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축협 ‘조합원 쥐락펴락’ 횡포 제동

[한국농어민신문 이현우 기자]

횡성축협이 2018년 4월 20명의 조합원을 제명한 것에 대해 재판부는 제명 절차 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무효 판결을 내렸다. 사진은 횡성지역 한우농가들이 참여한 횡성한우협동조합의 2015년 설립 당시 모습.

재판부 “사료 선택권은 조합원에 있어” 재차 확인
군 조례에 규정된 요건 충족하면 ‘횡성한우’로 인정
한우협회 “뜻 안맞는 조합원에 불이익·제명 없어야” 


횡성축협에서 공급·판매하는 배합사료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20명의 조합원을 제명한 것이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춘천제1민사부는 조합원 제명 결의는 절차적·실체적 하자가 있어 무효라고 결론지었다. 이 같은 판결에 한우 농가들은 환영의 뜻을 표했다. 횡성축협의 조합원 제명부터 이번 판결의 의미까지 짚어봤다.

▲횡성축협의 조합원 제명 개요=횡성축협(조합장 엄경익)은 2018년 4월 25일 열린 임시총회를 통해 20명의 조합원을 제명했다. 횡성축협 사료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물론 횡성한우 명칭 사용 반대, 축협 브랜드 정책과 중점사업 이용 등 조합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 제명 사유다. 이에 20명의 조합원은 ‘조합원 제명결의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지만 2019년 8월 판결(1심)에서는 횡성축협이 승소했다. 하지만 제명된 조합원들은 1심 판결이 농협법과 상충되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즉각 항소했고 그 결과, 지난 9일 판결에서 임시총회의 제명결의는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판결 핵심 하나, 횡성축협의 제명 절차=재판부는 횡성축협의 조합원 제명이 절차상 문제점 등을 이유로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농협법은 조합원의 제명이 총회 의결사항으로 조합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조합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조합원 제명을 의결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또 총회 개회 10일 전까지 해당 조합원에게 제명 사유를 알리고 총회에서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명시됐다. 재판부는 이 같은 법령이 조합에서 제명되는 경우 조합원이 입는 불이익이 매우 클 수 있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임시총회에서 제명된 조합원들의 변호사가 그들 명의의 위임장을 소지하고 출석했지만 횡성축협이 의견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조합원 제명 건에 대해 찬반투표를 실시한 것은 농협법 등을 위반한 만큼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판결했다. 또 횡성축협의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이해가 상충할 여지가 있는 활동을 한 경우 그 사업과 관련된 혜택을 부여하지 않고 일정한 불이익을 부과하는 등 다른 방법을 강구하지 않은 채 곧바로 제명하는 것은 해당 조합원이 축협의 다른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판결 핵심 둘, 횡성축협의 중점사업 참여=횡성축협은 횡성축협의 사료·출하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점 등 조합의 중점사업 이용 의무 미이행을 제명 사유로 꼽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횡성축협으로부터 공급받은 사료만으로 한우를 사육하고 출하해야 하는 의무를 부담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료 선택권은 조합원에게 맡겨져 있고 조합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제적으로 조합의 사료만을 구입해 한우를 사육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횡성축협 조합원 중 상당수가 조합 사료를 사용하지 않지만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고 제명한 사실이 없는 점, 제명 조합원들이 횡성축협의 구매·마트·수신·카드사업 등에 참여해 이용고배당금을 지급받은 점 등을 감안하면 제명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판결 핵심 셋, 제명된 조합원들의 횡성한우협동조합 참여=제명된 조합원들이 횡성한우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서 활동하고 사육한 한우를 횡성한우협동조합에 횡성한우 브랜드로 출하한 것과 관련 횡성군은 횡성축협과 횡성한우협동조합 등 생산자단체를 동일한 지위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횡성축협한우 브랜드만이 횡성군 조례가 정의하는 횡성한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횡성한우협동조합을 비롯한 생산자단체가 판매하는 한우도 횡성군 조례에 규정된 요건을 충족하면 횡성한우에 속한다.

이 같은 점을 근거로 횡성축협은 횡성축협한우 브랜드 사업 관련 조합원과 이행약정을 체결했지만 이행약정 내용에 비춰보면 횡성축협이 공급하는 사료만을 사용하는 등으로 횡성축협한우 브랜드 관리기준을 준수하거나 횡성축협만을 통해 출하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해석했다. 또 횡성축협과 횡성한우협동조합은 횡성군 조례에 따른 횡성한우의 적법한 생산자단체이고 제명된 조합원들이 횡성한우협동조합의 브랜드 로고를 부착해 판매한 것이 횡성축협에 부당한 피해를 입혔다고 보기 어렵다. 설령 양측의 브랜드가 경쟁 관계에 있더라도 출하규모, 유통망, 시장 인지도 등을 감안할 때 그 정도가 심하지 않고 횡성축협이 수행하거나 수행할 수 있는 사업 중 일부에 불과한 점 등을 감안할 때 조합원 제명사유가 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판결의 의미=한우업계는 조합의 사업에 참여하지 않거나 조합의 방향과 상충되는 의견을 개진했다는 이유로 그동안 조합원을 손쉽게 제명하려고 했던 일부 축협들의 횡포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 엄경익 횡성축협 조합장은 2019년 조합장 선거 공약으로 ‘횡성한우 브랜드’ 통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조합원 중 일부는 브랜드 통합 주장에 찬성하는 의견을 표시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재판부는 조합원 중 일부가 브랜드 통합 주장에 찬성하는 의견을 표시하는 것이 조합원으로서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또 축산농가의 전업화로 한우를 비롯해 양돈·낙농·양계 등 품목조합이 활성화되면서 일선 축협들과 사업 경쟁 등으로 갈등이 지속돼왔다. 이번 조합원 제명 건도 횡성축협과 횡성한우협동조합 간 경쟁과 갈등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판결은 일선 축협과 품목조합이 경쟁과 견제 보다는 서로의 특성을 인정하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전국한우협회는 지난 16일 성명서에서 “이번 재판 결과에 따라 농축협의 사료와 약품, 출하 등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합원을 손쉽게 제명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돼 소송남발, 농민단체 및 조직 간 와해 등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농·축협은 영리목적 사업에 참여하지 않거나 이해관계가 상충하더라도 불이익을 주거나 제명하는 행위는 농축협의 존재 목적과 배치된다는 재판부의 판시 내용과 제명결의의 절차적·실체적 흠결 판단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농·축협은 농민의 선택권과 자주권을 존중해 더 이상의 분쟁을 자제하라”고 촉구했다.

이현우 기자 leeh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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