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꿀벌 ‘공존법칙’ <상>꿀벌을 살리자

[한국농어민신문 이병성 기자] 

조재호 농촌진흥청장이 전북 부안 위도에 위치한 ‘꿀벌위도격리육종장’을 방문해 꿀벌 유전자원 관리와 우수 품종 육종 현황을 점검하고 양봉산업 발전을 강조했다.
조재호 농촌진흥청장이 전북 부안 위도에 위치한 ‘꿀벌위도격리육종장’을 방문해 꿀벌 유전자원 관리와 우수 품종 육종 현황을 점검하고 양봉산업 발전을 강조했다.

겨울에 벌통서 사라지고 죽어
갑작스런 날씨 변화 못견딘 탓

꿀벌자원 육성품종 증식장 건립
2025년부터 우수 여왕벌 보급
화분 매개용 스마트 벌통 도입
‘농약 만성 독성 평가’ 추진도

생태계 파수꾼 꿀벌이 재난을 당했다. 지난 2021~2022년 동절기에는 꿀벌이 대량 폐사하고 실종되는 등 피해의 심각성이 고조됐다. 2022년 기준 꿀벌 사육규모가 420만 봉군으로 집계된 가운데 월동 중인 꿀벌 폐사 규모가 39만 봉군(약 78억 마리)에 달하는 재난 수준이었다. 피해 원인을 놓고 양봉 현장에서 꿀벌응애류, 기상 급변동, 전자파, 농약 등 이런 저런 추측도 난무했다. 꿀벌 재난은 무엇이고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이상한 날씨에 응애 피해 겹친 재난
지난 2021~2022년 꿀벌 폐사와 집단 손실 발생에 대해 농촌진흥청, 농림축산검역본부, 지자체, 한국양봉협회가 2022년 1~2월 두 달 동안 민관 합동 조사를 통해 피해 봉군에서 응애가 발견됐고, 응애류 적기 방제 미흡, 이상 기후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겹쳐졌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최용수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 연구관
최용수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 연구관

꿀벌 전문 연구자인 최용수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 연구관은 “과거에도 농약을 사용해 왔고 말벌로부터 공격도 받았다. 최근 꿀벌 피해가 심각해 진 것은 단기 이상 기후 날씨와 응애 피해로 봐야 한다”고 진단하고, “봄과 가을 큰 일교차 발생과 함께 겨울철에는 따뜻한 기온 등 날씨의 영향으로 꿀벌 발육이 저하되고, 이는 응애 피해로 이어진다. 따뜻한 겨울날씨로 인해 꿀벌이 활동하면 허약해진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으로 폐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꿀벌의 지방체는 항균·항산화, 유용단백질 분비 등 중요한 기능을 한다. 사람으로 치면 간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꿀벌이 유충기에 응애 피해(바이러스)를 받으면 간경화에 걸린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때문에 응애 적기 방제가 중요한데, 다만 동일한 성분의 약제를 반복 사용하면 저항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정철의 안동대학교 생물의학과 교수도 “우리나라에선 겨울에 꿀벌이 벌통에서 사라지거나 죽는 등 대량 손실 피해가 불거진다”며 “가장 직접적인 연관은 꿀벌응애와 같은 기생성 해충의 피해이고, 꿀벌이 허약해진 상태에서 갑작스런 날씨 변화에 견디지 못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꿀벌 육성 연구 박차

이 같은 꿀벌 재난이 터지면서 꿀벌 연구의 중요성도 더욱 강조되고 있다. 우리나라 환경에 적합한 꿀벌 육종 연구가 그 핵심이다. 농촌진흥청은 지난 2020년 10월 전북 부안군 서해 바다 위도에 ‘꿀벌 격리육종장‘을 구축하고 우수한 꿀벌 품종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용수 연구관은 “농사는 종자로 시작해서 종자로 끝난다는 말이 있듯 장기적으로 꿀벌도 응애 저항성 품종을 육종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라며 “그러면서 단기적으로는 약제 저항성을 막기 위한 새로운 약제 사용, 계절별 관리 기술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전남 영광, 경남 통영, 충남 보령 등에 '꿀벌자원 육성 품종 증식장'을 건립하고, 2025년부터 연간 5000마리 이상의 우수한 여왕벌을 생산해 양봉 현장에 보급할 계획이다. 이 곳에선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서양종 꿀벌 ‘젤리킹’을 증식하게 된다. 증식장에서 기본 여왕벌을 1차 증식한 ‘원원여왕벌’을 기반으로 ‘원여왕벌’-‘보급여왕벌’을 단계적으로 확보해 양봉농가에 공급하는 체계로 추진된다.  

농촌진흥청의 신기술시범사업으로 ‘화분 매개용 스마트벌통’도 올해 300개 보급된다. 겨울철 벌통 내 온도가 12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 유지해 월동 벌무리가 거뜬하게 겨울을 날 수 있게 하는 기술이 적용됐다.    


#농약 만성 독성 평가 도입 시행  

꿀벌 보호는 농약 안전 사용이 특히 중요하다. 이를 위해 과수 등 개화기에 농약을 사용할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농약 안전사용 기준 제도에 의해 농약 포장지에 표기된 주의사항을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꿀벌에 독성 강함’ 표시가 있는 제품이 개화기에 살포되는 것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개화기에 사용 가능한 농약을 판별하고, 농업인들도 꿀벌에 안전한 농약인지 확인이 가능하다. 

꿀벌에 대한 농약 안전성 관리는 더욱 강화된다. ‘농약 및 원제의 등록 기준 고시’ 개정을 통해 기존 급성 독성 평가와 함께 만성 독성 평가가 추가되는 것이다. 빠르면 올 상반기 중 고시가 개정되고, 2년 유예 기간을 거쳐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농촌진흥청 농자재산업과 관계자는 “꿀벌에 더 안전하게 농약이 사용될 수 있도록 농약과 원제에 대한 평가 체계 개선을 진행하고 있다”며 “현재 농약이 사용된 직후 발생하는 급성독성 이외에 사용 이후 장기간에 발생할 수 있는 만성 독성 평가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신젠타코리아, 화분매개곤충 서식처 조성
유채 등 계절별로 꽃식물 가꿔 ‘유익한 곤충’ 육성

신젠타코리아가 지난 2014년부터 경북 안동시 길안면 천지생태공원 일대에서 ‘화분매개곤충 보존 프로그램’을 전개해 유채, 메일, 코스모스 등 계절별로 꽃식물을 가꾸고 있다.
신젠타코리아가 지난 2014년부터 경북 안동시 길안면 천지생태공원 일대에서 ‘화분매개곤충 보존 프로그램’을 전개해 유채, 메일, 코스모스 등 계절별로 꽃식물을 가꾸고 있다.

경북 안동 길안면에 6ha 규모
야생벌 늘고 곤충 다양해져

작물보호제 기업인 신젠타코리아도 꿀벌 보호에 적극 나서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신젠타코리아가 지난 2014년부터 경북 안동시 길안면에서 진행하고 있는 ‘화분매개 곤충 보존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신젠타코리아가 안동대학교, 길안면, 사과재배 농가들과 협력해 안동시 길안면 천지생태공원에 꿀벌을 비롯한 다양한 화분매개 곤충의 서식처 6ha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서식처에 유채, 청보리, 메밀, 참나리, 코스모스 등 각종 꽃식물을 봄부터 가을까지 계절별로 가꿔 유익한 곤충을 육성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다. 생태계 보호는 물론 사과 주산지인 만큼 꿀벌 개체가 늘고 활동력이 강해지면 고품질 사과를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정철의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
정철의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

이 프로그램의 현장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정철의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꿀벌은 공공재로 분류해야 한다. 화분매개 곤충의 대표 격인 꿀벌을 지키자는 것은 다양한 화분매개 곤충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활동”이라며 “농업생태계에서 꿀벌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꿀벌이 70% 이상을 한다. 깊은 산속에서는 야생의 다양한 화분매개 곤충이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에 정철의 교수가 신젠타코리아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화분매개 곤충 보존 프로그램’ 현장 연구 결과 화분매개 서식처 인근 과수원에서 꿀벌의 활동이 활발했으며, 화분매개 곤충 개체 수도 더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철의 교수 연구팀이 화분매개 서식처 반경 1km 내외에 위치한 과수원 6곳과 반경 2km 이상 떨어진 과수원 6곳을 선정해 비교 분석한 결과로 입증됐다. 
 

화분매개 곤충 서식지를 조성하면 야생벌 등 화분매개 곤충의 다양성이 증가하고, 사과 품질과 수량도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화분매개 곤충 서식지를 조성하면 야생벌 등 화분매개 곤충의 다양성이 증가하고, 사과 품질과 수량도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화분매개 곤충 중에서 많은 역할을 하는 벌의 종류를 조사해보니 조성된 서식처 1km 이내 과수원에서는 9종이 확인된 반면 2km 이상 떨어진 곳은 5종에 그쳤다. 화분매개 곤충의 활동력도 서식처에서 가까운 과수원이 월등히 높았다. 야생 화분매개곤충의 다양성 분석 결과 또한 서식처에서 가까운 과수원이 통계적 유의성이 높게 나왔다. 서식처 인근의 과수원은 특히 해충의 천적 밀도도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사과 농사에도 큰 도움이 됐다. 서식처에서 1km 이내의 가까운 과수원은 초기 결실률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사과의 평균 과경과 과중이 더 컸다. 게다가 정형과 비율이 높아지는 등 고품질 사과 생산량이 늘어나는 효과를 거뒀다. 

정철의 교수는 “화분매개 서식처에 유채, 메밀, 백일홍, 코스모스 등 꽃식물을 재배해 보니 야생벌 밀도가 높아졌고 곤충 다양성도 확인했다”며 “이는 화분매개 작용이 좋아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실제 사과의 품질이 더 우수해졌고, 사과 종자가 균일하게 형성돼 사과 품종별 본연의 정형과 비율이 높아졌다. 당도, 산미, 색감 등 맛도 더 개선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박진보 신젠타코리아 대표이사는 “최근 꿀벌 소실 문제가 대두되는 상황에서 화분매개곤충 서식처가 생태계 다양성에 이바지하고 농업 생산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의미가 있다”며 “신젠타코리아는 환경과 생태계를 위한 프로그램을 이어 나가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병성 기자 leeb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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