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샤인머스켓 <하>수입산 기승, 계절관세 무력화

[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 지난 18일 한 대형마트 과일 매대에 포도가 진열돼 있다. 수입 포도는 소비자 눈에 잘 띄는 상단에 위치해 있는 반면 샤인머스켓 등 국내산 포도는 바닥에 놓여 대조를 보이고 있다.

5~10월 계절관세 적용되지만
4월 말 대거 수입해 저장
국산 주출하기에 내놔
“계절관세 의미 없다” 원성

샤인머스켓 품위 저하 시
시장대체 우려 목소리 고조


주말을 앞둔 금요일인 지난 16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한 대형마트 과일 매대엔 제철답게 포도가 즐비했다. 그런데 더 들여다보니 수입 포도가 매대 지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난 18일 찾은 또 다른 대형마트 역시 수입 포도가 판매대의 중심에 있었다. 이곳에선 샤인머스켓 등 국내산 포도는 판매대 하단에 위치한 반면 미국산 청포도 등 수입 포도는 소비자들의 눈에 잘 띄는 상단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정부는 FTA(자유무역협정)를 추진하며 계절관세를 도입, 수확기 국내산 포도와의 경합을 막겠다고 했는데 막상 포도 제철인 요즘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정부가 ‘포도 주 출하기 국내 포도산업과 해당 농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며 FTA와 연계해 추진한 계절관세가 무력화되고 있다. 샤인머스켓 인기 속에 포도 소비가 늘면서 샤인머스켓과 비슷한 색을 지닌 청포도를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수입 포도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 수입산이 포도 주 출하기인 7~8월에도 집중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포도업계에 따르면 2004년 칠레와의 FTA를 시작으로 포도를 주산지로 하는 국가와의 FTA 체결엔 대부분 국내산 포도 출하기 계절관세가 붙는다. FTA가 타결되면서 포도(신선) 관세가 무관세나 저관세로 전환되는 반면 국내산 포도 주 출하기인 5월부터 시작해 10월이나 11월까진 비교적 높은 관세를 부여, 국내 포도 농가를 달래겠다는 취지다.

최근 물량이 급증하고 있는 미국산 포도의 경우 5월 1일부터 10월 15일까지 올해엔 23.8%, 내년엔 21.1%, 내후년엔 18.5% 등 계속해서 내려가 2028년엔 무관세가 된다. 물론 올해에도 5월 1일~10월 15일 이외 기간엔 무관세로 미국산 포도가 들어온다. 또 다른 포도 주요 수입국이 되고 있는 호주는 변동 없이 매년 5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45%의 관세가 책정된다. 호주도 그 이외 기간엔 0%의 관세가 매겨진다.

최근 샤인머스켓을 중심으로 포도 소비가 늘어나자 수입 포도도 덩달아 물량이 불어나고 있다. 최근 3년간의 1~7월 포도 수입현황(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을 보면 2017년 4만2461톤, 2018년 3만9955톤, 2019년 5만2820톤의 포도가 국내에 들어왔다. 올해가 지난 2년보다 수입물량이 급증한 주 요인은 관세 인하 혜택을 받는 마지막 달인 4월 물량에 있다. 4월 포도 물량만 놓고 볼 때 2017년 1만2049톤, 2018년 1만4760톤이 수입된 반면 올해엔 2만3969톤이 수입돼 두 배 가까이 물량이 늘었다.

포도업계에선 이 4월 물량이 국내산 포도 출하기인 7~8월에도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저장 기술이 발달했고, 저장 비용도 적게 들기 때문이다.

포도 수출입업계 관계자는 “8kg 한 상자에 한 달 저장 비용이 500원 정도로 수입 포도를 저장해 7~8월에 시장에 내보내도 1500~2000원 정도밖에 들지 않고, 주로 마트에서 판매되는 1kg 이하 팩으로 따지면 한 팩에 200원 내외 투입된다”며 “샤인머스켓 인기 속에 포도 소비가 늘어나자 샤인머스켓과 비슷한 청포도 등 수입 포도가 관세가 없는 마지막 달인 4월에 집중적으로 들어와 저장 후 포도 주 출하기이자 소비기인 여름철에 시장에 나오고 있다. 사실상 정부가 국내산 포도 보호 명분으로 내세운 계절관세가 의미가 없어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샤인머스켓 인기 속에 수입 포도도 종류가 다양해지고 고급화되고 있어, 자칫 국내산 샤인머스켓 품위가 저하될 경우 수입 포도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이 속에 포도 농가와 국내 과일업계에선 FTA 체결국에 대한 포도 관세 인하 혜택을 연중 부여하지 않거나, 적어도 1~2월 등 4월 이전으로 당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연순 한국과수농협연합회 전무는 “국내산 포도 수확기에도 수입 포도가 대거 시장에 나오고 있고, 특히 기존보다 고급화되고 있어 자칫 국내산 샤인머스켓 품위가 떨어지면 이 시장을 수입 포도가 대체할 수 있어 우려스럽다”며 “FTA 협상 과정에 관련 단체 등이 포함되지 않으니 정부에선 무조건 특정기간 계절관세만 부여하면 포도 농가에 타격이 가지 않는다고 잘못 판단하는 것 같다. 이제라도 포도 주 생산 국가와 FTA를 맺을 땐 계절관세를 전면 재검토해야 하고, FTA가 타결되면 피해를 입게 되는 민감 품목은 FTA 협상 과정에 관련 업계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끝>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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