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 학사농장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조선시대 큰 밥그릇으로 돌아갈 수 없듯
코로나 이후 세상은 ‘변화’ 아닌 ‘진화’
한국농업도 차원이 다른 진화정책 필요

영원한 사랑과 고귀함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의 단위가 ‘캐럿(carat)’이다. 캐럿은 지중해가 원산지인 두과식물 캐롭(carob)나무 열매의 꼬투리 속의 콩알이 약 0.2g인데, 양팔 저울에 콩알의 개수로 무게를 재는 것에서 비롯됐다. 캐롭나무 열매는 성경에 돼지 먹이로 사용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이 기근 때 외에는 관심도 없는 식물로 기록되어 있다. 별 볼일 없는 콩알이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보석의 기준이 된 것이다.

문득 밥 한 그릇의 기준은 어떻게 정해졌을지 궁금하다. 난중일기, 징비록과 함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의 주변 생활을 개인적으로 기록한 조선시대 3대 사서인 쇄미록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한양을 점령한 왜군들의 군량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를 첩자가 알아내 왔는데, 당시 조선군의 식사량으로 계산해보니 약 한달 분량이었다. 한 달 뒤면 왜군들의 식량이 떨어져 물러 갈 것이라 생각하고, 성 앞에 진을 치고 기다렸는데 어찌 된 일인지 한달이 지나도 왜군들이 후퇴하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왜군들의 밥그릇은 조선군의 1/3 크기였고, 그래서 왜군들이 식량 아끼려고 밥그릇이 아닌 김치 종지에 먹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군이 식사량을 줄인 것이 아니었다. 당시 조선 백성의 밥 한 그릇은 약 690g으로 지금보다 4~5배가 큰 엄청난 대식가였으며 1940년대까지도 비슷한 크기였다, 고려시대는 1040g, 고구려 시대는 1300g의 밥그릇을 사용했다고 한다. 어릴 적 시골에서 큰 밥그릇에 가득 고봉으로 밥을 쌓아서 먹던 어른들의 밥그릇이 기억난다.

그런데 쌀이 남아돌 정도로 더 풍요로워진 지금의 밥그릇은 왜 작아졌고, 밥 한 그릇의 기준은 어떻게 정해졌을까? 1960~70년대 쌀이 부족해서 보리나 밀가루 같은 혼식·분식을 장려했지만 쌀은 계속 부족했고, 이에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1973년 서울시에서 직경 11.5cm, 높이 7.5cm의 스테인레스 밥그릇을 한 그릇의 표준으로 정해 시범식당을 지정하여 보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쌀 소비량이 나아지지 않자 1976년에는 그것보다 더 작은 직경10.5cm, 높이 6cm 지금 크기의 스테인레스 그릇에 4/5 정도만 담은 것을 밥 한 공기로 정하고 모든 식당이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이를 1회 위반하면 1개월 영업정지, 2회 위반하면 영업허가를 취소하는 등 강력하게 시행하였고, 이 기준이 전국으로 확대되어 지금의 밥 한 그릇이 정해졌다.

전문가들이 코로나 이후 세상은 ‘변화’가 아니라 ‘진화’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당연하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을 수가 있고, 말도 안 된다던 것들이 말이 돼 버릴 수도 있다. 기준이 좋아서 보석처럼 보일 수도 있고, 보석 같은 것의 기준이 되었으니 좋은 기준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사회적 거리가 몇 미터부터인지, 몇 명이상 모일 때는 특히 조심해야 될지, 딱히 잘 알지도 못하는 많은 기준을 어쨌든 정해야 하고, 얼굴을 기준으로 한 기술들은 이제는 마스크를 쓴 얼굴을 포함하는 기준으로 바뀌야 할 수도 있고, 악수를 해야 할지 주먹을 내밀어야 할지, 이럴지 저럴지 기준을 정하기 애매한, 그렇다고 딱히 법으로 정할 수도 없는 것들이 참으로 많아졌다.

‘변화’는 다시 되돌아 갈 수도 있지만 ‘진화’는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다. 코로나가 지난 후에 코로나 전으로 얼마만큼 다시 돌아갈지는 모르겠지만, 쌀 소비를 늘리자고 조선시대 밥그릇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고급스런 기준으로 바꾸자면서 캐럿을 사군자로 바꿀 수도 없다.

농업의 개념, 유통환경의 변화, 산업구조, 복지 기준, 고용 기준 등 많은 기준에 코로나는 ‘진화’를 요구하는데, 기존 가치나 이해관계 또는 정책에 반영되거나 그렇지 않거나 여러가지 이유 등으로 ‘변화의 대응’을 ‘진화의 정책’으로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만드는 ‘기준’이 미래다. 흑사병, 스페인독감, 사스, 메르스, 코로나 그리고 앞으로도 닥칠 질병들은 어차피 계속될 것이며 그때마다 세계 농식품의 환경은 엄청나게 변할 수밖에 없다. 현명한 ‘변화의 대응’으로 잠시 유지 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농업이 세계 농식품의 G1이 되기 위해서는 차원이 다른 진화의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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