일손 돕기 현장을 찾은 신현유 한국농업경영인 경기도연합회장은 새참 시간을 이용해 기자회원들에게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며 관련 의견도 나눴다.

이 자리에서 신 회장은 “코로나19에 따른 외국인 인력 수급 문제까지 겹치며 올해 유독 농촌 일손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하지만 올해 코로나로 이런 현상이 더 도드라져 보일 뿐이지 일손 부족은 농촌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농산물 가격이 단가를 맞춰주면 고임금을 주고 일손을 구할 수 있는데 그런 농민이 몇이나 되겠냐”며 “현재 정부와 지자체, 관련 기관 등에선 농촌 봉사활동을 추진하지만 이것으론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현유 회장은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전문 인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신 회장은 “농촌에서 단순 인력도 있어야지만 그 못지않게 숙달된 노동자가 필요하고, 그들은 두세 사람 몫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며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정책적 사업을 고민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신 회장은 “농산물 가격이 지지돼 농가들이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게 된다면 인력 문제도 함께 풀 수 있겠지만 다들 알다시피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소상공인 자금 지원 등 소외계층에 대한 여러 지원책이 나오는데 농촌 현장에선 무엇보다 농촌 인력에 대한 임금 보전 등의 지원책이 강구돼야 한다. 그래야 인력들의 농촌 기피 현상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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