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앞둔 주요 작목 산지 표정은 <3> 배추·무

[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수확한 배추밭입니다.” 집중호우와 연이은 태풍으로 고랭지 배추·무 작황이 최악으로 흘렀다. 사진은 수확했지만 무름병 등 병충해에 결구도 제대로 안 돼 수확하지 못한 물량이 더 많은 배추밭 모습.

무름병 등 병해충에 몸살
결구도 제대로 안돼
남겨진 배추 처리까지 골치
일부 가격 폭등 보도에 분통 


“수확한 배추밭입니다.”

추석 대목을 10여 일 남겨둔 지난 18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의 한 배추밭. 얼핏 보면 듬성듬성 패여 있어 집중호우로 배추가 유실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곳 밭주인 이정상 씨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배추밭은 추석 대목장을 앞두고 이미 수확이 끝난 상황. 재배된 물량의 절반도 건지지 못한 채 수확이 마무리된 것이다.

고랭지에서만 33만여㎡(10만여 평) 규모의 배추·무 농사를 짓는 농가이자 산지유통인 이정상 씨는 “지난여름 집중호우로 배추와 무가 물에 잠긴 날이 더 많았을 정도였다. 여기에 연이은 태풍으로 바람까지 불어 배추가 흔들리니 무름병 등 병해충은 물론 결구도 제대로 되지 않은 물량이 허다하다”며 “예년엔 1평(3.3㎡)에 10포기 심으면 8포기는 상품성이 되는데 올해엔 두세 포기 건지면 잘 건질 지경”이라고 현실을 전했다. 이 씨는 “인근엔 3만평 농사지었는데 한 포기도 수확 못 한 곳도 있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올해엔 영양제 등 자재비가 상당히 많이 들어 고충은 말을 못 할 지경이라는 산지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다. 이 씨는 “배추를 살리기 위해 좋다거나 값비싼 영양제는 다 썼다. 적어도 지난해 두 배 넘게 자재비가 들어갔다”며 “그럼에도 날씨엔 장사 없다고 살리지 못한 배추와 무가 대부분이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농가와 산지유통인들은 남겨진 배추를 처리하기 위한 이중 비용도 감수해야 한다. 내년 농사를 위해 밭을 다져야 하기 때문. 이 씨는 “이 남겨진 배추는 우리가 결국 다 뽑아야 한다. 그래야 비닐도 걷을 수 있고 로터리도 칠 수 있다”며 “출하하지 못한 배추를 뽑아야 하는 건 정말 할 일이 못 된다”고 말했다.

산지에선 최근 배추 가격 폭등 소식에 혈안인 언론 보도에도 못마땅함을 표하고 있다. 특히 벌써 김장철 수급까지 우려하는 건 시기상조란 지적이다.

산지에 동행한 최병선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장은 “산지유통인들은 대부분 파종과 정식 이후 생육 초기부터 작물을 관리한다. 여러 리스크를 안고, 또 배추와 무를 살리기 위해 밤낮으로 밭에서 살면서 관리하는데 이런 부분은 다 간과된 채 폭리를 취한다는 이야기만 나온다”며 “현실은 10명 중 7명 이상은 다 적자로, 우리가 아니었다면 배추 가격은 상상 이상으로 폭등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매번 농산물 가격이 높다면야 문제가 되겠지만 배춧값이 이렇게 높은 건 2010년 이후 거의 없었다. 10년 만에 한 번 천재지변으로 일어난 일로, 지난해만 해도 바닥세에 허덕여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이 여러 명이었다”며 “외국에선 이런 농산물 리스크에 따른 프리미엄을 인정해주는 데 우리는 한 번 가격이 오르면 그걸 잡으려고만 혈안이지 다른 것들은 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장철과 관련해서도 최 회장은 “특히 벌써 김장용 배추·무 수급까지 우려하는 건 정말 기우”라며 “김장 배추는 아직 생육 초기이고, 김장철엔 강릉에서 해남까지 전국 거의 전역에서 배추와 무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산지에선 농정당국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많이 들렸다. 취재 과정 중 만난 한 산지 관계자는 “현장이 이런데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얼마나 현장을 와봤냐. 언론에서 배춧값이 폭등했다 해도 그런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줄 곳이 농식품부인데 최근엔 할인행사만 강조하지 그런 모습도 보질 못했다”며 “여기에 장마철 전에 비축하라고 한 산지 말도 무시하고 장마철에 수매해 결국 상품성이 떨어진 배추를 시장에 내보내 가격 안정에도 보탬이 되지 못하는 등 최근 정부의 농산물 대책은 낙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기관이 방치한 인재 현장도

김종석 씨가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에서 관리하는 임도 작업장에서 쏟아진 흙탕물로 배추밭 일부가 망가진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고랭지 현장을 돌며 천재가 아닌 인재인 수해 현장도 목격됐다. 더욱이 정부 기관이 시설물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10여일 째 방치된 수해 현장도 있었다.

18일 찾은 강원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의 한 배추밭은 산에서 내려온 토사에 휩쓸려 배추밭 한 가운데 흙이 뒤섞여 있었다. 올해 작황이 최악인 상황에서도 대기리 배추밭은 그나마 나은 상황이다. 물 빠짐이 잘 되는 지형이고 지형도 가팔라 집중호우에도 물이 잠기는 일이 드물기 때문. 그런데 9월초 한반도 동쪽을 훑고 지나간 제10호 태풍 하이선으로 산에서 내려온 흙물이 배추밭을 덮쳐 이 배추밭 중간 2970여㎡(900여 평)가 황토로 덮인 것.

이에 대해 이 밭 배추 주인이자 산지유통인인 김종석 씨는 “정부 기관이 초래한 인재”라며 “정부가 책임지고 피해 복구를 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종석 씨에 따르면 이 배추밭 지근 산에 산림청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가 관리하는 임도 작업장에서 관리 부실로 계곡으로 흘러가야할 빗물이 밭을 덮쳤고, 이에 900여 평 배추밭(금액으론 6000만원~7500만원 가량)이 유실되는 피해를 봤다.

이는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도 인정하는 부분. 다만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는 농장주와 협의해 주변 작업장을 복구시킨 것으로 피해복구는 끝났다는 입장. 그러나 김 씨는 현재 배추는 자신의 것으로 배추 피해까지 보상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 강릉지소 관계자는 “배추밭 지근 산에 우리 쪽 임도가 직선거리로 300m 정도 되는 데 최근 태풍으로 임도가 30m 가량 끊어져 흙물이 쓸려 내려와 밭까지 덮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엔 산에서 보이지 않아 몰랐는데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됐다”며 “농장주와 합의해 배추 작업을 할 수 있게 주변 정리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배추 피해와 관련해선 “그 부분은 강릉시에서 농장주와 합의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김종석 씨는 “산림품종관리센터가 배추 생산, 유통 구조를 전혀 모른다. 농장주는 파종·정식만 관여하고 이후는 우리가 받아서 생육초기부터 키우는 데 왜 배추 주인인 저와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추가적인 비용을 달라는 게 아니라, 유실된 배추만큼의 피해 보상은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다른 곳도 아닌 정부기관에서 일으킨 인재”라며 “보면 알겠지만 내 밭 중에서 이곳이 배추가 가장 양호했던 곳이라 마음이 더 아프다”고 전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