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현우 기자]

유업체, 생산자측과 협의 없이
일방적 안건 상정 요청 논란

소비자단체 유업체 입장 대변
유제품 원가검증 등 외면
“낙농가 희생 고려 안해” 비판

한국낙농육우협회는 지난달 31일 이사회를 개최한 가운데 향후 진행될 원유가격연동제 개선 논의과정에서 제도의 본래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원칙적이고 단호하게 대응하기로 결의했다.

원유기본가격이 2021년 8월부터 21원 인상하는 것으로 생산자와 유업체 간의 협상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유업체를 대표하는 유가공협회가 원유가격연동제 개편안을 생산자 측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낙농진흥회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하려고 시도하면서 생산자와 유업체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또 소비자단체협의회가 유업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낙농진흥회 이사회가 열린 날에 배포하면서 낙농가들의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업체, 원유가격연동제 개선 방안 안건 기습 상정 시도=생산자와 유업계는 7월 21일 열린 제8차 원유기본가격조정협상위원회에서 ‘2021년 8월 1일부터 원유기본가격을 21원 인상한 947원으로 조정’하는 것에 합의했다. 양측이 합의한 만큼 7월 28일 열린 낙농진흥회 이사회에서 해당 안건이 통과돼 조정안은 내년 8월 1일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낙농진흥회 이사회를 하루 앞두고 한국유가공협회가 생산자와의 협의 없이 원유가격연동제 개선 방안을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해줄 것을 요청해 생산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실제 한국유가공협회가 낙농진흥회에 7월 27일 발송한 ‘낙농제도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공식 안건 상정 요청의 건’에 따르면 원유가격 협상 시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가격이 적용된다고 언론, 소비자로부터 그동안 많은 논란과 비판을 받았다. 유업계는 원유기본가격 협상 과정 중 인하와 동결을 계속 요구했지만 우리(유업계) 측 의견에 대해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이제는 소비자를 외면하는 제도 개선 필요성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만큼 원유가격연동제 개선 방안 마련을 공식 안건으로 상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를 두고 한국낙농육우협회는 이번 안건 상정이 양측의 (협상에 대한) 합의사항을 위배하고 사실상 추가조건을 달겠다는 것으로서 용인할 수 없다며 안건 상정에 반대 입장을 전했다. 결국 7월 28일 이사회에 원유가격연동제 개선 방안 안건은 상정되지 않았고 향후 실무자 논의를 통해 원유가격 제도개선 소위원회 구성, 논의사항 등을 마련해 8월 중 예정된 차기 이사회에 안건을 재상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와 관련 이승호 낙농육우협회 회장은 지난달 31일 개최한 이사회에서 “FTA 체제 하에 원유가격을 단순 시장논리에 맡기면 낙농산업은 완전히 붕괴될 수밖에 없다”며 “원유가격연동제 도입 취지를 왜곡하고 훼손하는 어떠한 행태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이다.

▲부적절했던 소비자단체협의회의 보도자료=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낙농진흥회 이사회가 열린 7월 28일 오전에 ‘소비자의 후생을 고려하지 않는 우유 생산비 면밀히 재검토돼야’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원유기본가격 조정과정에서 소비자들의 입장은 논의에서 배제된 채 21원 인상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에 통계청 우유생산비 분석을 통해 원유가격을 검토한 결과 자가노동비의 경우 50두 미만 낙농가(2만4042원)가 100두 이상 낙농가(6916원) 보다 3.5배 높다. 소비자단체측은 자가노동은 젖소 사육규모에 상관없이 일정하게 투입될 수밖에 없는 기본요소라는 점에서 양측의 자가노동비 차이가 적당한 지 검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원유가격연동제가 소규모 보다 대규모 낙농가에게 유리한 만큼 소비자단체협의회는 우유 생산비의 비목별 계산 기준을 정부가 면밀히 검토해 소비자의 후생을 도모하는 원유가격연동제를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이 같은 소비자단체협의회의 주장을 두고 낙농산업과 원유가격연동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 접근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자가노동비의 경우 소규모일수록 현대화된 시설이 적어 자가 및 고용노동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규모 농장일수록 자가노동비가 높게 책정된다.

또 생산자와 유업체가 수년간 지속해온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양측이 합의를 통해 제도화된 원유가격연동제에 소비자의 후생을 도모해달라고 요구한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소비자단체가 유업체들이 생산하는 유제품의 원가에 대한 검증 등은 외면하고 정해진 제도권 내에서 결정되는 원유가격연동제에 소비자의 후생을 도모하라는 점은 유업체의 입장만 대변하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특히 정부의 환경 규제 강화에 따른 비용 상승, 사료가격 및 최저임금 인상 등 각종 생산비 상승 요인에도 불구하고 생산자들이 원유기본가격 인상시기를 내년 8월 1일로 양보했지만 소비자단체협의회는 이 같은 낙농가들의 희생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분노하고 있다.

이와 관련 낙농육우협회 관계자는 “소비자단체협의회가 소비자 운동 차원에서 우유가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자 한다면 선진국과 비교해도 과도한 대기업(유통업체)의 우유 유통마진에 대한 제도 개선을 공론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현우 기자 leeh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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