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구례 수해농민들은 지금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지난 8월 8일 섬진강 범람으로 최악의 침수 피해를 당한 곡성과 구례의 농민들은 복구작업에 힘을 쏟고 있지만 여전히 수해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진 왼쪽부터 구례군 마산면 광평마을에서 만난 시설오이 재배농가 임병준 씨와 최석환 씨. 한농연구례군연합회 김수철 회장과 문척면의 번식우 농가 이세원 씨.

“섬진강 범람은 대형인재”
도로 곳곳에 걸린 플래카드엔
피해 주민들 분노 고스란히
‘빚내서 빚갚는’ 수렁에 답답

“끝이 없어. 끝이 없당께...”

지난달 23일 찾아간 구례군 마산면 광평마을. 수해에 1900평 시설하우스가 완파된 임병준(56) 씨는 아내와 둘이서 휘어진 파이프를 밴딩기계로 펴고 있었다. 지난번 수해에 1900평 비닐하우스가 전부 완파돼 하루도 못 쉬고 매일같이 하우스로 나와 복구에 매달리고 있는 상황. 임 씨는 “10월 중순에 작기를 놓치면 올해 소득은 없다고 봐야 한다”며 작업을 서둘렀다.

시설오이를 재배하던 850평 하우스가 완파돼 마을 주민들과 철제 구조물을 바깥으로 끌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던 최석환(68) 씨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그는 “다시 지으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언제 다시 지어질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도 구례 오이는 소득작목 아니냐고 물었더니 “인건비도 무시 못하고, 연료비며 영양제며 투자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이것저것 다 떨고 나면 농사를 잘 지어야지 잘못 지으면 적자”라면서 “갈수록 농사짓기가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거세비육우 30개월령 출하 체중 1톤을 자신할 만큼 지난 16년간 번식우 개량에 정성을 쏟아왔던 이세원(53) 씨는 이번 수해에 어미소와 송아지를 14마리나 놓쳤다. 그는 “피해액도 피해액이지만, 암송아지 투뿔만 생산하는 어미소가 가버려서 생각만해도 죽겄다”면서 “경제적인 것만 따지면 포기하고 포크레인 기사나 하는 게 맞는디 배운 짓이 도둑질이라 그것도 쉽지가 않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 8월8일 섬진강 범람으로 최악의 침수 피해를 당한 곡성과 구례의 농민들은 여전히 수해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섬진강 수해는 대형 인재다. 정부는 국정조사 실시하라” “명절 쇠긴 다 글렀다. 원인 제공자는 사과하고 100% 배상하라” “환경부와 수자원공사는 죽은 소를 살려내라” 개인의 이름으로, 단체의 이름으로 도로 곳곳에 걸린 플래카드에는 치유되지 못한 주민들의 분노가 고스란히 담겼다.

특별재난지역에 지정돼 실질적인 피해 보상을 기대했던 농민들은 턱없이 초라한 지원금에 분통을 터뜨렸고,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한 농민들은 더딘 피해조사와 실제 피해액과는 거리가 먼 보상액 때문에 속을 끓이고 있다.

섬진강유역 수해피해 곡성군대책위원회 박웅두 집행위원장은 “재해보험 가입농가들의 경우 손해사정과 피해율 결정, 보험금 집행까지의 과정이 너무 길고 어려워 복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약관에 근거해 피해자 위주로 신속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정부의 관리 감독과 지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한 해 농사를 망치면 그 손실을 복구하고 만회하는데 기존 농민들도 최하 3~4년은 간다”면서 “꿈을 가지고 귀농한 젊은 친구들이 이번 수해에 꺾이지 않도록 세심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수철 한농연구례군연합회 회장은 “대부분의 농가들이 빚을 안고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에 복구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면서 “특별재난 상황인 만큼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 무이자 운영자금 지원을 확대하고, 상환기간을 대폭 연장해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곡성·구례 수해농민들은 지금>

◆곡성읍 대평리 홍승균·박애라 씨 부부

급한대로 임대하우스 3동을 먼저 복구, 두둑 다지기 작업을 하고 있는 홍승균·박애라 씨 부부는 농작물재해보험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개선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설투자 마친지 3일 만에 침수, 지루한 보험사와의 싸움 걱정”

고가 장비로 농사 한번 못 지어보고
전체 시설 피해액만 5억원대 달해

농작물재해보험은 들어놨지만
보험금은 터무니없이 적은데다 
피해 복구 완료해야 수령 ‘또 빚낼 판’

올해로 귀농 6년차인 전남 곡성군 곡성읍 대평리의 홍승균(48)·박애라(48) 씨 부부는 이번 수해로 딸기 하우스 4동(1250평)과 육묘장 2동(600평), 임대하우스 3동(600평)이 물에 잠겼다. 딸기 양액재배를 위해 동당 1억원 규모의 시설 투자를 마친지 3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대금결제도 안 끝난 고가의 장비들이 농사 한 번 못 지어보고 작살이 났다. 어림잡아 전체 시설 피해액만 5억원대에 달한다. 부부는 “보면 너무 속이 상해서 그쪽 하우스는 문도 못 열어보겠다”고 했다.

다행히 농작물재해보험을 들어놨지만, 실제 보험금 수령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2018년 8월 태풍 피해 때도 보험금 책정을 둘러싼 갈등 때문에 그 다음해 5월 20일이 넘어서야 보험금을 수령했다. “견적서를 다 올렸는데도 빈손으로 와서 자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더라고요. 더 이상 얘기하기도 싫어질 때까지 사진 찍었던데 또 찍고, 물었던 거 또 묻고. 진흙탕 싸움이 되는거죠,” 홍승균 씨는 당시 보험사와 20여 차례 만났고, 나중에는 금융감독원에 민원까지 제기, 결국 합의를 통해 보험금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한 번 경험을 했기 때문에 저 같은 경우 올해는 꼼꼼히 따져서 가입을 했지만, 주변농가들 같은 경우는 보험에 가입했더라도 보험금 수령액이 실제 피해액에 턱없이 못 미칠 것”이라면서 “수천억 원의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정책보험인데도 보험 설계부터 계약, 손해 사정, 지급 절차까지 문제가 너무 많다”고 꼬집었다.

또 피해복구를 완료해야 보험금을 지급하는 보험금 지급방식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물론 피보험자가 청구할 경우 보험사업자가 추정한 보험금의 50% 상당액을 가지급금으로 지급받을 수 있지만 보험사의 피해 추정액이 터무니없이 낮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보험금 산정과정에서 피보험자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고, 결국 복구를 완료하려면 농가가 ‘또’ 빚을 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

박애라 씨는 “당장 딸기 수확이 끝난 지난 5월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수입이 없어 생계가 막막한 상황”이라면서 “그런데도 주택침수 피해는 없다보니 재난지원금은 물론 아무런 응급구호물품도 지급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히 재해보험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긴급복구자금 융자 지원 대상에서조차 배제되는 것은 너무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현재 특별재난지역의 농림어업산림 대상 복구자금 융자는 연리 1.5%에 ‘5년거치 10년 상환 조건’이다.

박 씨는 “어떻게든 임대하우스라도 하루빨리 복구해서 몇 달치 생활비라도 벌려고 힘을 내보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답답하다”면서 “재난 지원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인만큼 피해 조사와 보험금 지급을 서두를 수 있도록 정부가 관리 감독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곡성읍 신리 박노직 한농연곡성읍회장

한농연곡성군연합회 한철우 회장(사진 오른쪽)과 박노직 곡성읍회장이 수해지역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집이며 논 모두 잠겨…한 달을 마당서 텐트치고 살아”

살림살이며 고가 농기구 풍비박산
고령층 많아 복구작업 더딘데다
하루 인건비도 크게 뛰어 부담 가중
농협 등 운영자금 지원 확대해 줘야

“작년에 태풍이 3번 와서 난리도 큰 난리다 했는디, 올해 난리에 비하면 작년 난리는 난리도 아니여. 잠이라도 편하기 자야된디 집이 그렇게 되뿐께, 아구미 사람이 멍해져갔고 일도 하기가 싫고 글드만.”

한농연곡성군연합회 한철우 회장과 함께 곡성읍 신리를 찾아 만난 박노직(61) 곡성읍회장은 마당에 텐트를 치고 한 달을 살다 집에 들어온 지 이제 일주일쯤 됐다고 했다.

섬진강이 범람하면서 71가구 전체가 물에 잠겼던 신리마을은 아직도 주택 복구가 마무리 안 된 집들이 많다. 침수 피해 이후에도 날씨가 좋지 않았던 데다 80~90대 혼자 사는 고령층이 많아 복구가 더딘 탓이다. 한철우 회장은 “시골마을에 건설업자는 적은데 갑자기 수요가 몰리다보니 하루 인건비가 15만원에서 25만원으로 뛰었다. 급허니께 쓰긴 쓰는데 농가엔 큰 부담”이라면서 “집집마다 가구며 전자제품이며 살림살이도 남아있는 게 없는 터라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집도 집이지만 농사 피해도 만만치 않다. 박 회장의 3만5000평 규모의 논은 전부 물에 잠겼다. 그는 “도로 밑으로 오래 침수된 논은 시퍼래 갖고 익덜 안해. 영양제를 두 번이나 했는디도 작황이 썩 좋질 않다”고 걱정했다. 콤바인, 이앙기 등 비싼 농기구도 물에 잠겨 최소 2억~2억5000만원 정도의 피해를 입었지만 아무도 조사조차 안해 가고, 딸기와 멜론을 생산하던 하우스 두동은 보험을 가입해놨지만 “어떻게 될랑가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도 사람 안 다치고 건강헝께 괜찮다는 그는 오히려 귀농해서 시설하우스 농사를 짓고 있는 젊은 농가들을 걱정했다. “말들어봉께 시설을 복구허면 보험금을 준다드마. 근디 돈이 있어야 복구를 허지. 고설재배는 몇천만원씩 들어가는디 엄두가 나겄어. 농사는 작기를 놓치면 1년을 완전 공치는 건디 갑갑허제.”

한철우 회장은 “지금은 농사가 규모도 커지고 시설 투자비도 많이 오르고, 인건비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농사짓는데 운영자금이 많이 들어간다”면서 “최근 농협이 1년짜리 1000만원 무이자 운영자금을 지원하고 있는데, 지원한도를 상향조정하고 상환기간도 3~5년으로 연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구례군 마산면 냉천리 김민수 청년창업농

청년창업농 김민수 씨(사진 오른쪽)는 애호박 적기 정식을 위해 아버지와 함께 밤낮없이 복구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수억대 피해 입었지만 군에서 받은 건 100만원이 전부”

귀농 3년차, 애호박으로 성공 꿈꾸다
하루 아침에 겪은 재해로 꿈 꺾여
“올 겨울농사 잘 안되면 정말 큰 일”
이달 정식 위해 밤낮없이 복구 매달려

농사를 시작한 지 올해로 3년차인 김민수(39) 씨는 청년창업농이다. 구례군 마산면 냉천리에서 애호박 농사를 짓고 있다. 첫해 하우스 두 동으로 시작, 그 다음해 두 동을 더 짓고, 지난해 창업자금을 지원 받아 영농규모를 더 키웠다. 농지 800평을 구입, 3동의 시설하우스와 작업장을 신축하는데 총 2억2000만원이 들어갔다. 대학 나온 아들의 귀농을 반기지 않으셨던 아버지도 농지 구입을 권유하며, 적극적으로 후원에 나섰다.

연초 코로나 사태에도 애호박 가격이 좋아 재미를 봤다. 앞으로 한 5년 정도만 더 고생하면 자리를 잡겠구나 했는데, 갑작스런 재해가 민수 씨의 발목을 잡았다. “물이 빠지자마자 하우스로 달려왔는데 전쟁터 같더라고요. 작업장은 완파돼 입구는 막혔고, 부력 때문에 파이프는 다 뜨고. 자원봉사자분들이랑, 창업농 형님들이랑 다들 도와주셨으니까 치웠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안나더라고요.” 민수 씨는 결혼만 안했다면 다 정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했다, 아버지 김영주(71) 씨도 “농사짓겠다고 아들 놈이 객지에서 들어왔는데 이래부니께 40년 시골서 농사 진 뒤로 요렇게 가슴 아픈 일은 처음”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설상가상, 농작물재해보험 만기도 6월에 끝이 났다. 재가입을 고민하다 7월에 출산 등이 겹치면서 시기를 놓친 것. 천상 재해복구비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군에서는 하우스 골조 완파, 반파, 그리고 작물 피해만 조사해갔다. 군 관계자는 온풍기나 자동개폐기, 부직포, 비닐, 농기구 등 1억원이 넘는 부대시설 피해는 아예 입력할 항목 자체가 없다고 답했다. 재해복구비 상한액은 세대당 5000만원. 설사 5000만원이 다 나온대도 피해 복구는 어림도 없는 금액이다.

민수 씨는 아버지와 함께 아침 저녁으로 밤낮없이 복구에 매달리고 있다. 겨울작목인 애호박은 구례 특산물로 11월부터 3월까지 가격이 제일 좋다. 6월까지도 수확이 가능하지만 4~6월은 가격이 뚝 떨어져 남는 게 없기 때문에 무조건 10월에 정식이 들어가 11월부터 출하를 시작해야 한다. 안 그러면 지금의 손해를 만회할 길이 없다.

“마음이 급하죠. 하지만 벌써 두 달이 다 돼 가는데 군으로부터 받은 건 100만원이 다에요. 비닐값, 거름값, 자재값은 죄다 외상거래로 버티고 있어요. 만약 올 겨울농사가 잘 안돼 버리면 정말 큰 일인데, 하는 데까지 해보는 수밖에요.”

우리나라 40대 미만 농가경영주 비중은 고작 0.7%. 정부의 ‘청년농 육성’ 구호는 요란한데, 39살 민수 씨는 이 위기를 딛고 농촌에서 농업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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