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위원, 농정전문기자

[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관심과 논란의 중심에 있던 공익직불제가 지난해부터 시행됐다. 공익직불제는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고 농정의 패러다임을 사람과 환경중심으로 전환’하자는 정책이다. 이는 대선 당시 “직불 중심의 농정”을 약속한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성과로 꼽힌다.

그 내용은 0.5ha 이하 농가를 대상으로 신설된 ‘소농직불금’과 경작면적에 따른 ‘면적직불금’, 농업·농촌 공익기능 강화를 위한 17개 농가준수사항이 골자다. 시행 첫해인 올해 112만 농가·농업인에게 총 2조2753억원의 직불금이 책정됐다. 이번 직불금 개편으로 그동안 직불금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왔던 중소농과 밭 농가를 중심으로 직불금 수령액이 증가했다.

일부라도 혜택이 개선됐으면 진일보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전문가들도 현장에서도 그런 평가가 나오지 않는다. 왜 일까?

이 제도는 처음부터 많은 문제가 지적됐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우선 공익직불제는 현장 농민들과 충분히 합의하지 않은 채 정부 여당 주도로 시행됐다. 정부는 논밭 직불금을 합쳐 이 제도로 개편하면서 그동안 쌀의 소득안정장치인 쌀 변동직불금을 폐지했지만, 이를 대신할 별도의 가격 및 소득안정장치는 제시하지 않았다.

공익직불제의 단가와 예산도 농민 요구보다 크게 부족했다. 직불예산을 확대한다는 공약과는 달리 정부는 관련 예산을 현 수준에서 5년간 동결했다. 공익직불제만 도입했지, 스마트팜, 4차산업 혁명, 농촌태양광 등 기존의 생산주의, 개발주의 농정이 이름만 바꿔 재생산되고 농업예산 구조는 그대로다.

현장에서는 공익직불제 시행과정에서 직불금 지급대상 농지와 농민의 조건을 둘러싼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직불금을 받기 위한 농가 쪼개기, 비농민의 직불금 부정수급, 고령화된 농촌현실과 동떨어진 준수의무 이행 점검 등에 대한 논란도 커졌다.

공익직불제 시행은 그동안 복잡하다는 이유로 정부가 외면하던 농지제도, 농업인 기준 등 농정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시금 화두로 떠오르게 했다. 비농민의 소유농지가 전체 농지의 절반에 육박하고, 임차농가 비율이 56.4%에 달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공익직불의 공정성은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농정의 기본인 농지제도가 문란하고, 농업인의 정의가 혼란해서는 어떤 방식의 농정도 효과를 볼 수 없다. 심지어 현장 일부에서는 마을에 살지도 않는 가짜 농민이 땅을 소유하고 공익직불금과 농민수당을 수령하는데, 수십 년 농사 지어온 임차농에게는 그림의 떡이 되는, 부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헌법의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농사를 짓는 농민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고 소작제는 금지된다. 이는 일제 식민지에서 독립하면서 지주가 소작농을 착취하는 구조를 혁파하고 농민에게 농지를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이는 대한민국이 봉건왕조나 식민지가 아닌, 헌법 상 ‘민주공화국’임을 증명하는 중요한 체제의 증거다. 그리하여 농지개혁이 실시됐고, 불완전하나마 지주-소작제는 해체되고 자작농주의가 실현됐다.

그러나 역대정부는 이런 헌법 정신을 거스르고 하위법인 농지법 같은 법률을 통해 비농민의 농지소유와 임대차를 확대하고, 다른 용도로 전용을 부추겼다. 이제는 도시민이라고 해도 300평 미만은 주말농장 목적으로 자유로이 구입할 수 있고, 기업이든 개인이든 증명만 갖추면 얼마든지 농지를 소유하고, 합법, 불법, 편법으로 이익을 챙길 수 있다. 사실상 누구나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농지는 투기수단으로 전락하고 빠르게 줄어들었다. 현 정부에서도 농지 감소는 계속되고, 심지어 농업진흥지역에 태양광을 설치하기 위한 농지법 개정 시도가 반복되고 있다.

농지는 농민의 삶을 위한 생산수단이자 국민의 식량과 생태환경을 위해 보전해야 할 공공재다. 비농민의 농지소유 증가, 농지에 대한 투기와 개발의 확대는 농지가격 상승의 악순환을 부르고,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과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파탄 낸다. 농지제도의 문란은 필연적으로 농민(농업인, 농업경영체)의 개념 혼란과도 맞물려, 직불제 같은 농가소득지원, 농업구조, 농업인력, 귀농귀촌, 협동조합, 식량 생산 등 농정 전 분야의 왜곡을 가져온다.

농지는 투기대상이 아니다. 농민의 생활과 식량공급을 위한 생산수단이다. 농지는 농민의 것이고, 농사에 이용돼야 한다. 동시에 미래세대를 위해 건강하게 보전해야 한다. 이제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야 한다. 그 첫걸음은 경자유전의 원칙과 농지농용에 충실한 농지법 개정이다.

물론 농지문제는 그 구도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결코 해결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농지법 개정을 통해 경자유전의 원칙을 재확립 하겠다”고 약속했다. 헌법을 위반하고도 이를 방치하는 나라는 민주공화국이라 할 수 없다. 정부와 국회는 언제까지 문제를 외면할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자세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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