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과자 본고장에서 만큼은 우리밀로” 농민들 집념 빛나

[한국농어민신문 주현주 기자]

이종민 대표.

수입산 원료 일색인데 충격
제빵기술 배워 호두과자 판매
소비자들 우리밀 선호 ‘불티’
천안옛날호두과자와 협력
우리밀 납품 길 열어

호두과자 넘어 제과·국수까지
전국 돌며 판로 확대 앞장
반죽법까지 알려주며 영업
가공용 밀 품질제고도 꾸준히


천안은 우리나라에서 호두나무를 처음 심은 호두 시배지다. 동그란 호두 모양의 과자 안에 호두와 팥을 넣어 만들기 시작한 호두과자는 자연스럽게 천안 대표 명물로 자리 잡았다.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호두과자를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진짜 천안 호두과자를 맛보기 위해 천안을 찾는 이들도 많다. 호두과자의 본 고장이라는 것을 자랑하듯 천안에 들어서면 대형 호두과자점이 즐비해있다. 어떤 호두과자를 골라야 할까. 모두 같은 모양의 호두과자이지만, 기왕이면 우리밀로 만든 호두과자를 선택해보자. 여기엔 우리밀을 살리기 위한 농민들의 집념이 깃들어있다.


◆호두 농사에서 우리밀 농사로

2011년 17명으로 시작해 한해 400ha, 약 1000톤의 밀을 생산하는 천안밀영농조합법인은 826㎡(250평) 규모의 정선·건조·석발 시설과 저온저장창고를 구축, 품종별로 톤백에 담아 보관하는 등 저장·가공 시설을 현대화해 우리밀 품질을 높이는 데 노력했다.

호두과자를 우리밀로 만들 수 있었던 데는 천안밀영농조합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곳을 이끄는 이종민 대표는 호두 시배지인 천안 광덕면에서 3대가 호두 농사를 짓던 호두 농사꾼이었다. 하지만 그는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에 들어가는 호두와 팥은 물론 밀가루까지 모두 수입산이라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 대표는 “2009년 천안웰빙식품엑스포 개최 당시 농민들과 함께 천안을 대표하는 농산물이 뭐가 있나 찾던 중 호두과자를 떠올렸다. 하지만 호두과자가 100% 수입밀로 만들어지고 있었다”며 “천안 호두과자만큼은 전부 국산으로 바꿔보자고 주변 농민들과 뜻을 모으고 그때부터 밀 농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밀을 생산해도 이 밀로 호두과자를 만들겠다는 업체는 한 곳도 없었다. 우리밀은 품질이 들쭉날쭉해 빵도 과자도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호두과자업체들이 우리밀을 사용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자 이종민 대표는 직접 제빵 기술을 배워 호두과자를 만드는 데 나섰다.

1년간 제빵 기술을 배운 그는 2014년 아내와 함께 천안 지역 내 롯데마트에서 우리밀로 만든 호두과자를 만들어 팔았다. 우리밀과 수입밀의 가격 차이는 호두과자 단가를 높여 극복할 수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 대표는 “오히려 가격 차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입밀로 만든 호두과자는 50개에 한 박스였다면, 같은 가격에 우리밀로 만든 호두과자는 20개 한 박스로 만들어 팔았다.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며 "소비자들은 더 적은 양을 먹더라도 우리밀로 만든 호두과자를 선호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밀로 만든 호두과자가 인기를 끌자 천안호두과자상인회에서 이 대표를 찾아왔다. 이들은 왜 농사꾼이 호두과자를 파냐며 장사를 접어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이 대표는 아무도 우리밀로 호두과자를 만들지 않으니 직접 만들었는데 뭐가 문제냐고 따졌고,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이 대표는 우리밀을 사용하면 호두과자 장사를 안 하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결국 천안밀영농조합법인은 천안옛날호두과자와 MOU를 맺고 우리밀을 납품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호두과자 장사를 접고 천안 광덕면에서 10만평(30ha) 규모로 밀과 팥 농사를 짓는 이 대표는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 제과점, 국숫집을 돌아다니며 우리밀 판로를 넓혔다.

“처음엔 농사꾼이 밀가루 반죽하는 법을 알려준다고 하니 아무도 안 믿었다. 하지만 매년 밀농사를 지으면서 관찰한 결과, 그해 비가 많이 오거나 가물면 밀 단백질과 글루텐 함량이 달라지는 걸 알았고, 이에 맞춰서 밀가루 반죽할 때 넣는 물과 숙성 시간 등이 달라졌다. 제과점에 들러 우리 밀가루를 사용해보라고 주면서 반죽하는 방법까지 설명해주니 우리밀을 써보겠다는 업체가 늘어났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동시에 밀 품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이어갔다. 고품질의 밀을 생산하기 위해 국립종자원에서 공급받은 순도 높은 종자를 파종하고, 가공 적성에 맞는 단일 품종을 재배했다. 이로 인해 호두과자를 만들기 적합한 ‘고소밀’과 빵용으로 적합한 ‘금강밀’이 일정한 품질의 밀가루로 만들어졌다. 특히 826㎡(250평) 규모의 정선·건조·석발 시설을 증축, 원맥에 섞인 각종 불순물을 제거하고 품종별로 나눠 톤백에 담아 보관했다. 간혹 보관 과정에서 병해충을 막기 위해 밀에 훈증 처리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천안밀영농조합에서는 밀을 저온저장창고에 보관해 농약을 사용하지 않았다.

천안밀영농조합법인은 2011년 17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준 조합원 40명까지 포함, 50여명이 넘는 농민들이 한해 400ha, 약 1000톤의 밀을 생산하고 있다. 이들이 생산한 밀은 삼양사에서 OEM 방식으로 제분한 뒤 자체 상표로 전국 제과점과 식당으로 배송된다. 설립 초반엔 판로가 없어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지금은 연간 20억원의 매출을 달성하며 타 지역 밀까지 수매할 정도로 밀 생산과 판로가 안정됐다.

이종민 대표는 전문 제빵사들에게 우리밀을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는 교육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부의 밀 보급종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제언도 했다. 이 대표는 "올해 호두과자에 사용하는 ‘고소밀’이 정부 보급종에서 제외돼 종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좋은 품질의 밀 생산을 위해서는 우선 순도 높은 보급종이 농가에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우리밀로 판로를 넓히다

천안옛날호두과자는 천안에서 생산한 우리밀로 호두과자를 만드는 차별화 전략을 내세웠다. 천안옛날호두과자 북천안IC점에서의 내부 모습.

천안밀영농조합에서 생산한 밀은 호두과자를 비롯해 각 지역의 유명 제과점, 제주 전통한과전문점까지 전국으로 납품되고 있다. 이중에서도 천안 지역 내에서 우리밀을 사용하는 ‘천안옛날호두과자’와 ‘우밀 칼국수’를 찾아가봤다.

“우리밀로 만든 호두과자
소비자 먼저 알고 찾아와”


▲우리밀로 만든 ‘천안옛날호두과자’=천안옛날호두과자는 천안역 본점과 11개 직영점을 비롯해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에 우리밀로 만든 ‘옛날호두과자’를 판매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호두과자는 우리밀로 만든 ‘옛날호두과자’와 팥과 호두까지 전부 국내산으로 만든 프리미엄 브랜드 ‘흥타령 호두과자’가 있다. 가장 판매량이 높은 ‘옛날호두과자’ 제품은 16개에 5000원, 흥타령 호두과자는 24개 1만원이다.

황인선 천안옛날호두과자 북천안IC점 대표는 “우리밀로 만들었다고 하면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알고 찾아온다”며 “특히 밀가루, 방부제 등에 민감한 고객들이 우리밀로 만든 호두과자가 맞는지 확인해보고 사 간다. 결국 가격보다 더 중요한 요소는 소비자가 찾느냐 안 찾느냐이다”고 강조했다.

황인선 천안옛날호두과자 북IC점 대표.

천안 호두과자는 전통 간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황인선 대표는 “수입밀을 사용해 잠깐 인기를 끌 순 있다. 하지만 그때 반짝 매출이 올라갈 뿐, 10년 또는 20년 이상 지속되진 못 한다”며 “천안옛날호두과자는 천안에서 생산한 우리밀로 호두과자를 만든다는 차별화 전략을 내세웠다. 재료가 좋으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단지 수입밀이 조금 더 저렴하다고 해서 재료를 바꾸게 되면 소탐대실하는 격이 될 것이다”고 전했다.

우리밀을 사용한 뒤로 호두과자를 만드는 직원들의 건강이 개선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는 “직원들이 밀가루 분진으로 기관지가 안 좋다. 하지만 우리밀로 바꾸고 이 같은 호흡기, 아토피 등 알레르기 증상이 없어졌다고 입을 모은다”며 “우리밀이 건강에 좋다는 점이 널리 알려지면 우리밀을 사용하는 업체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천안 우리밀을 가장 먼저 사용한 '우밀 칼국수' 김완조 대표.

“오랜 시간 뜸들여야 쫄깃
한 그릇마다 정성 남달라”


▲우리밀 칼국수 1호점 ‘우밀 칼국수’=천안 우리밀을 가장 먼저 사용한 ‘우밀 칼국수’는 가게 입구에서부터 주요 식재료 수급처와 공급자 이름, 지역, 연락처까지 상세히 적힌 푯말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선 밀가루뿐 아니라 바지락, 들깨, 마늘, 고추, 버섯, 김치 등을 전부 국내산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밀로 만든 국수 한 그릇 가격은 8000원. 보통 칼국수보다 가격이 약 1000원 정도 더 비싼 편이다.

2013년부터 우리밀로 칼국수를 만든 김완조 사장은 “우리밀로 칼국수 면을 만든다고 크게 다른 기술이 필요하거나 한 게 아니다. 면을 삶는 데 조금 더 오래 걸린다는 것과 반죽하는 특성 몇 가지만 숙지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밀과 수입밀은 익는 속도가 다르다. 특히 우리밀로 국수를 만들 때는 반죽도 중요하지만 끓이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수입밀은 여러 품종을 섞어서 조리 시간을 단축시켰기 때문에 보통 3분 이내로 익지만, 우리밀은 최소 7분 이상 끊여야 한다. 우리밀 국수는 긴 시간 뜸을 들여야 쫄깃하고 잘 퍼지지 않는 면발이 되기 때문이다. 국수를 빨리 삶아서 한 번에 몇 그릇씩 내야하는 가게에서는 이런 특징이 우리밀을 사용할 수 있느냐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김완조 사장은 “오랜 시간 정성스럽게 만든 칼국수 한 그릇에 담긴 의미는 크다고 생각 한다. 손님들도 이런 점을 알아줘 한 번 맛본 사람들은 그 다음에도 또 온다. 평소 주변에서 오는 손님보다 타 지역에서 일부러 알고 찾아오는 편”이라며 “앞으로도 우리밀을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현주 기자 joohj@agrinet.co.kr

<농림축산식품부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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