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숙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농사꾼의 짐이 하나 더 는 셈이다. 조그마한 폴더 폰과는 다르게 스마트폰은 넓적한 것이 주머니에 들어가지질 않아 더러 집에 두고 나오기도 하지만 막상 손에 안 잡히면 허전하고 무얼 잃어버린 것 같아 항상 모시고 다니게 되니까 말이다.

밭머리 나무그늘에 놓아둔 폰이 나를 부른다. 뛰어가 받으니 ‘참기름’이다. 아니 참기름 씨다.

“저어 이번 주 내로 참기름 짜 주실 수 있나요? 기름이 떨어져 가요.”

“짜드릴게요. 짜고 나서 연락드리죠.”

오늘서부터 내일, 모레에 걸쳐 해야 할 일이 태산인데...작업도 리듬이 깨지면 나중에 두배, 세배 힘이 드는 것을 알면서도 덥석 대답하고 말았다.

우리 집은 밭이 많은 편이다. 주업은 논농사지만 논농사는 기계화가 되어 그렇게 많은 날의 노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밭농사는 무슨 작물이든 간에 최소 세 번 이상은 매주어야 하기에 많은 일손을 필요로 한다. 우리 집은 남편과 나, 오로지 둘의 노력으로 농작업을 해나가기에 밭마다의 일손 안배가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봄이 오면 제일 먼저 파종하는 작물은 감자와 옥수수다. 옥수수는 1차 2차 3차로 수확시기 기간을 맞추어 파종하는 반면 그 중간, 중간에 애호박과 단 호박, 노각오이를 심고 모내기가 끝나면 바로 이어 대두 콩을 파종한다.

남편은 조그만 땅도 놀리는 것을 질색으로 여긴다. 남편의 근면성에 맞추어서 이 밭은 이 작물, 저 밭에는 저 작물로 밭을 차례차례 채워나가는 게 우리 집 농사법이다. 그렇게 일손을 거의 밭으로 투입한다 해도 소득을 따져보면 할 말을 잃는다.

우리나라의 잡곡자급률은 5%도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국내 자급률이 저조하니까 수입산으로 대체해선지 잡곡 값은 매년 곤두박질치고 있다. 허나 저가라도 정부에서 수매를 해주면 그런대로 농사지을 수 있는데 밭곡식은 수매라는 말 자체도 아예 없다. 생산자가 알아서 판매해야 하는 구조다. 그래서 수확한 작물을 밴드와 카톡에 올리고 친척, 지인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농산물을 소진시키고 있는 터다.

내 폰에는 참기름은 물론 보리, 옥수수1, 2, 3과 고추, 매실, 배추(김장)등 농산물 이름이 그득히 들어있다. 가령 메주를 부탁한다면 메주는 적어도 삼 개월 이상 숙성기간을 거쳐야하기에 이런 식으로 저장해 놓지 않으면 자칫 잊어버릴 수도 있어서다.

사람이름이 들어가야 할 곳에 농산물 명칭으로 대신하는 건 고객에게 썩 죄송한 일이나 이름 물어보기도 미안하고 이름을 알려준대도 무엇을 주문했는지 모르는 지라 머리 나쁜 농사꾼이 사는 법을 비로소 실토해본다.

내 일이 바쁘다하여 농산물 주문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잘했다. 참기름 짠다고 외출할 기회 만들었으니 두루두루 환영받을 일이다. 불필요한듯해도 이렇게 더러 필요한 폰을 만진 김에, 허리도 쉬어줄 겸 수다라도 떨어야겠다. 오늘은 초딩동창을 불러 볼까나?
 

 

이길숙
이원농장, 이원농장펜션 운영
(사)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제4, 5대 회장 역임
수필집 ‘이원농장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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