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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의 길, 농업농촌의 길

  • 기사승인 2021.02.23 19:27
  • 신문 3276호(2021.02.26)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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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천 춘천두레생협 이사

[한국농어민신문]

남는 쪽을 덜어내 부족한 쪽 보충
노자 주장한 ‘하늘의 접근법’ 따라
농업농촌 회생의 길 찾을 수 있길

“형님, 그 일은 어떻게 되었어요?” “저번에 군청 공무원에게 따졌지. 잘되는 마을보다는 잘 안되는 마을을 더 밀어줘야 한다고 말이야. 그게 세상의 이치 아니겠냐고.”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요. 아무튼 그랬더니 뭐라고 하던가요?” “딱히 반박은 못하더라고. 다른 마을 지도자들도 다 수긍하는 것 같았고.” “그래서 결과는요?” “그게 좀 이상하더라고. 우리 마을이 평가가 안 좋은 건 아는데, 군 지원금 배분도 꼴찌가 될 것 같아.” “앞에서는 다들 가만히 있지요. 실속은 뒤에서 챙기는 법이지요.” “젠장, 문제가 없는 마을이 어디 있다고? 겉으로 잘 되는 것처럼 보이는 마을만 자꾸 밀어주면 개선이 되겠어?” “형님, 그러니까 왜 굳이 형님이 그 일을 하시려는 겁니까?” “그럼 어떻게 하나? 마을에 나설 사람이 없는데!”

대화는 앞뒤로 더 길다. 술 한잔 가볍게 하려던 자리가 네 병이 되고 말았다. 농업농촌 현장에서는 주제가 무엇이 되었든 스치듯 넘겨야 건강에 좋다. 매정하지 못하고 상대의 사정을 듣고 빠져들었다가는 대부분 이렇게 전개된다. 맘 상하는 이야기 때문에 몸이 상해버리는 결과. 답 없는 이야기는 알콜이 더해지니 끝도 없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웃으며 끝날 수 있는 길은 있다. 농사 이야기를 하면 된다. 특히 봄 가까운 겨울날이라면, 강원도 산골에서는 농사 이야기가 제격이다. 몸보다 마음으로 농사짓는 철이다. 이번 봄에는 어디에 뭘 어떻게 심을까 같이 궁리하고 서로 놀리면서 맘껏 히히덕거릴 수 있는 때이다. 불안과 실망보다는 기대와 희망의 기운이 감도는 유일한 시간이다. 

본의는 아니지만 나를 폭음의 길로 안내했던 형님은 선하고 순한 사람이다. 과하지도 않게 모자라지도 않게, 귀농해서 마을에 서서히 잘 스며들고 있어서 보기도 좋다. 문제는 그 마을이 십수년 시끌시끌했던 마을이라는 데 있다. 세상 어느 마을이 복잡해지기를 원했겠는가? 점점 서로가 원망하게 될 것이라 예상했겠는가? 급기야 마을은 주어져 있는 사업을 과감히 놓지도 못하고, 혁신이든 협동이든 돌파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그 속에 뛰어들고 있으니, 상처 입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아우는 심히 답답한 것이다. 

돌이켜 생각할 거리가 많은 대화였다. 예컨대 형님은 믿고 있다. 잘되는 마을보다는 잘 안되는 마을을 더 밀어주는 것이 옳다고 말이다. 그러나 노력한 결과 평가가 우수한 마을이나 농가에 지원을 집중하는 접근법은 일리가 있다. 동시에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면 부족한 마을이나 농가에 더 많이 돌아가게끔 하는 형님의 접근법도 충분한 일리가 있다. 그러므로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은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공정(公正)의 문제는 당대의 사회적 합의일 뿐이다. 이 합의는 당연히 변한다. 명백하게 그른 것이 있다면 변할 수 없다는 고집스러운 주장뿐이다.

농업농촌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답도 길도 잃었을 때는 오래된 지혜를 뒤져보아야 한다. 요즘은 다시 노자(老子)를 공부한다. 노자는 변화에 주목하고 변화를 예찬한 사상가다. 노자의 메시지 중에는 형님의 믿음과 연결해볼만한 대목이 있다. 어설프더라도 의역하면서 잠깐 살펴본다. 

“하늘의 접근법은 이렇습니다. 남는 쪽에서 덜어내서 부족한 쪽에 보충합니다.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접근법은 그렇지가 않군요. 가뜩이나 모자란 쪽에서 긁어 덜어내서 남는 쪽에 보태고 있습니다.” (天之道 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노자가 지적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인간의 접근법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묻는다. “계속 그런 식의 사람의 길(道)만 고집할 것입니까? 하늘의 길을 따르려는 사람, 하늘을 본받아 남는 것을 가지고 천하를 받들 사람은 정녕 없다는 말입니까?”(孰能有餘以奉天下)

어쩌면 순진한 그 형님이 손을 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실상은 이제 아무도 마을 일에 나서지 않아서라고도 볼 수 있지만, 굳이 나서는 까닭은 모종의 믿음을 바탕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남는 쪽이 덜어서 모자란 쪽을 지탱하는 것이 옳다는 형님의 믿음은 낡아빠진 것만은 아니다. 하늘의 도가 그런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늘의 길을 외면하면서 내는 사람의 길은 얼마나 야박하고 협애한가? 농업농촌 회생의 길은, 이러한 하늘의 길을 다같이 따르는 길 말고는 찾을 수가 없다. 농업농촌 바깥은 남아도는데 어째서 여전히 농업농촌에서 박박 긁어내는가? 어리석다. 그래서 대체 구체적으로 무슨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이냐고 내게 반문하지는 마시기를. 하늘의 길이 일리 있는 접근법이라고 공감한다면, 당신의 변화는 거기서부터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변하고 당신도 변해야 할 것이므로.

농업농촌의 고질적인 이슈들은 무겁게 술을 부르지만, 농사 이야기가 술을 부를 때는 가벼워진다. 농사가 딱히 돈이 되는 일도 아니고 실상은 갑갑하더라도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농사의 본질은 하늘의 길을 따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땅에 속박이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하늘과 도와 스스로 그러함의 먼 지평을 바라볼 수 있는 존재입니다. 땅의 이치를 따르고 본받는 것부터 충실한 사람은 더 높고 마땅한 인간의 길과 닿아있습니다.”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땅의 길, 흙의 길, 대지의 길, 농사의 길, 논밭의 길을 걷는 모든 농부들의 건강을 기원한다. 농업농촌의 길은 가물가물하여도, 님들이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농사의 길 하늘의 길을 걷는 덕으로, 우리는 산다. 올해도 부디 쓰러지지 말고 걸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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