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안형준 기자]

취재를 다니다보면 종종 마을회관에 들어갈 기회가 생긴다. 특히 겨울철에 마을회관에 방문하면 유난히 뜨거운 방바닥에 연세가 지긋한 여성들이 옹기종기 모여 누워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방바닥 온도가 왜 높은지 물어보면 난방의 목적도 있지만, 목과 허리, 관절 등을 따뜻하게 해 조금이나마 통증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게 가장 빠른 치료 방법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들에게 병원에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다. 하루에 몇 대 다니지 않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 넘게 이동해 물리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면 적어도 반나절 이상이 걸린다. 좁은 버스에 장시간 앉아 이동하고 나면 차라리 병원에 가지 않는 게 더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 게다가 병원비도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닌 까닭에 병원 치료는 늘 망설여진다.

이들에게 왜 몸이 성한 곳이 없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젊을 때부터 농사일을 하면서 무릎과 허리를 혹사시켜 이렇게 됐다고 한다. 젊었을 땐 자고 나면 통증이 완화됐지만, 나이가 들며 통증이 누적되다보니 만성 관절 통증을 달고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불행 중 다행은 정부가 여성농업인의 ‘농부병(근골격계 질병)’ 예방을 위해 특수건강검진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었고, 국정과제가 된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은 노동 특성 상 관절이나 허리를 자주 쓰는 여성농업인을 대상으로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해 근골격계 뿐만 아니라 노안이나 기타 질병을 예방하고자 하는 사업으로 2021년 시범사업 진행, 2022년 본사업 시행이 목표였다. 하지만 지난해에 예산 수립 과정에서 기재부의 벽을 넘지 못하고, 결국 2022년 시범사업 진행, 2023년 본사업 시행을 목표로 수정됐다. 여성농업인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특수건강검진 시범사업 예산 수립이 이뤄지지 않자 농촌 현장에서는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본사업까지 좌초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은 시간과 인프라가 부족해 제대로 된 예방과 치료를 받기 힘든 농촌의 여성농업인들을 대상으로 적은 예산을 들여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사업이다. 부디 올해에는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 사업 예산이 기재부의 문턱을 넘어 여성농업인들이 더 건강한 삶을 이어나갈 수 있길 바란다.

안형준 기자 전국사회부 ahn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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