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서울시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서울시공사)의 무책임한 행정으로 서울시 영양플러스 사업에 참여해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하는 친환경 생산농가들이 피해를 입게 됐다. 영양플러스 사업을 대행해 온 서울시공사가 올해 말로 대행 업무를 종료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서울시가 새로운 대행업체 모집에 나서며 ‘친환경농산물’ 공급원칙을 ‘국내산 농산물’로 변경해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해당 사업에 참여해 왔던 친환경 농가들의 판로가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더구나 사업 참여 농가들에게 이 같은 변경 사항을 사전 고지조차 하지 않아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친환경’ 농가들 판로 사라지나

2008년 시작한 영양플러스사업
서울시공사 대행 중단 입장에
새로운 대행업체 모집 나서면서
친환경농산물 공급원칙 외면
국내산 농산물로 변경 파문


서울시 영양플러스 사업은 취약계층 임산부와 6세 미만 영유아 중 영양 위험군을 대상으로 영양불량 문제 해소를 돕기 위해 특정 식품들을 일정기간 동안 지원하는 제도다. 2008년부터 사업이 시작돼 현재 식품 6종 패키지 45개 품목을 공급하고 있다.

서울시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달리 ‘친환경 농산물’ 공급원칙 기준 아래 ‘친환경 영양플러스 사업’으로 특색 있게 운영하고 있다.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친환경 생산자들의 수요처를 확보해주는 동시에 취약계층에게 질 좋은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하고 있어 모범적인 ‘도농상생’ 모델로도 평가 받고 있다.

적극적인 정책 추진 의지를 보인 서울시와 친환경 농산물 공급을 위해 산지 계약부터 운송·보관·저장 등 물류 인프라를 갖춘 서울시공사(친환경유통센터)의 협업이 원동력이었다. 서울시공사가 해당 업무를 대행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영양플러스 누계실적에 따르면 물량은 농산물 1502톤, 양곡류 1653톤 등 총 1만4084톤, 금액은 총 477억원이다. 사업 예산은 49억원 규모다.

이처럼 탄탄한 행정 공조로 유지돼 왔던 서울시의 친환경 영양플러스 사업은 제도 취지와 달리 내년 ‘친환경 농산물’이 빠진 채로 추진될 것으로 보여 논란을 낳고 있다. 서울시가 내년도 사업의 공급 품질 기준을 ‘친환경 농산물’에서 한 발짝 후퇴한 ‘국내산 농산물’로 변경했기 때문으로, 이 사업에 참여해 왔던 친환경 생산자들의 판로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15억원 규모의 친환경 농산물 공급이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코로나19 등으로 판로 확보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내년도 공급 물량을 준비하고 있던 생산자들의 허탈감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이 같은 변경 지침은 참여 농가들에게 사전 고지도 하지 않은 채 ‘갑자기’ 추진된 것으로 드러났다.

영양플러스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친환경 생산 농가는 “해마다 11월 초 내년도 공급 물량 계약을 위한 입찰 공고가 나는데 올해는 나오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서울시와 서울시공사에 문의하던 중에 변경 내용을 알게 됐다”며 “내년 공급 물량을 준비하고 있는 농가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라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시는 11월 24일부터 26일까지 2021년도 영양플러스 사업 식품공급업체 모집을 공고하고, 대행업체 선정 작업을 밟고 있다. 12월 4일 제안서 평가에 이어 14일 이내 가격협상을 거치면 이달 중하순 업체 계약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관리·책임 맡은 서울시 가장 큰 책임
수익성 이유로 업무 중단한 공사도 배짱” 


사태의 발단은 서울시공사가 올해 말을 끝으로 영양플러스 사업 대행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올해 2월 서울시에 알리면서다. 서울시가 후속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25개 자치구와 논의를 해 왔고, 공사 측과도 협의를 했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내 새로운 대행업체를 모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 서울시의 얘기다.

배진선 서울시 식생활개선팀장은 “그동안 사업이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은 공사가 산지 계약을 통해 유통 단계를 줄였고 물류 인프라 등을 갖췄기에 저렴하고 품질 좋은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며 “서울시가 친환경 농가와 공급 계약을 비롯해 물류·배송 등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기 때문에 새로운 대행업체를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배진선 팀장은 이어 “업체 모집 공고에 앞서 대행업체 시장조사 결과 현 사업 예산(49억원)에서 ‘친환경 농산물’ 공급원칙 기준을 안고 갈 업체들이 없다는 부분을 파악했고, 사업 공급 품질 기준을 ‘국내산 농산물’로 변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공사의 업무 중단 이유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들은 “공사가 가락시장 시설현대화사업과 학교급식 확대 등 본연의 역할에 보다 집중하기 위해 사업 종료를 결정했다고 전달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이유에 더해 공사 측은 사업을 대행할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내세웠다. 공사 내부의 경영 문제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공사 관계자의 얘기다.

정원교 서울시공사 친환경유통센터 농산급식팀장은 “공사가 영양플러스 사업을 시작할 때 구체적인 사업 근거를 가지고 한 것이 아니다. 서울시에서 협조 공문을 받고 추진하게 된 사항으로 알고 있다”며 “인력 부족 문제도 있고, 시설 관리 또는 시스템 기반 구축 등의 예산을 지원 받기에도 사업 근거가 없어 장기적으로 끌고 가기 어렵다는 내부 결정이 있었고, 서울시가 충분히 대응할 수 있도록 2월에 알리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원교 팀장은 “대행 사업을 하면서 별도 예산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영양플러스 사업 공급업체로부터 받는 수수료를 통해 운영되다보니 수익이 많지 않다. 서울시 공사가 가락시장시설현대화사업 등으로 적자 운영이 계속되고 있는 측면 등도 반영된 결정”이라고 전했다.


◆‘무책임 행정’, ‘핑계 행정’ 비판

서울시 “내년 사업은 이미 발주
내후년이라도 차질 없게 할 것”


농업·먹거리 단체들은 ‘무책임 행정’, ‘배짱 행정’, ‘핑계 행정’이라며 서울시와 서울시공사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전국먹거리연대 관계자는 “서울시가 상급기관인데 서울시공사가 2월 입장을 통보했다면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애먼 친환경 생산농가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돌아가게 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전형적인 ‘무책임 행정’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공사도 고등학교 무상급식 등 업무량이 많아져서 할 수 없다고도 하는데, 서울시와 서울시공사가 궁색하게 자기 잘못을 넘기는 ‘핑계 행정’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친환경 농업 관련 단체의 관계자는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서울시에 있다. 관리·책임을 맡은 기관이기 때문에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사업 근거를 조례 등에 명확하게 만들고 예산을 반영하는 등의 노력도 같이 했어야 했다. 버스가 떠난 뒤에 손을 흔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이 관계자는 “공사의 책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영양플러스 사업이 일만 많고 수익이 되지 않다보니 사실상 일을 안 하겠다는 ‘배짱 행정’인 것이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속 터지는 부분이다. 공공기관의 전형적인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외부의 우려와 비판에 대해 배진선 서울시 식생활개선팀장은 “이미 내년 사업은 발주가 나고 정리가 됐기 때문에 변경한 부분대로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내후년이라도 서울시가 추구했던 도농상생, 지속가능한 농업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공사와 협약을 맺는 등의 노력을 통해 영양플러스 사업이 취지에 맞게 추진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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