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사업구조 개편, 진단과 과제 <상> 사업구조 개편 추진과 평가

[한국농어민신문 이병성 기자]

2012년부터 시작된 농협 사업구조 개편 사업이 2020년 완성을 목표했지만, 저조한 실적에 머물렀다. 지역농협이 출하한 농산물 책임판매 비율이 당초 목표 대비 크게 부족한 30% 수준을 기록하고 있고, 경제사업 활성화 투자 목표 대비 실투자도 저조한 것으로 최종 평가됐다. 이로 인해 1994년 처음 제기된 농협중앙회 신·경분리를 통한 사업구조 개편과 경제사업 활성화 계획이 실패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농림축산식품부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경제사업 활성화 추가 계획을 주문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본보는 농협 사업구조 개편이 처음 제기된 지난 1994년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이후 최근까지 주요 현안을 정리하고 성과에 대한 진단과 함께 향후 과제를 3회에 걸쳐 짚어보기로 했다.


‘농협개혁위’ 꾸려 개편 추진
2011년 농협법 개정에 본격화

▲UR로 시작된 농협의 개혁=농협중앙회의 사업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 것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4년은 우루과이라운드(UR) 농산물 협상 타결과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이 예고되면서 한국농업은 위기로 치달았다. 이에 당시 김영삼정부(문민정부)는 농어촌발전위원회를 설치해 농정 개혁과제를 논의했고, ‘신용과 경제사업 분리(신경분리)’를 쟁점으로 한 농협중앙회 사업구조 개편이 핵심 과제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공룡의 몸집으로 커진 농협중앙회 개혁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경분리에 대해 농협은 오히려 경제사업이 위축될 것이라며 반대했고, 논란을 거듭한 끝에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대표이사 체제를 도입해 운영하는 것으로 정리된 바 있다.

이렇게 시작된 농협중앙회의 신경분리를 골자로 한 사업구조 개편은 김대중정부(국민의정부)에서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돼 계속 시도됐고, 노무현정부(참여정부)에서도 농협개혁을 위한 ‘농협개혁위원회’를 구성해 논의를 이어갔다. 정부, 농민단체, 학계, 농협, 법무법인, 회계법인 등 전문가가 참여한 농협개혁위원회에서 수많은 논의를 거쳐 드디어 2007년 1월 ‘농협중앙회 신경 분리방안’이 마련돼 정부 건의가 이뤄졌다. 정부도 바로 이어 2007년 3월 신경분리 방안을 확정해 공식 발표했다. 

이처럼 농협 사업구조 개편에 대한 기반이 마련되면서, 2011년 3월 농협중앙회 사업구조 개편방안을 담은 농협법 일부개정안이 공포됐고, 1994년 처음 수면위로 올라온 농협 신경분리가 드디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1중앙회-2지주 체제로 재편
정부 지원금 확정 과정 혼선도

▲신경분리 필요 자본금 ‘26조4300억원’ 산정=2011년 3월 일부 개정된 농협법을 근거로 농협의 사업구조 개편이 단행됐다. 2012년 3월 농협중앙회가 ‘1중앙회-2지주(농협경제지주·농협금융지주)’ 체제로 재편해 농협의 농산물 판매사업을 강화하고, 신용사업은 더 많은 수익을 내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농협법에도 농축산물 판매 활성화 의무 규정이 신설돼 2012~2020년까지 연차별 사업구조 개편계획이 수립됐다.

이에 따라 2015년 판매·유통사업이 농협경제지주로 이관된데 이어 2017년 자재사업과 조합경제지원 기능이 뒤이어 넘어갔다. 이에 앞서 농협은행 등 신용사업은 2012년 바로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중앙회에서 분리됐다.

사업구조 개편을 위한 필요 자본금을 둘러싼 쟁점이 불거지기도 했다. 당시 필요 자본금이 26조4300억원으로 산출됐다. 이에 농협이 자체 보유자본금 15조1600억원과 부족자본금 11조2600억원 등 모두 21조4300억원을 확보하고, 정부가 5조원을 지원하는 계획이 세워졌다. 당초 정부가 4조원을 지원키로 했던 것이 2012년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1조원이 늘은 5조원으로 증액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 지원금이 확정되는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졌다. 이차보전 방식의 정부 지원 계획에 따라 농협중앙회가 농업금융채권 4조원을 발행하고 이자비용을 정부가 부담키로 한 것이다. 또한 당시 유가증권 현물출자 지원계획과 한국도로공사 주식 현물출자 등이 추진됐지만, 끝내 이뤄지지 못하는 등 시행착오도 벌어졌다. 이로 인한 사업구조 개편 이후 농협중앙회 차입금이 계속 불어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정부·농협·한농연 등 지지
지주회사 방식으로 최종 결정

▲지주회사 vs 연합회 대립=농협의 사업구조 개편 과정에서 지주회사 체제와 연합회 방식 사이에서 농업계 의견이 양분되기도 했다. 지주회사 측에 손을 든 관계 전문가들은 경제사업 활성화와 신용사업 수익 증대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배경을 강조했다. 반면 연합회 방식을 주장한 측에서는 협동조합 원칙에 따른 공동사업과 상법·세법상에서 유리한 점을 내세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의견 대립은 최종적으로 지주회사 방식으로 결정됐는데, 농협사업구조개편 백서에는 ‘정부와 농협, 농촌경제연구원, 한농연, 국민농업포럼, 농협제자리찾기운동 등이 주축이 된 올바른 농협개혁 범국민연대가 지주회사 방식을 지지했다’고 수록돼 있다. 농협개혁위원회에도 지주회사 방식으로 합의했고, 정부안도 지주회사 방식을 채택해 국회에 제출됐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농협중앙회 명칭을 농협연합회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으나,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산지조합 출하물량 50% 이상
중앙회가 판매 등 5가지 핵심 

▲부문별 사업 계획 수립=2012년 5월에는 농식품부와 농협중앙회가 사업구조개편 이행약정서를 체결하면 사업 추진에 탄력을 붙였다. 당시 농식품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①경제·교육지원 등 각 부문별 독립사업부제 강화 ②경영 효율화 ③자체자본 확충 ④조합지원사업 개선 ⑤중앙회가 조합 출하물량의 50% 이상 책임판매(경제사업활성화) 등 5가지 사항이 핵심으로 작성됐다.

경제사업 활성화 목표가 당시 큰 주목을 끌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현재 농협 사업구조 개편을 평가하는 잣대로도 보고 있다. 이행약정서에서 농협중앙회는 산지조합 출하물량의 50% 이상을 중앙회가 판매하고, 산지유통 점유비를 2011년 45%에서 2020년 62%, 중앙회 판매비중도 같은 기간 10%에서 51%로 끌어올리는 청사진을 내놓기도 했다. 이를 위해 원예부문에서 공선출하회 육성과 조합공동사업법인 설립 확대 등을 계획했고, 청과유통 부문에서는 권역별 도매물류센터와 공판장 사업 활성화 등을 잡았다.

특히 양곡회사 설립으로 국내 쌀 유통량의 35% 판매 목표를 잡고 조합 현물출자 방식으로 RPC 50개소를 거점RPC 20개로 통폐합하는 방안도 내놨다. 이와 함께 농협식품 설립, 한삼인 공동브랜드 계열화 추진, 농기자재 유통혁신 등도 계획됐다. 축산부문에서 또한 협동조합형 축산물대형패커 육성 등을 중심으로 한 축산물 유통개선과 부가가치 증대에 초점을 맞춘 바 있다.

 

투자 집행률 평균 ‘67.2%’ 뿐, 책임판매 비율도 고작 ‘31%’

농협금융지주 당기순이익
2019년 기준 1조7800억
목표 대비 절반 수준 그쳐


▲투자실적 저조, 성과도 한참 미달=4조9592억원 규모의 경제사업활성화 투자 계획이 세워졌다. 최초 계획에 따르면 원예 3872억원, 청과 3487억원, 양곡 5396억원, 식품 4782억원 등 농업경제 부문에 3조3014억원의 투자가 책정됐다. 축산경제 부문에도 안심축산 등 1조6578억원이 배정됐다.

하지만 2012년 이후 2019년까지 투자계획이 7차례나 변경되는 등 최초 수립된 사업계획 자체가 부실하게 수립됐다는 지적을 받아야 했다. 농협 경제사업 규모가 2011년 22조7000억원에서 2019년 27조7000억원으로 5조원 늘었고 책임판매 비율도 같은 기간 11%에서 31%로 확대됐지만, 당초 사업 목표액 44조5000억원 대비 62.2%로 턱없이 저조한 실적을 냈기 때문이다.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한 투자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연도별 농협경제사업 투자계획과 집행 실적을 보면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총 5조5831억원의 투자계획이 세워졌지만, 실투자로 이뤄진 금액은 3조7494억원에 그쳤다. 이 기간 동안 투자 집행률은 평균 67.2%에 머물렀다.

농협금융지주 또한 실적이 신통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금융지주가 당기순이익을 꾸준히 늘리며 2012년 4514억원에서 2019년 1조7800억원 수준으로 높였지만, 이 역시 목표 대비 절반 수준에 그친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이처럼 농협중앙회 사업구조 개편이 당초 목표에 미치지 못하자 농협중앙회 차입금이 불어나며 재무구조 악화로 이어졌고, 농민 조합원에 대한 교육지원사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농협중앙회의 관련 자료 등에 따르면 농협중앙회의 차입금이 2012년 9조2000억원에서 2019년 13조4200억원으로 급증했고, 이로 인한 연간 천문학적인 이자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가 농민들의 농업소득에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2년부터 2020년까지 9년 동안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가 추진됐지만, 농업소득은 연간 1000만원 언저리에 머물러 있는 현주소를 드러내고 있다.   

이병성 기자 leeb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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