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소비자 모두 만족하는 ‘우리밀 스토리’ 꿈꾼다

[한국농어민신문 주현주 기자]

지난해 약 360만 톤의 밀이 수입됐다. 이는 우리나라 한 해 쌀 생산량에 버금가는 수치다. 하지만 국내에서 생산하는 밀은 겨우 2만톤 내외, 밀 식량자급률은 지난 10년간 1%대였다. 지나치게 낮은 밀 자급률에도 불구하고 매년 밀 재배 농가들은 소비 부진을 겪으며 재고 처리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밀 소비 확대와 1%대에 머무는 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정부와 산지, 업계의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국회는 지난해 ‘밀산업육성법’을 제정, 올해부터 시행했으며, 주관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도 이에 맞춰 밀산업육성 5개년 계획 등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판로가 마련되지 못한다면 밀 자급률 10%는 고사하고 5%도 어렵다고 말한다.
또 밀은 통밀로 먹기보단 빵, 면, 만두 등 대부분 가공된 식품으로 섭취하기 때문에 밀 소비를 늘리기 위해선 제품의 다양성은 물론 소비자들이 쉽게 우리밀 제품을 살 수 있도록 유통·가공이 활발해야 한다고 우리밀 업계는 입을 모은다.
이에 한국농어민신문은 4회에 걸쳐 우리밀 유통·가공업체 노하우와 애로사항을 진단하고, 내년도 밀 산업 육성 추진 계획을 짚어본다.

 

네니아는 지난 2015년 친환경 유기농매장 ‘네니아 북촌직영점’을 열고 우리밀 제품과 로컬푸드, 유기가공식품 등 얼굴 있는 생산자의 농·축·수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자연과 가까이’ 회사명에 담고 
만두·면·빵 등 제품 생산·판매
모든 재료는 국내산만 사용 
흔한 구연산 한 번 첨가 안해

‘우리밀 운동’ 20년 문영진 대표
“무모한 도전이란 생각 들지만
품질 차별화 위해 우리밀 고집”

우리밀 제분 업체 혜택 주고
학교급식 사용 등 소비 늘려야 

 

■ 우리밀 어디까지 변하니?

우리밀 제품을 전문적으로 유통하는 업체가 있다. 친환경식품쇼핑몰 네니아다. 네니아를 이끌고 있는 문영진 대표(55)는 1999년부터 우리밀살리기운동을 해온 우리밀 전문가다. 그래서일까. 지난달 5일 네니아 본사가 위치한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경기친환경농산물유통센터에서 만난 문 대표는 사업가라기보다는 사회운동가 같다는 느낌이다.

2004년 ㈜우리밀급식으로 출발한 네니아는 자연과 가까이(Nature Near)한다는 의미로 우리밀로 만든 만두, 면, 빵 제품을 기획하고 생산·판매한다.

네니아가 연간 사용하는 우리밀은 350~400톤. 전남 해남 우리밀영농조합과 땅끝영농조합법인에서 친환경 밀을 수매하고, 경북 김해 봉하마을에 있는 저온저장창고에 보관한다. 이후 수요가 있을 때마다 보관된 밀을 충남 당진 동아제분으로 옮겨 만두, 빵, 면 등 가공 특성에 맞게 제분한다. 제분 과정을 거친 밀은 각각의 가공업체에 공급되고, 완제품은 네니아를 통해 판매된다.

전국 4000여 개의 영유아 어린이집, 유치원, 대안학교, 초·중·고교 등 지역 학교급식공급센터가 네니아의 주 판매처이며, 두레생협 등 협동조합에도 납품하고 있다. 최근에는 쿠팡, 마켓컬리 등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영역까지 넓혀가고 있다.

종로구 인사동에 위치한 친환경 직영식당인 ‘꽃, 밥에피다’에서는 우리밀을 비롯해 식자재 95%가 국내산 친환경 농산물이다.

문 대표는 친환경식품쇼핑몰이라고 해서 빠른 배송에만 몰두하며 ‘제품 하나에 가격 하나’로 치부하는 게 아닌,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게 스토리 있는 우리밀 제품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네니아 PB제품(자사상표)인 우리밀 만두는 무항생제 돼지고기와 국산 생야채, 국산 고구마로 만든 당면, 국산 콩으로 만든 간장, 참기름 한 방울까지 전부 국내산 재료를 사용해 만들었다. 대두단백이나 글루텐, 복합화학조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아 아이들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으며 왕교자, 물만두, 군만두, 채식만두, 메밀전병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외에도 냉동짜장면, 우동면, 수제비, 쫄면 등 각종 면 제품과 묵, 두부, 어묵 등에 사용되는 밀도 전부 우리밀로 만든다.

네니아가 자랑하는 또 한 가지는 천연 버터로 구운 우리밀 베이커리다. 우리밀 핫도그, 통밭찐빵, 찰보리팬케익, 초코칩 쿠키 등 빵 종류도 30개가 넘는다. 설탕, 후추, 초콜릿 등 생산이 불가능한 원료를 제외하곤 모두 우리농산물을 사용하며, 화학첨가물은 쿠키에 들어가는 팽창제뿐이다. 흔한 구연산 한번 첨가하지 않는다.

네니아는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경기친환경농산물유통센터 2층에 본사가 위치해 있으며, 이곳에 1980㎡(600평)의 냉동 창고도 갖춰져 있다.

이렇게 까다로운 제조 방식이 처음부터 환영을 받았던 건 아니었다. 사업 초기에는 문 대표의 원칙과 고집 때문에 다양한 상품을 만들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럼에도 우리밀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문 대표는 “무모한 도전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회사의 윤리적 가치관과 품질 차별화를 함께 추구해야 한다고 판단, 우리밀 사용을 포기할 수 없었다”며 “이 같은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며, 미래 세대에 농업과 환경을 조금이라도 더 남겨놓자는 생각으로 우리밀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우리밀살리기 운동을 했던 한 사람으로서 지금까지 20년 넘게 밀 자급률이 3%도 채 안 됐다는 것은 우리밀 업계와 정부 모두 무능했다고밖에 설명이 되질 않는다”며 “어설프게 우리밀 품질이 안 좋다거나 종자 개발 등 하나마나 한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지금이라도 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밀 생산·수매·유통·소비 모든 단계를 세세히 들여다보고 잘 굴러가도록 기름칠을 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밀가루 제분기계는 규모에 따라 약 100억원에서 700억원까지 달하는 고가의 설비이기 때문에 정부가 새로운 제분기계에 투자한다고 해도 그만한 효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제분시설을 갖추고 있는 기존 제분업체가 수입밀이 아닌 우리밀 가공라인을 구축할 수 있도록 우리밀 제분 시 세제 혜택을 주는 방법도 있다”며 제분업체의 우리밀 가공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의견을 제안했다.

학교급식 등 공공급식 분야에서 우리밀 소비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문 대표는 “우리밀 업계가 지금의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공영역을 통해 우리밀 소비를 늘려야 한다”며 “서울시 학교급식에서만 밀을 약 3000톤을 소비하고 있는데 이를 우리밀로 공급할 경우 지자체 성과로 분명히 나타날 수 있는 부분이다. 공공급식을 바탕으로 일반 시장까지 우리밀 소비가 확장된다면 밀 자급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우리밀 연간 170톤 공급…다음 농사지을 밑천 되죠”


■ 계약재배 농가 해남우리밀영농조합 주기준 대표


많은 비로 수확량 반토막인데
여전히 팔 데 없어 재고 쌓여
밀 자급률 높이는 대책 세워야


“농촌에서 6~7월에는 거의 돈이 나올 곳이 없는데, 밀은 10~11월 심으면 다음 해 6~7월에 수확해서 돈이 나와요. 그럼 이 돈으로 그해 배추도 심고 감자고 심어요. 밀이 다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밑천이 되는 거예요.”

전남 해남 산이면 진산리에서 3만9669㎡(1만2000평) 규모의 밀을 재배하는 주기준 대표(55)는 15년 차 농부다. 그는 2018년 네니아와 계약한 이후 연간 약 170톤의 친환경 우리밀을 네니아에 공급하고 있다.

주기준 대표 역시 우리밀 정책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밀 소비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기준 대표는 “올해 초 비가 많이 와서 수매가 늦어지는 바람에 붉은곰팡이병이 해남 밀 재배산지에 번졌다”며 “이 같은 병충해로 올해 밀 수확량도 반 토막이 났는데도 여전히 우리밀을 팔 데가 없어서 재고가 쌓이고 있다. 밀 자급률을 높이고 우리밀 농가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비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우리밀을 유통·가공 업체들이 더 다양한 우리밀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우리밀의 우수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주기준 대표는 “우리밀로 만든 빵을 먹으면 소화가 잘돼 속이 더부룩하지 않다. 건강에 좋은 우리밀이 수입밀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모르고 있다”며 “공익광고 등을 통해서라도 우리밀을 적극적으로 홍보한다면 수입밀의 가격 차이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소비가 늘면 나머지 생산, 가공, 유통 정책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돼 있다”고 전했다.

공공급식 등 소비 확대를 위한 정책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주기준 대표는 “정부는 밀 식량자급률 목표치가 더 이상 허울뿐인 숫자가 아닌 실천할 수 있는 목표가 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매년 남는 밀을 정부가 수매만 해놓고 마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이를 학교급식이나 군급식 등 공공급식으로 소비처를 늘리고 다양한 우리밀 제품이 생산되고 판매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비로소 밀 자급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GMO 배제하기 위해 모든 원료 직접 조달

■ 쇼핑몰·직매장·식당 등 판로 넓혀

350여 식자재 생산지와 연결
과다 생산 물량은 모두 매입
직영매장·식당도 운영 ‘입소문’


“네니아는 이 땅의 농업과 농민의 삶, 식량자급률 제고에 이바지한다. 또 아이들과 시민의 건강을 위해 GMO와 화학적 식품첨가물로 만든 식품을 반대한다. 우리나라의 자연과 환경에서 안전하게 생산되는 농산물과 식품을 지킨다. 깨끗한 농산물을 지키는 일은 우리 삶의 현재와 내일을 지키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영진 대표는 네니아가 추구하는 가치철학에 대해서 이같이 설명했다. 연 매출 약 160억원(2019년 기준)의 친환경농산물전문기업인 네니아는 단순히 제조사로부터 제품을 받아서 포장만 바꿔 판매하는 곳이 아니다.

네니아는 350여 가지 식자재의 생산지와 연결돼 있다. GMO(유전자변형농산물)를 배제하기 위해 모든 원료는 국내산으로 직접 조달한다. 과다 생산한 것은 모두 매입하기 때문에 1980㎡(600평)의 냉동 창고도 갖춰져 있다.

지난 2015년에는 친환경 유기농매장 ‘네니아 북촌직역점’과 종로구 인사동에 친환경 직영식당인 ‘꽃, 밥에 피다’를 새롭게 열기도 했다.

네니아 북촌직역점에서는 로컬푸드, 유기가공식품 등 얼굴 있는 생산자의 농·축·수산물을 판매하고 있으며, 월 10만원 이상 고객이 300여명, 월 1만원 이상 구매 고객이 1000명 정도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직영식당인 ‘꽃, 밥에피다’는 2018년부터 3년 연속 미쉐린 가이드가 선정하는 ‘빕 그루망’에 뽑히는 등 인사동 대표 맛집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선 25년 농사 경력의 전남 장성 김태중 농부가 재배한 유기농 현미를 사용하고, 전북 순창에서 국내산 콩으로 메주를 띄워 담근 전통된장으로 간을 하는 등 사용하는 식자재 95%가 국내산 친환경 농산물이다.

주현주 기자 joohj@agrinet.co.kr

<농림축산식품부 공동기획>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